금광 찾아 바다 건넜지만···낙인 찍히고 배척당한 ‘중국인 문제’

2024.03.22 08:30 입력 2024.03.22 11:23 수정

미 컬럼비아대 교수 메이 나이, 10년 연구 결과

19세기 ‘골드러시’ 때 미국·호주 등으로 떠난 중국인들

유럽·아메리카 인종주의, 집단린치 속 저항도 다뤄

마차를 타고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 캐슬메인으로 향하는 금 찾는 중국인들. 1853년. 책과함께 제공.

마차를 타고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 캐슬메인으로 향하는 금 찾는 중국인들. 1853년. 책과함께 제공.

중국인 문제

메이 나이 지음 | 안효상 옮김

책과함께 | 672쪽 | 4만3000원

19세기 중반 이후 반세기 동안, 이전 3000년 동안 채굴된 것보다 더 많은 금이 몇몇 지역에서 생산됐다. 새로운 기회의 땅에서 한몫 잡아보려는 노동자들이 몰려드는 ‘골드러시’의 시대였다. 미국 캘리포니아, 호주 빅토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트란스발 등의 금광지는 국경을 넘어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한 번도 살던 곳을 떠나본 적 없던 중국 노동자들도 바다를 건넜다. 샌프란시스코 세관 당국에 따르면 1848년에 325명이 캘리포니아 지역으로 이주했는데, 1852년이 되면 한 해 이주자가 2만명까지 늘어난다. 1850년대 후반에 중국인들은 캘리포니아 전체 인구의 약 10%를, 광산 지구에서는 25%를 차지할 정도로 다수가 됐다. 황쭌셴의 시 ‘이민자들의 추방’을 보면 골드러시 시기 중국 초기 정착자들의 상황이 담겨 있다.

“중국인들이 처음으로 대양을 건넜을 때, 이들은 개척자나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달팽이 껍데기처럼 작은 초가집에서 살았다/ (중략) 금산이 높이 솟았다. 남자들은 양손으로 황금을 긁어모을 수 있었다/ 유레카! 이들은 황금을 가득 채우고 돌아왔으며, 모두가 이 땅이 낙원이라고 떠벌렸다.”

골드러시는 중국과 앵글로·아메리카 세계 사이에, 이주민인 중국인들과 정착민인 유럽·미국인(백인)들 사이에 첫 대규모 접촉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이 시기 중국인 이주민과 백인 정착민 사이의 알력은 ‘중국인 문제’를 둘러싼 전 지구적 분쟁을 촉발했다.

<중국인 문제>는 19세기 중국인들이 이주하고, 정착하고, 배제당하고, 저항하는 이야기들을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분석하고 서술한 역사서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역사학과의 메이 나이 교수가 5개 대륙에 걸친 10여년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썼다. 책 제목인 ‘중국인 문제’는 19세기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이 까다로운 사회문제에 대해 ‘문제(Question)’라고 표현한 것에서 따온 것이다. ‘니그로 문제’ ‘유대인 문제’ ‘여성 문제’ 등에 문제라는 말이 붙었다.

골드러시의 표면적 원인은 전 세계 금 생산량의 급증이지만, 저자는 좀 더 오래된 역사적 사건도 들여다본다. 유럽 식민주의와 19세기 중국의 쇠락이다. 저자는 “중국은 서양 열강에 의해 직접적으로 식민화된 적은 없었”지만, “골드러시 시기에 중국은 이미 유럽 식민주의의 지배하에 있었다”고 말한다. 1550년에서 1750년까지 200년 동안 중국은 틀림없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행위자였다. 최대 규모의 단일 국내시장을 가지고 있었고, 전 지구적 교역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19세기 초반 영국에 의해 인도는 아편 생산자로, 중국은 아편 소비자로 전락하면서 황폐화된다. 중국은 1, 2차 아편전쟁을 거치며 불평등조약을 맺고 “극도로 약하고 불리한 위치에서 당시 발전하는 전 지구적 경제와 국제 관계에 들어가게” 된다.

캘리포니아와 빅토리아 지역에 있던 중국인 금 채굴자 대다수는 상하이가 아닌 중국 남부 광둥성의 4개현 출신이었다. 원래도 이 지역은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는 곤궁한 지역이긴 했으나, 영국의 경제적 침투와 정치적 불안정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가정에서는 아들과 형제들을 가까운 도시로 보내 인부나 공장 노동자가 되도록 했고, 이들이 캘리포니아와 빅토리아 등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은 멜버른을 신진산(新金山) 즉 신금산(New Gold Mountain)이라 불렀고, 캘리포니아를 주진산(舊金山) 즉 구금산(Old Gold Mountain)이라고 불렀다.

남아프리카 란트에서 계약 중국인들은 깊은 지하광산들에서 일했으며, 핸드드릴을 이용해 암석 표면을 잘랐다. 이들은 하루에 최소한 36인치(약 90cm)를 뚫어야했다. 1905년경. 책과함께 제공

남아프리카 란트에서 계약 중국인들은 깊은 지하광산들에서 일했으며, 핸드드릴을 이용해 암석 표면을 잘랐다. 이들은 하루에 최소한 36인치(약 90cm)를 뚫어야했다. 1905년경. 책과함께 제공

중국인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필요와 이익을 다루는 동향회를 결성했다. 샌프란시스코의 6대 중화회관 임직원들 .1890년. 책과함께 제공

중국인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필요와 이익을 다루는 동향회를 결성했다. 샌프란시스코의 6대 중화회관 임직원들 .1890년. 책과함께 제공

초기 이주를 제외하면 신금산과 구금산으로 향한 중국인들은 가난하고 절망적인 사람들보다는 기회를 찾아간 이들이 더 많았다. 농민·시골노동자·장인·기계공·상인 출신이 주를 이뤘다. 홍콩의 당대 관찰자는 중국인 이민자들에 대해 플레테이션 식민지들로 간 도급노동과 달리 “실제적으로 자유이민”이었다고 기록했다. 이민자들은 금광 주변에 정착해 공동체를 형성했다. 1856년에 중국인 주거지 근처에 조성된 미국 캘리포니아주 차이니스캠프에는 상인, 세탁업자, 재봉사, 약초상, 제빵사, 푸주한, 노름판 운영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중국인 채굴회사들은 작업장에서 평등주의적 협동조합을 만들어 나름의 작업방식도 구축했다.

중국인 이주 초기부터 현지인들과의 갈등이 존재했지만, 정치적 이유로 인해 갈등이 증폭된다. 책은 캘리포니아주 초대 주지사 존 비글러가 자신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 ‘중국인 문제’와 ‘반쿨리주의’를 어떻게 구성했는지를 보여준다. ‘쿨리(Coolie)’란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의 중국·인도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계 외국인과 이민자들을 일컫는 말로, 비하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다. 존 비글러가 주지사에 취임하던 1852년경에는 계속된 채굴로 금맥이 거의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다. 비글러는 금으로 인한 영광의 시대가 계속될 것이라는 지지자들의 믿음에는 계속 불을 지피면서, ‘쿨리’를 경제 문제의 원인처럼 몰아갔다. 그는 2만명이 넘는 중국인이 중국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오고 있고, 곧 10만명이 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중국인들이 금을 캐내 이 나라에서 빼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존 비글러는 모든 중국인 광부에게 ‘쿨리’라는 낙인을 찍음으로써 중국인들을 자유노동의 대척점에 있는 흑인노예들과 비교하는 인종주의적 비유를 발견했”다며, “중국인 쿨리들이라는 유령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정책과 같은 것이었다”고 꼬집는다.

금광이 있던 빅토리아에서는 중국인들에게 쿨리라는 낙인은 찍지 않았지만, 중국인들이 자유이주민이라는 사실이 백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자유이주는 이론적으로 무제한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됐다. 유럽인들은 오직 기독교인들만이 가족을 소중히 하며, 가족은 질서 있고 도덕적인 사회의 초석이라고 믿었다. 중국인들은 기독교 도덕이 결여된 ‘이교’로 여겨졌다.

유순하고 무력한 쿨리라는 스테레오타입과는 달리, 앵글로-아메리카들 사회에서 중국인들은 열심히 일하고, 적응하고, 버텨낸 진짜 사람들이었다. 머디크리크, 와이카이아, 뉴질랜드 지역. 1900년경. 책과함께 제공.

유순하고 무력한 쿨리라는 스테레오타입과는 달리, 앵글로-아메리카들 사회에서 중국인들은 열심히 일하고, 적응하고, 버텨낸 진짜 사람들이었다. 머디크리크, 와이카이아, 뉴질랜드 지역. 1900년경. 책과함께 제공.

중국인 배제와 혐오의 분위기는 점점 고조돼 중국인에 대한 집단린치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한다. 1882년에는 급기야 중국인 노동자들의 미국 이민을 10년간 중단하는 법률인 중국인 배제법까지 통과된다. 저자는 “이 법률은 특정 집단이 인종적으로 현지 사회에 동화될 수 없다는 주장에 근거해서, 배제하는 특정 집단을 명시한 최초의 이민법”이라고 설명한다.

책은 이 같은 폭력에 중국인들이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맞선 역사도 담았다. 이주 중국인들은 작업 거부, 임금 투쟁, 파업, 회관 같은 이주공동체 결성, 거리 시위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맞섰다. 샌프란시스코 주재 청국 총영사로 이주 중국인들을 보호하려 외교적 노력을 펼친 황쭌셴, 중국인 이주자들의 시민적 권리를 제한하려는 시도에 반발한 위안성 등의 사례도 조명한다. 저자는 “전통적인 유교적 사회질서에서는 하층이었던 중국인 상인들은 채굴 투자자, 공동체 지도자, 문화 중개자로 새로이 형성된 힘을 행사했다”며 “해외 중국인들이 어디서나 인종주의와 배제에 저항”했다고 말한다.

제목은 ‘중국인 문제’지만, 책을 읽다보면 ‘아시아인 문제’로 느껴진다. 책에는 서구인들이 중국인들을 배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편견들이 등장한다. 중국인은 가부장적이라 서구사회에 동화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인들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다, 중국인들은 부당한 노동환경에도 묵묵히 일해 일터의 환경을 악화시키고 임금을 낮추게 한다는 등의 주장이다. 이 공격적 주장들은 지금도 서구의 극우 정치세력이 아시아인들을 공격하는 데 쓰인다.

저자는 “중국인 문제는 결코 진정으로 사라지지 않았”으며, “중국이 유럽·아메리카 문명에 위협이 된다는 관념은 여전히 수면 아래 남아 있다”고 말한다. 중국과 미국의 패권 경쟁하에서 중국계 미국인들이 미국 스파이로 의심받거나, 중국계 학생과 노동자들이 불평 없이 힘든 노동을 견디는 오토마톤(자동기계)처럼 묘사되는 현상을 짚으며 현시대에도 ‘중국인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짚는다. 저자는 “19세기 후반 인종주의·식민주의·자본주의의 정치학에서 비롯한 중국인 문제는 우리 시대 중국과 서양 사이 민족주의적 경쟁을 이해하게 해준다”고 말한다.

중국인 문제. 책과함께 제공

중국인 문제. 책과함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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