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로 돌아온 소설가 한강, 제주 4·3을 정면으로 바라보다

2021.09.07 15:06 입력 2021.09.07 16:34 수정

소설가 한강이 7일 온라인을 통해 생중계된 기자간담회에서 5년 만에 펴낸 신작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소개했다. 문학동네 제공

소설가 한강이 7일 온라인을 통해 생중계된 기자간담회에서 5년 만에 펴낸 신작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소개했다. 문학동네 제공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 소설가 한강(51)은 신작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이런 말로 표현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2016년 <채식주의자>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그가 2016년 <흰> 이후 5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이다. 그는 7일 출간을 기념해 온라인으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누가 어떤 소설을 쓰고 있느냐고 물으면 어떤 때는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답했고, 또 어떤 때는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소설, 제주 4·3에 대한 소설이라고도 답했다”며 “그 중에 하나를 고른다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란 말을 고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생각을 (전작인) <소년이 온다> 이후로 하게 되었고, 이 소설을 쓰면서 더 깊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소설은 성근 눈이 내리는 한 벌판 위에 선 주인공 ‘경하’의 꿈 속 장면으로 시작된다. 벌판에 심어진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은 마치 누군가의 묘비처럼 보이고, 묘지가 여기 있었나 생각하는 사이 어느 순간 발 아래로 물이 차오른다. 경하는 무덤들이 모두 바다에 쓸려가기 전에 뼈들을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어쩌지 못하는 채로 꿈에서 깨어난다. 한강은 소설의 첫 두 페이지에 걸쳐 있는 이 꿈의 이야기를 2014년 먼저 썼다고 했다. 이는 작가가 5월 광주를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를 2014년 발표한 이후 실제 꿨던 꿈이라고 한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발표한 다음 악몽을 자주 꿨는데, 소설을 쓰는 동안엔 직접적인 폭력에 대한 꿈이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좀더 상징적인 꿈을 꿨다”며 “그 꿈을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을 했다.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어떤 소설의 시작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2018년 12월에야 다음을 이어서 쓰게 됐다”고 했다.

소설은 화자이자 소설가인 경하가 폭설이 내리는 제주도로 향하며 전개된다. 꿈에서 본 풍경이 자신이 소설로 썼던 광주의 학살에 대한 것이라고 여긴 경하는 제주에 사는 다큐멘터리 감독인 친구 ‘인선’과 함께 이를 영상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지만 이는 수년간 진척되지 못했고, 어느 겨울날 서울의 한 병원에 있는 인선으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는다. 인선은 홀로 통나무 작업을 하다가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며 제주 집에 홀로 남겨진 앵무새를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

폭설을 뚫고 도착한 인선의 집에서, 경하는 70여년 전 제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과 얽혀 있는 인선의 가족사를 마주하게 된다. 소설은 그렇게 경하의 이야기에서 인선의 이야기로, 또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의 이야기로 나아간다. 한강은 “1990년대 후반쯤 제주 바닷가에 월세방을 얻어 서너달 정도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주인집 할머니가 골목의 어느 담 앞에서 ‘이 담이 4·3 때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었던 곳’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며 “어느 눈부시게 청명한 아침이었는데, 무서울 정도로 생생하게 다가왔던 그날의 기억이 제 마음 속에서 자라났던 꿈의 장면과 만나 이 소설이 됐다”고 말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로 돌아온 소설가 한강, 제주 4·3을 정면으로 바라보다

소설은 빛과 어둠 사이를 무심하고 느리게 하강하는 눈(雪)의 이미지들 속에서 학살 이후의 시간을 살아낸 정심의 ‘고요한 싸움’을 들려준다. 당초 이 소설은 단편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작별’을 잇는 ‘눈 3부작’의 마지막 작품으로 구상했지만 이 자체로 완결된 작품으로 따로 엮게 됐다. 한강은 “소설에서 눈은 죽음과 삶 사이, 어둠과 빛 사이, 신이 있어야 할 자리, 신의 공백 위 텅 빈 공간으로 내리고 있는 그런 것”이라고 했다.

소설을 쓸 때 소설 속 정심의 마음이 되려고 노력했다는 그는 “이 소설이 저에게 언제나 요구했던 상태는 ‘지극한 사랑의 상태’였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소설 후반부에 환상성이 있는데, 저는 ‘사랑’이란 것이 여러 삶을 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깊이 사랑할 때, 우리는 나의 삶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삶을 동시에 살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내가 여기에 있지만 동시에 그곳에도 있게 되는 것이고, 그런 상태 자체가 초자연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소설 속 인물들의 그런 간절한 마음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소설의 제목에 대해선 “작별하지 않겠다는 각오, 그것이 사랑이든 애도든 어떤 것도 종결하지 않겠다는, 끝까지 끌어안고 걸어 나아가겠다는 결의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한강은 역사적 상흔을 다룬 소설이라는 점에서 이번 작품이 전작 <소년이 온다>와 “어떻게 보면 짝을 이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앞선 작품인 <흰>이나 <희랍어 시간>, 첫 장편인 <검은 사슴>과도 연결돼 있다고 했다. 그는 <소년이 온다>와는 달리 이 작품을 쓰면서는 “저 자신이 많이 회복되었다”고도 했다. “어떤 소설이든 쓰는 과정에서 사람을 변형시키고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소년이 온다>를 쓰고 나서 악몽이나 죽음의 깊이가 제 안으로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면, 이 소설을 쓸 때는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오는 경험을 했습니다. 소설을 쓰는 일엔 물론 고통도 있었지만, 그저 고통스러웠다기보다는 간절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소설이 나를 구해줬지, 라는 마음이 들어요. 그렇게 죽음에서 삶으로 나왔기 때문에, 다음 소설은 이번과 다른 결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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