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기행첩’, 강세황 작품 아니다”, 미술사학자 이태호 교수 주장

2022.08.01 18:06 입력 2022.08.01 20:00 수정

이 명지대 석좌교수, <월간 민화>에 글 게재

“근거 어디서도 못찾아, 나에게도 큰 충격”

향후 전문가들 반응 주목···“면밀한 논문으로 나와야 논의될 문제”

미술사학자인 이태호 명지대 석좌교수가 표암 강세황의 대표 화첩인 <송도기행첩>이 표암의 작품이 아니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사진은 <송도기행첩>에 수록된 작품 ‘영통동구’(영통동 입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월간 민화 제공

미술사학자인 이태호 명지대 석좌교수가 표암 강세황의 대표 화첩인 <송도기행첩>이 표암의 작품이 아니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사진은 <송도기행첩>에 수록된 작품 ‘영통동구’(영통동 입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월간 민화 제공

조선 후기의 대표 문인화가이자 단원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1713~1791)의 걸작 화첩인 <송도기행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 표암의 작품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술사학자인 이태호 명지대 석좌교수(다산숲아카데미 원장)는 최근 발간된 월간지 ‘월간 민화’(8월호)에 쓴 ‘송도기행첩, 과연 강세황이 그렸을까?’에서 “관련 자료들을 전면 뒤졌으나 표암의 작품으로 확정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며 “표암의 그림이 아니라는 결론을 냈다”고 밝혔다.

이 석좌교수는 1일 “표암의 그림이 아니라는 결론을 확인하는 과정이 나에게도 크나큰 충격이었다”며 “앞으로 면밀한 연구가 더 진행돼야 하겠지만, 지금으로선 표암 작품이 아니라는 게 결론”이라고 말했다. 교과서에 언급될 정도로 한국미술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표암의 대표작 <송도기행첩>에 대한 이 교수의 문제 제기가 미술사학계, 전문가들에게 어떤 파장과 반응을 낳을 지 주목된다.

이 교수는 <송도기행첩>이 표암의 그림이 아니라는 근거로 우선 “<송도기행첩>이나 표암의 문집인 <표암유고> 등 그 어디에도 표암의 작품이라는 관련 근거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혜곡 최순우 전 중앙박물관장이 1970년 <송도기행첩>을 처음 학계에 소개한 이후 자신을 포함해 모두가 당연히 표암 작품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송도기행첩> 관련 연구는 많았지만 정작 <송도기행첩>을 누가 그렸는지 작가에 관련한 재검토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표암이 쓴 것으로 알려진 화첩의 후기에도 낙관이 없다. 또 (후기가) 표암의 개성적 서체나 품새와도 다르다”며 “낙관이 찍혀 있어야 할 자리의 종이가 오려내진 상황에서 표암의 작품으로 둔갑한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후기 내용 중 ‘화공의 그림’(畵工之畵)이라는 표현도 <송도기행첩>이 표암의 작품이라는 데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고 덧붙였다.

<송도기행첩>의 후기(왼쪽)와 후기의 끝부분의 낙관이 찍혀 있어야 할 자리의 종이가 오려져 나가 없어진 상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월간 민화 제공

<송도기행첩>의 후기(왼쪽)와 후기의 끝부분의 낙관이 찍혀 있어야 할 자리의 종이가 오려져 나가 없어진 상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월간 민화 제공

이 교수는 “화첩에 표암의 낙관이 찍힌 글은 7언시가 유일하다”며 “이 시도 자작시가 아니라 조선 초기 문인 박은의 시 일부를 적은 것으로, 자작시를 쓰는 당시 상식이나 관례와 크게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비록 낙관은 없지만 ‘영통동구’ 등 일부 지명(작품명)은 표암의 글씨가 확실하다”며 “부탁을 받고 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화풍에 있어서도 <송도기행첩> 그림들은 대체로 짙고 옅은 먹선들이 윤기가 나는 등 표암의 다른 작품에 나타나는 산수화풍과 거리가 먼 점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외에도 <송도기행첩>의 표지명이 송도 그림들과 관련이 없이 생뚱맞게 ‘표암선생 유적’(豹菴先生遺積)이란 점, 낡은 표지와 달리 화첩 내부는 깨끗하다는 점 등도 지적했다.

표암 강세황의 걸작 화첩인 <송도기행첩>의 표지는 ‘표암선생유적’으로 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월간 민화 제공

표암 강세황의 걸작 화첩인 <송도기행첩>의 표지는 ‘표암선생유적’으로 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월간 민화 제공

이 교수는 <송도기행첩> 작가가 표암이 아니라면, “당시 개성 유수로 <송도기행첩>을 주관한 오수채의 작품이거나, 개성에 파견된 도화서 화원의 작품”으로 추정한다. 그는 특히 “보물로 지정돼 있는 ‘해동지도’(규장각 소장)의 화법이 <송도기행첩> 화법과 유사한 점들이 있어 ‘해동지도’를 그린 화가와 <송도기행첩> 작가가 연관 있거나 동일인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이 교수의 견해에 대해 미술사학자들은 이날 “표암의 전 작품을 관통하는 화풍 등으로 볼 때 <송도기행첩>이 표암의 작품이란 근거도 많다. 이 교수가 제시한 근거만으로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며 “보다 면밀하게 논증한 논문으로 나오길 기대한다. 논문이 나와야 논의해 볼 문제”라고 밝혔다.

<송도기행첩>은 표암이 45세이던 1757년 여름철에 송도(개성) 유수인 친구 오수채의 초청을 받아 개성 일대를 여행하고 그린 그림 16점과 후기 등 글 3건으로 구성된 화첩이다. 특히 화첩 속의 그림 ‘영통동구’(영통동 입구)나 ‘태종대’ ‘백석담’ 등은 음양·원근 등 서양화법을 전통 문인화에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송도기행첩>은 한국미술사의 주요 사료이자, 국립중앙박물관의‘우리 유물 100선’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송도기행첩>에 수록된 그림으로 박연폭포를 그린 ‘박연’(왼쪽)과 ‘백석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월간 민화 제공

<송도기행첩>에 수록된 그림으로 박연폭포를 그린 ‘박연’(왼쪽)과 ‘백석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월간 민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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