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나무가 무대에 심은 소년, 비트로 세상을 두드리다

2022.12.19 14:38 입력 2022.12.19 19:57 수정

1인극 <온 더 비트> 배우 윤나무 인터뷰

지난해 ‘오프 아비뇽’ 최고의 1인극상 수상작

리듬으로 세상을 읽는 소년의 이야기

연극 <온 더 비트>의 한 장면. 프로젝트그룹 일다 제공

연극 <온 더 비트>의 한 장면. 프로젝트그룹 일다 제공

어둠 속, 텅 빈 무대를 울리는 규칙적인 리듬과 함께 공연이 시작된다. 박자는 점차 빨라지고, 이윽고 의자에 앉아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리듬을 타고 있는 한 소년이 형체를 드러낸다. 배우 윤나무(37)가 연기하는 ‘아드리앙’이다. 어떤 악기도 없이 오직 자신의 몸을 사용한 격렬한 연주가 끝난 후 그가 말한다. “드럼이 진짜 엄청난 건요, 악기가 없어도 드럼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지난달 서울 대학로 티오엠(TOM)에서 막을 올린 연극 <온 더 비트>(연출 민새롬)는 리듬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소년의 시선을 따라 전개되는 1인극이다. 2003년 프랑스에서 초연한 작품으로 2016년 몰리에르 1인극상 후보에 오른 데 이어 2021년 오프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최고의 1인극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선 이번이 초연이다.

리듬은 소년이 세계를 읽는 방식이자 그의 언어다.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의 수많은 규칙과 쏟아지는 말들 속에서 아드리앙은 리듬을 통해 세상의 기호를 판독한다. 그러나 그의 해석은 때로 오해를 받기도, 타인과 불화하기도 한다. 그랬던 그가 어느 날 드럼과 만난다. 드럼은 아드리앙에게 악기 이상의 존재이며, 확장된 자아다.

텅 빈 무대 위에서 드럼과 호흡하며 ‘아드리앙의 세계’를 빚어내고 있는 윤나무를 지난 9일 대학로에서 만났다. 윤나무는 이 작품에서 열 살부터 열일곱 살에 이르기까지 소년 아드리앙을 비롯해 그의 부모, 친구, 이웃, 선생님 등 다양한 인물을 홀로 연기한다. 윤나무는 “연극 속 아드리앙이 두려워하면서도 할머니가 남긴 LP상자를 열어보는 일종의 모험을 시작했듯, <온 더 비트>는 내게 모험이면서 도전이 된 작품”이라고 말했다.

연극 <온 더 비트>의 한 장면. 프로젝트그룹 일다 제공

연극 <온 더 비트>의 한 장면. 프로젝트그룹 일다 제공

- 극중 드럼을 연주하는 장면이 많습니다. 드럼은 언제 배웠나요.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 전엔 스틱을 잡아본 적도 없었죠. 1년 정도 신동훈 음악감독님에게 배웠어요. 각오는 했는데, 쉽지는 않더라고요. 듣기에는 간단한 리듬조차도 무엇 하나 쉽게 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모든 뮤지션들을 더 존경하게 됐습니다(웃음).”

- 국내 초연작인 만큼 부담도 컸을 것 같습니다.

“초연 작품을 할 때마다 같은 마음이긴 하지만, 과연 20년 전쯤 프랑스에서 처음 공연한 작품이 2022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관객에게 와닿을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번역부터 연습까지 지난해 말부터 천천히 차근차근 준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희가 준비했던 것 이상으로 관객분들이 굉장히 꼼꼼하고 섬세하게 이 작품을 봐주시는 것 같아요. 프랑스 공연은 런타임이 80분 정도인데, 저희 공연은 110분쯤 됩니다. 번역극이라 길어진 점도 있지만 저희가 각색한 장면들도 있어요.”

- 어떻게 각색됐나요.

“극장 안에 관객들이 입장하는 것 자체가 아드리앙의 세계 안으로 들어온다는 콘셉트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이 세계에서 관객 한 명 한 명이 아드리앙에겐 음표가 됩니다. 들릴 듯 말 듯 아주 작은 소리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고스트 노트’에 대한 발견이나, 정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장면도 저희 공연에서 확장시킨 부분이에요.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가 각자 다른 음을 지닌 음표라면, 주목받지 못하고 잘 들리지 않는 음까지 모두 어우러져야 비로소 하모니가 되는 것 아닐까. 그런 이야기를 담고자 했습니다.”

연극 <온 더 비트> 무대에 서는 배우 윤나무. 프로젝트그룹 일다 제공

연극 <온 더 비트> 무대에 서는 배우 윤나무. 프로젝트그룹 일다 제공

-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주인공 아드리앙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는 인물로 보입니다.

“이전에도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에서 아스퍼거 증후군을 갖고 있는 인물을 연기했고 <킬 미 나우>란 작품에서도 장애를 지닌 인물을 연기했어요. 그때마다 항상 유념한 것은 이들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장애·비장애를 떠나 이 인물이 어떤 마음일까가 제게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아드리앙은 어떤 것에 자기 인생을 전부 바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인물이고, 그런 면에서 이 친구가 지닌 장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죠. 장애보다는 그가 리듬을 발견하고 세상의 모든 소리를 리듬으로 이해하려는 시선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아드리앙이 아닌 다른 인물들을 연기할 때 더 고민이 됐죠. 아드리앙의 관점으로 전개되는 작품이다 보니, 주변 사람들도 그의 시선에 맞게 그려야 한다고 방향을 잡았어요. 이를테면 할머니의 유품을 가져가려는 청소차가 <트랜스포머>에 나오는 거대한 자동차처럼 느껴지고, 자신에게 몸을 기울이는 교장 선생님이 상당한 거인처럼 묘사되기도 하고요.”

-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다시 드럼을 연주하는 커튼콜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연출님이 고심한 끝에 나온 장면이에요. 이야기가 끝난 후 커튼콜 자체는 아드리앙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 그의 환희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됐죠. 관객분들이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 지난여름 공연한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 이어 올해만 두 번째로 1인극 무대에 섰습니다.

“딱히 1인극을 선호해서 1인극만 잇달아 공연한 것은 아니고, 제작 스케줄에 맞추다 보니 올해 두 작품을 하게 됐습니다. <살아있는 자들을 수선하기>를 하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1인극이) 배우로서 큰 도전이고 희열인 것은 사실이에요. 아무것도 없는 무대 위에서, 제 말과 대사로 상황과 이미지를 그려내고 관객분들이 그것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받아들일 때 배우로서 희열을 느낍니다.”

윤나무는 인터뷰 말미 “앞으로 또 다른 무언가를 도전하는 데 막힘이 없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아드리앙이 한 수 가르쳐준 것”이라며 웃었다.

“이 연극의 원제(‘Une Vie Sur Mesure’)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적합한 역할’ ‘딱 맞는 옷’ 정도의 의미예요. 이 대본을 만나면서 내게 딱 맞는 옷은 뭘까 생각하고, 아드리앙이 그랬던 것처럼 그것을 위해 두려움 없이 모험하고 도전해야겠다는 용기를 얻었거든요. 관객분들도 그런 순간을 공유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공연은 내년 1월1일까지.

연극 <온 더 비트>의 한 장면. 프로젝트그룹 일다 제공

연극 <온 더 비트>의 한 장면. 프로젝트그룹 일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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