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형 “웃기는 이미지, 되레 관객과 소통에 도움”

2012.02.19 21:08 입력 2012.02.19 22:49 수정

지난해 ‘국민 요정’으로 재발견, 음악인 정재형

지난해 대중문화계 최고의 사건은 아마도 정재형(42)의 등장일 것이다. 대중과 동떨어져 자신만의 세계를 고수하는 고독한 뮤지션의 아우라를 강하게 풍기던 그가 일약 ‘국민 요정’으로 강림했으니 말이다. 개그맨 이봉원을 닮은 얼굴에 가래 끓는 소리로 불어 발음을 하며 잘난 척을 해도, 쓸데없는 시샘과 질투를 부리며 나잇값을 못하는데도 ‘용서’가 된다. 사사건건 까칠하고 예민한 반응을 보이다가도 ‘오홍홍홍’하는 웃음소리를 내며 변하는 그의 표정은 기묘한 중독성이 있다.

종잡을 수 없고 정형화되지 않은 요정(음악요정+가래요정) 캐릭터 정재형의 등장.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중은 포복절도하며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대중이 그를 발견한 중요한 길목에 MBC <무한도전>이 있었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혹자는 그를 준비된 예능인이라고 하지만, 그는 <무한도전> 이전에도 이후에도 음악을 하는 ‘자연인 정재형’이고 대중은 뒤늦게 그를 발견했을 뿐이다. 지인들은 “저렇게 웃기는데 다시 음악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지만, 그는 가장 대중지향적인 예능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음악적 지향을 고수하는 강단을 보여줬다. 지난해 여름 이후 생애에서 가장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는 그를 지난 15일 만났다.

정재형 “웃기는 이미지, 되레 관객과 소통에 도움”

▲ “파리 유학 시절은 스스로 선택한 ‘개고생’… 위로의 음악 하고 싶다”

- 실제 성격은 어떤가.

“보이는 그대로다. 이기적이고. 그래서 TV 나가는 게 걱정이 됐다. 얼마나 꼴보기 싫을까 싶었지. 이적은 나더러 ‘이기주의가 사람으로 형상화된 모습’이라고 하기도 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이기주의란 내 생각을 정확히 표현하는 거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다고 하는 거지.”

- ‘오홍홍홍’ 웃음도 화제가 됐다.

“원래 그렇게 웃었을 텐데. TV 화면에 자막처리가 되면서 특징으로 굳어진 것 같다. 예전에도 사람들은 내가 웃으면 미친놈 같다고 했다.”

- 가만히 있으면 우아한 이미진데.

“나란 인간의 가장 무서운 점이 있다. 이상한 경쟁심리를 부추기면 한계가 없다는 것. 콘서트 때 머리에 꽃도 단다.”

- 그동안 보여준 음악적 고집을 생각하면 예능프로그램 출연 결심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음악에 대해 지독한 순정주의, 강박 같은 게 있었다. 혼자 심각했던 거지. 오랜 유학생활로 힘들고 지치기도 했을 테고. 여유를 갖기가 쉽지 않았다. 재작년 초 유희열 등 소속사 가수들과 함께 <대실망쇼>라는 코믹한 콘서트를 하면서 나 스스로 풀어진 면이 있다. 위트를 위트로 받아들이는 세련된 대중에 대한 믿음도 생겼고.”

- 어린 시절 이야기 좀 해달라.

“삼형제 중 둘째로 산만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입학 뒤 좋아하던 여자애가 피아노를 치는 걸 보고 나도 배우기 시작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그 아이를 훌쩍 따라잡으니까 선생님이 나더러 베토벤이라고 했다. 결국 그 아이는 관두더라. 나 역시 하다 말다 하다가 고등학교 가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영화음악을 하고싶다는 생각이었다.”

- 파리 유학 전에 베이시스로 활동했다.

“친하게 지내던 쌍둥이 바이올리니스트 자매가 함께 대중음악을 하자고 했다. 영화음악에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대중음악이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그러다가 그 친구들은 유학가고 나 혼자 남았다. 솔로활동도 하면서 곡도 쓰고 영화음악 작업도 했다.”

- 클래식을 바탕으로 한 베이시스 음악은 그 당시 가요계에선 무척 낯설었다.

“가요를 모르니까 음악적으로 위축되고 방향도 혼란스러웠다. 남들이 중·고등학교 때 들었다는 1970~1980년대 가요나 팝음악의 정서나 추억이 없었다.”

- 파리 유학은 그래서 결정했나.

“당시 <마리아와 여인숙>이라는 영화음악 작업에 참여했다. 완성된 걸 보니 이건 영화음악이 아니구나 싶었고 낯부끄러웠다. 결국 재충전과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파리 유학생활은 어땠나.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간이었다. 20대 때는 학교 졸업하고 가요계에 바로 데뷔해 활동하다 보니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30대 전체가 자의적인 ‘개고생’의 길이 됐던 셈이다. 지금 음악을 하며 살고 있는 내 삶이 얼마나 고마운지 깨달을 수 있는 것도 그 시간 덕분이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끼니를 해결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지도 알게 됐다. 이 땅의 모든 주부들. 대단하다.”

- 엄정화, 신민아, 이효리 등 여성 톱스타들과 절친이다.

“영화음악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배우들과 친하게 된다. 그러면서 파리에 와서 소개받거나 알게 된 이들도 있고.”

- 언뜻 보면 정재형씨를 동생이나 친구 대하듯 한다.

“내 스타일이 그렇다. 사람관계란 게 기본적인 예의만 지킨다면 손위니 아래니 이런 의미가 있나. 모두 친구인 거다.”

- 생뚱맞지만 군복무 시절도 그렇게 지냈나.

“음. 나 내무반장이었다. 싫어하는 것, 귀찮은 건 다 없앴다. 전투체육할 때 축구하기 싫어하는 사람 다 빠지게 해주는 식이었지. 그랬더니 우리 내무반이 체육대회에서 1등 하더라. 뭐든 재미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

- 음악은 어렵고 우울한데 사람은 웃긴다. 반전에서 오는 괴리감이 클 것 같은데.

“희열이(유희열)가 그러더라. 형의 음악이 어려우니까 반대의 시너지를 즐기라고. 음악이 어렵다고 느껴지면 대중과 소통의 창구를 잃게 마련이다. 다행히도 내 이미지가 사람들이 내 음악에 집중할 계기를 만들어 줬다는 점에서 감사하다. 예전에도 내 공연이 매진이 됐는데, 최근에는 정말 짧은 시간에 매진이 되더라(<무한도전>에 나오던 특유의 오만하던 모습을 상상하시라).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계속 쌓아가고 싶다. 어느 순간 디스코가 좋으면 디스코를 쓸 수도 있다.”

- 어떻게 나이들고 싶나.

“동시대를 함께 걷는 사람들,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다. 요즘 20대 학생들 보면 정말 안쓰럽다. 그들에게 큰오빠가 돼 주는 게 내가 기성세대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의 마음으로 혼내는 사람은 많지만 아이의 마음으로 위로해주는 사람은 없지 않나. 괴팍하지만 친근한 정재형으로 즐겁게 소통하고 싶다. 그렇다고 너무 만만하고 쉬운 건 싫다. 아티스트에게 최소한 신비감은 있어야 한다. 아항항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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