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방한 결산 좌담

“우리도 몰랐던 우리 안의 온화한 기운 일깨워 줘 행복했다”

2014.08.19 21:54 입력 2014.08.19 23:40 수정

프란치스코 교황의 4박5일간 방한 일정이 끝났다. 그의 메시지는 우리 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남을까. 우리는 그 메시지를 통해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19일 경향신문사 편집국에서 좌담회가 열렸다. 한상봉 ‘가톨릭 지금여기’ 주필이 사회를 맡고 박동호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서울 신정동 성당 주임신부), 김근수 평신도 신학자, 이주향 수원대 철학과 교수가 패널로 참여했다.

평신도신학자 김근수씨, 한상봉 가톨릭지금여기 주필, 이주향 수원대 철학과 교수,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박동호 신부(왼쪽부터)가 19일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평신도신학자 김근수씨, 한상봉 가톨릭지금여기 주필, 이주향 수원대 철학과 교수,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박동호 신부(왼쪽부터)가 19일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 세월호 참사에 대한 관심

한상봉(사회) = 이번 방한에서 교황은 세월호 가족들의 손을 여러 번 잡아주셨다. 교황이 보여준 세월호에 대한 관심,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

이주향 = 교황을 보면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은 온화한 표정이다. 온화한 것만으로는 안된다는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온화함의 힘을 알았다. 교황의 표정은 자유로운 영혼의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 표정이 무거워질 때가 몇 번 있었다. 시복식 전 카퍼레이드를 할 때 차에서 내려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러 걸어가는데 심장이 툭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손을 잡아주는데 세월호 가족의 아픔을 진정으로 느끼는구나 싶었다. 내 안의 힘을 돌아보게 됐다. 우리가 소통할 줄 아는 존재구나 하는 것이었다. 우리 안에 죽음의 문화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에너지가 있구나, 그동안 눌려서 못 봤구나, 교황을 보면서 내가 미소 짓고 있었다. 우리도 몰랐던 우리 안의 온화한 기운으로 행복과 에너지에 힘을 넣어준 행복한 5일이었다.

박동호 =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는 장면은 단순히 힘없고 약한 사람을 돌봐주는 것이 아니다. 교황의 문헌을 보면 ‘모세가 신발을 벗고 하느님 앞에 선다’고 나온다. 사람에 대한 교황의 생각이 드러난다. 힘없고 약한 사람을 내가 돌봐야 하는 측은한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니라 신발을 벗고 하느님 앞에 서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다가간다는 것이다.

한상봉 = 이웃에게 눈 감으면 하느님도 볼 수 없다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말과 다름없는 이야기다. 베네딕토 교황은 이런 말을 전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말을 행동으로 확인시켰다.

박동호 = 교황은 자신을 평화의 도구라고 말했다. 자신을 사람들에게 공감하고 그들과 동행하고, 배제되고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을 일으켜서 함께 가기 위한 도구로 보는 것 같다.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을 보면 자신의 사명이 다른 사람을 지지하고 일으켜 세우고 공감하고 생명을 나누는 것, 철저하게 다른 사람과 동일화하는 것이라고 고백하는 구절이 나온다.

이주향 =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인 프란치스코의 화현(化現)이었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이라는 프란치스코의 기도문을 되새기게 됐다.

김근수 = 교황은 21세 때 폐 일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깨어나서 “어머니 제가 살아난 겁니까”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죽음에 가까운 체험을 한 것이다. 그때 고통을 보는 눈이 생긴 것 같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예수회 관구장이었다. 아르헨티나 독재 정권의 횡포로 3만명이 죽었다. 그때 교황은 여러 죽음을 체험한 것 같다. 슬퍼할 수 있는 능력이 많이 커졌을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을 언급하면서 교황은 “한국인은 슬픔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우리에게 슬퍼할 능력이 있는가. 교황은 슬퍼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했다. 신앙심은 슬퍼할 수 있는 능력에서 출발하는 것 아닌가.

이주향 = 슬퍼할 능력이 없어지면 삶이 무너지는 것이다. 교황은 성공의 열매에 도취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는데 우리 사회 지도층은 성공의 열매가 감각을 마비시키면서 물질문명을 받들게 하는 것 같다.

박동호 신부·김근수 신학자·이주향 교수(왼쪽부터)

박동호 신부·김근수 신학자·이주향 교수(왼쪽부터)

▲ 박동호 신부
“교황의 기도는 밖으로 나가 타인의 고통과 공감하고
같이 울며 구조 바꾸는 데 투신하도록 하는 것 같다”

▲ 김근수 신학자
“교황이라는 메시아, 영웅을 기다릴 게 아니라
평신도가 일상적인 메시아가 되어야 한다”

▲ 이주향 교수
“젊은이들에 피해자라 한 건 죽음의 문화에 맞서서
싸울 에너지가 네 안에 있다는 말… 온화함·선함의 힘 깨닫게 해”

■ 지도자들이 배워야 할 리더십

한상봉 =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끝없는 슬픔은 끝없는 사랑으로만 치유된다고 했다. 그 끝없는 사랑이 나오려면 먼저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처럼 낮은 곳으로 향하는 교황의 소통하는 태도는 놀라웠다. 우리 지도자들이 이런 리더십을 어떻게 배워야 할까.

박동호 = 리더로서 교황의 덕목은 일관되게 타인의 아픔에 대해 공감 능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단순히 정서적 차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행동이었다. 리더는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어떤 생각, 어떤 마음을 가지고 무엇을 겪었는지 알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한 국회의원은 종교 지도자로서 그가 한 말에 충분히 공감할 수는 있지만 교황의 말을 현실에서 실현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 교황에게 감동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그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싶어한다는 걸 느꼈다. 그러나 우리가 교황을 보면서 지도자는 홀로 지도자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히 해야 할 것 같다.

김근수 = 예수와 교황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는 슬퍼하는 능력이다. 예수도 잘 울었다. 두 번째는 비판 능력이다. 보통은 많이 슬퍼하면 비판 능력이 떨어질 것 같은데 둘은 다르지 않다. 교황은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따뜻했지만 비판할 사람에게는 ‘저항하라, 맞서 싸워라, 거부하라, 일어서라’고 했다. 이는 종교 지도자로서 쓰기 어려운 단어다. 낮은 자에 대한 한없는 애정과 공감에서 나오는 언어다.

이주향 = 경호원들이 애먹었다는 것만 봐도 교황은 자유인이고 두려움이 없다. 자신을 텅 비워서 낮은 존재로 흐르게 했기 때문에 모든 존재에 흐르는 것이다. 책 몇 권 읽었다고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도와 묵상을 했겠는가. 기도를 통해서 자기의 불안을 보고 분노를 보고 성급함을 보고 그리고 자기의 절망과 바닥을 봐야 조금씩 허물이 벗겨진다. 우리도 우리 안의 선한 힘을 믿게 돼서 스스로 희망의 불씨가 되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 그래서 우리가 먼저 바뀌면, 지도자도 서서히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박동호 = 교황의 기도는 내 안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밖으로 나가서 사람의 고통을 보고 그 고통과 공감하고 같이 울면서 구조를 바꾸는 데 투신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도록 하는 기도인 것 같다. 힘없고 약한 사람에게 공감하고, 힘없고 약하게 만드는 사회구조 그리고 그 구조 속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에게 독설을 서슴지 않는 기도다.

이주향 = 교황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하는 제스처도 볼만했다. 남북 문제에 해법을 주면서 통일은 용서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가진 자나 가지지 않은 자나 전반적으로 죽음의 문화라는 큰 틀을 바꾸는 데 자기 역할이 있다는 걸 보여줬다.

박동호 = 청와대 연설에서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강화되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한국이 민주주의로 향해 가는 데 대한 격려이면서 아직 부족한 것이 많으니 해야 할 것이 많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교황은 정치든 외교든 궁극적으로는 평화를 위한 도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고위 공직자들에게 한반도 문제에 대해 말할 때도 ‘우리 모두가 많은 사람을 위해서 봉사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정중함이 보였다. 철저하게 타인을 위해 기여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자기 인식을 보여줬다.

김근수 = 교황은 종교를 사회 여러 분야 중 하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 각 분야의 전제 조건으로 본다.

박동호 = 그걸 부정하는 걸 영적 세속성이라고 한다. 종교가 그런 몫을 잃어간다는 것, 세상이 즉물적이어서 이 안에서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을 교회가 닮아간다는 것이다. 종교는 한자로 마루 종(宗)자를 쓴다. 종교는 바탕이고 테두리다. 특정 이데올로기나 도그마가 아니라 세상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다.

■ 강론·연설에서 주목할 점

한상봉 = 교황이 많은 메시지를 던졌다. 교황의 강론과 연설, 몸짓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박동호 = 아이들을 많이 안아줬고 젊은이들을 여러 번 만났는데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어떤 가치를 물려줄 것인지 촉구하는 기회가 됐다. 교황은 젊은이들이 미래의 희망이기도 하지만 시대의 피해자이기도 하다고 했다. 교황이 어린아이들을 안아줄 때 팔레스타인 어린이, 기아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이 떠올랐고 ‘너는 이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거냐’고 묻는 것 같았다.

이주향 = 교황이 아이를 안았을 때 무력한 존재를 안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하고 눈을 맞춰서 노는 거지, 놀아주는 게 아니다. 눈높이를 맞춘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시대의 희망이지만 피해자라고 한 것은 무한경쟁에 지친 ‘삼포세대’에게 죽음의 문화와 맞서 싸우라고 한 것이다. 그 에너지가 너희 안에 있다고 각성시킨 것이다. 주교들에게는 마음을 열지 못하는 대화는 소통이 아니라 독백이라고 했다. 무서운 말을 일깨워줬다. 내 마음을 열어야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웃 종교에도 우리 모두는 형제라고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하더라. 소름이 돋았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아상(我相)’이 없는 것이다.

김근수 = 발언을 분야별로 나누고 싶다. 교회에는 교회의 존재 목적이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줬다. 정치와 경제 분야에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좀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줬다. 청와대 연설은 종교인이 잘하지 않는 결례일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교황 언어의 특징은 맑은 물이 잔잔하게 가듯이 부드러운 단어이지만 오래 생각하면 가슴이 찔리는 화법이다.

박동호 = 교황은 실제 소통이 이뤄지는 데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정치인, 종교 지도자들이 훌륭한 말을 했는데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고 따라오지 못한다고 불평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 게 아니라 상대가 공감할 수 있는 소통 방법을 쓰지 못한 것이다. 교황은 단어를 선택할 때도, 문장을 쓸 때도 사람들이 단순히 알아듣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공감할까를 염두에 두는 것 같다.

김근수 = 교황의 의사소통 방식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악수, 두 번째는 미소, 세 번째는 눈길을 마주치는 것이다. 18일 주한교황청대사관에서 교황을 직접 만났을 때 악수하고 바로 손을 빼는 것이 아니라 5초 정도 잡고 있더라. 그 따뜻한 온기에 차가운 이성이 녹고 매력을 느낄 준비를 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미소는 흉내낸다고 되는 미소가 아니다. 악수와 미소, 눈길을 마주치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배웠으면 좋겠다.

한상봉 = 교황 말씀은 책으로 봐도 해설이 필요 없을 정도로 쉽다. 역대 교황의 책은 그렇지 않았다. 전문가가 아니면 읽어도 모른다. 전달하고자 하는 눈높이에 언어를 맞추는 것이다. <복음의 기쁨>을 보면 강론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강론이 중요하고 신자들의 삶과 만나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삶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해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김근수 = 엘살바도르에서 3년 정도 공부했는데 독일에서 공부했을 때와 달랐다. 교황이 쓰는 어법은 남미의 해방신학자들의 방식이다. 먼저 보고 그 다음에 판단하고 그 다음에 행동하는 것이다. 반면 전통 교회는 교리를 말한 후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까 고민한다. 남미에는 문맹이나 학교에 오래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교황의 말은 그래서 단순하고 짧다.

■ 한국 사회·교회에 남긴 과제

한상봉 = 교황이 남기고 간 것이 큰데 한국 사회나 교회가 제대로 받을 능력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한국 가톨릭, 나아가 종교계에 남긴 과제는 무엇일까.

박동호 = 이번 방한이 ‘교황 마케팅’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교황의 뜻을 잘 헤아려야 한다. 교황은 선의를 가지고 함께 연대하라고 했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영혼이 있는 사람을 찾아내 연대하는 것이다. 또 ‘화장이 몸을 대신하는 시대에 교회가 솔직해져야 한다’는 교황의 말처럼 교회가 솔직해져야 한다. 성경의 가르침에 비춰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남은 과제다. 그래야 교황의 방한이 해프닝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김근수 = 교황이라는 메시아를 기다릴 게 아니라 평신도가 일상적 메시아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에서 성직자 중심주의가 줄어들어야 한다. 교황은 교회를 사제화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했다. 평신도 스스로 똑똑해져야 한다. 사제들도 어렵겠지만 바뀌어야 한다.

한상봉 = 이번 방한에서 교황은 여러 집단을 만났지만 사제들은 따로 만나지 않았다. 교황청 대변인은 사제들은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데, 상징적이다. 교황은 우선 주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수도자들에게 교회개혁과 관련해 기대를 걸고 있다는 인상이 짙었다.

김근수 =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교황을 좋은 사람으로만 칭찬하고 그가 비판적인 사람이라는 점을 놓치면 반쪽만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정의와 사랑이 다른 단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교황의 개인적 성품을 다 칭찬하고 배운다 해도 교황이 말한 경제구조에 대한 비판을 외면하면 반쪽밖에 볼 수 없다.

박동호 = 교황은 내놓고 요구해왔다. 시장의 절대 자유와 금융투기를 단호하게 거부하자. 그렇지 않으면 불평등 사회와 그로 인해 받는 고통을 개선할 수 없다. 그래서 교황은 벌써부터 미국에 불편한 사람이 됐다.

이주향 = 교황을 보고 선함은 약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교황은 부유하게 사는 수도자의 위선이 교회를 망친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부유하게 살고 싶어할까. 가난이 두려운 것이다. 자기 안에 두려운 것들을 성찰하지 않으면 극복되지 않는다. 성찰하게 되면 자기 안에 내공이 쌓이고 그를 바탕으로 힘 있는 연대를 할 수 있게 된다.

한상봉 = 교황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이웃사랑을 통해 입증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결국 사회적 사랑, 정치적 사랑으로 발전되어야 자칫 추상적일 수 있는 신앙은 몸을 얻게 된다. 그래서 교황이 가장 강조했던 말이 ‘무관심의 세계화’에 맞서는 ‘연대의 세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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