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린에 분노하는 한국 남성들

2018.03.23 17:06 입력 2018.03.23 17:14 수정
위근우 칼럼니스트

‘왜 페미니즘…’ 여성을 객체로 보는 믿음에 균열 냈다고 엉뚱한 검증

“절대 이분들을 놀라게 하면 안돼.” 과거 SBS <정글의 법칙>에서 김병만이 외부 문명과 접촉이 없다던 와오라니 부족을 보며 했던 말이다. 그들 부족이 사실은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것이 밝혀지며 종종 놀림과 패러디의 대상이 됐던 이 문구는, 저 먼 정글이 아닌 훨씬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다른 부족을 위해 필요해 보인다. 바로 ‘일부’ 한국 남성이라는 부족이다. 이 부족은 정말 쉽게 놀라고 쉽게 상처 받는다. 그들은 여성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서 펄쩍 뛴다. 걸그룹 에이핑크 멤버 손나은이 ‘Girls can do anything’이라는 문구가 적힌 스마트폰 케이스를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이들 부족은 늪지에서 나온 괴물이라도 본 듯 맹렬히 비난 댓글을 달아 결국 해당 게시물을 내리고 협찬 제품일 뿐이라고 해명하게 했다. 한국 남성 부족은 여성이 베스트셀러 소설을 읽는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지난 1월 소녀시대 멤버 수영이 웹 리얼리티쇼 <90년생 최수영>에서 자신이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어쩌면 스스로도 당연하게 여겨온 불평등과 차별을 인식하게 됐다고 말하자, 디시인사이드의 남성 유저들은 심한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독서하는 여성에 대한 당혹스러움은 최근, 걸그룹 레드벨벳 멤버 아이린이 팬미팅 자리에서 역시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 번 드러난다. 아이린의 사진을 불태우고 인증하는 모습에선 그들의 분노와 함께 사진을 통해 대상을 해코지하려는 주술적 사고도 확인할 수 있다.

[위근우의 리플레이]아이린에 분노하는 한국 남성들

아이린, 최수영, 손나은이 무엇을 잘못했는가? 별로 의미 없는 질문이다. 변호할 것도 변명할 것도 없는 문제다. 소녀가, 여성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이 싫다면 그건 그냥 성차별주의자일 뿐이다. 한 개인이 한국 사회의 평균적인 여성상을 담담하게 그려내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을 읽은 게 싫고 읽었다고 말하는 게 싫다면, 생각의 자유와 발언의 자유를 인정하기 싫은 파시스트일 뿐이다. 해당 발언과 소설이 페미니즘을 대변하기 때문에 문제라는 시비도 마찬가지다. 몇몇 매체는 선의로 아이린을 옹호하기 위해 단지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것만으로 페미니스트 선언으로 볼 수 없으며 ‘페미니스트 논란’에 휩싸이는 건 과도하다는 논리를 폈지만, 근본적으로 ‘페미니스트 논란’이라는 말 자체에 어폐가 있다. 성에 따른 불평등이 실재하는 사회에서 그것을 더 평등한 방향으로 옮기자는 것에 논란이라는 말을 붙이는 게 정당한가? 평등주의자 논란, 민주주의자 논란, 자유주의자 논란(특히 ‘Girls can do anything’에 있어) 같은 말이 성립할 수 없는 것처럼 ‘페미니스트 논란’도 가짜 개념이다. 여성혐오 논란, 차별 발언 논란, 표현의 자유 제한 논란이 가능할 뿐이다. 민주주의적 이상을 지닌 시민사회에서 합의된, 아니면 최소 합의를 가정한 전제들을 지키는 데 있어 수세적 입장을 취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증명해야 할 것은 아이린의 잘못 유무가 아니다. 질문하고 증명(혹은 반증)해야 할 건, 과연 손나은과 아이린과 수영에 분노하고, ‘Girls can do anything’이란 표현에 신경이 곤두서는 한국 남성 부족을 현대 문명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동등하게 취급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비록 그들이 시민사회의 전제가 될 규범들을 처음 보는 것처럼 놀람과 증오의 시선으로 다룬다 해도 그들을 쉽게 비합리주의자로 전제하는 것은 위험하다.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의사소통행위이론>에서 기존 원시부족 연구 방법론을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해석자는 문제가 되는 발언이 일단 합리성을 가질 것이라는 가정 아래 출발하고, 경우에 따라 단계적으로 그것의 비합리성을 확인한다. 이것은 해석자의 자비가 아니라 방법론적 당위이다.” 이 부족이 갖고 있는 논리 체계를 확인하기 위해선 우선 이들의 일관된 태도를 확인해야 한다. 즉 문재인 대통령이 <82년생 김지영>을 선물받고 김정숙 여사가 읽었다는 것에는 분노하지 않다가 수영과 아이린에게 분노하는 비일관성보단, 아이린의 독서에 대한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보이그룹 엠블랙 출신 지오가 장애인 비하 등으로 유명한 BJ 철구를 좋아하고 또 이를 존중해달라고 하는 것에 침묵하는 비일관성보단, 여성 아이돌이 주체적인 자기 생각을 드러낼 때마다 분노하는 일관성의 맥락을 합리적으로 재구성해봐야 한다.

한국 남성 부족은 걸그룹 멤버가 성평등적인 관점에 접근하고 자기 생각을 주체적으로 발언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앞서의 책에서 하버마스는 “(원시 부족의) 도덕성과 진리 같은 타당성 개념들은 (…) 경험적 질서 개념과 혼합되어 있다”고 말한다. 한국 남성들이 아이린과 손나은이 잘못했다고 믿는 건 그들이 경험하고 공유해온 어떤 질서를 아이린과 손나은이 위반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걸그룹이 성적으로 객체화되고 상품화된 존재여야 한다는 경험적 질서다. 그들에게 걸그룹은 노출을 하거나 섹시 댄스를 추거나 유아적인 복장을 하거나 애교 자판기 역할을 하는 존재이며, 또한 꽤 오랜 시간 실제로 그러했기에 한국 남성 부족은 이것을 서로 합의된 규칙으로 받아들였다. 여기에 기획사들이 일조했다는 사실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한국 남성 부족의 내적 논리에 따르면 아이린은 기존의 신사협정을 위반한 것이다. 근대 이후의 상호주관적인 타당성 주장과는 거리가 먼 논리지만 어쨌든 이들에게도 논리는 있다.

[위근우의 리플레이]아이린에 분노하는 한국 남성들

그렇다면 이들 부족을 현대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다시 말해 그들은 현대 시민사회가 원하는 수준으로 계몽될 정도의 능력을 지녔는가. 다시 하버마스를 인용하면 “인지적 도구적 영역에서 근거 있는 생각을 피력하고 효율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실패로부터-가설의 반박과 개입의 좌절로부터-배우는 능력과 결합되지 않을 경우 그 합리성은 우연적인 것에 불과하다”. 아이린과 수영은 여성을 객체로 보는 한국 남성 부족의 믿음에 직접적으로 균열을 냈다. 기존의 믿음은 가상적인 질서였다. 여기까지 인식할 수 있다면 그동안 기획사와 자신들 간에 합의됐다고 생각했던 규칙은 시장 논리 안에서만 잠시 통용됐을 뿐 도덕적으로 타당하진 않으며 그렇기에 변화할 수 있다는 인식에도 이를 수 있다. 또한 자신들이 아이린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려면 공동체적인 규범을 전제해야 하며, 그걸 전제하는 순간 걸그룹 멤버도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주체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게 당연하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즉 자신의 내부 모순을 인식하고 고쳐야 한다. 이것이 이들 부족을 현대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다. 그럼에도 이를 거부하거나, 혹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국 현대문명에 놀라지 않을 자기들만의 정글에 모여 부족의 순수성을 지키도록 할 수밖에. 요즘 논란이 되는 ‘펜스 룰’이 이런 형태라면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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