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여러분, 이번 주말엔 ‘피의 연대기’를 관람하는 건 어떨까요

2018.02.02 17:23 입력 2018.02.02 17:28 수정
칼럼니스트 위근우

문화적·사회적·생리적·정치적 맥락 에서 본 월경

이것은 교차와 연결에 대한 이야기다. 여성의 월경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피의 연대기>는 종으로는 달마다 피를 흘려야 했던 여성들의 역사를 연대기(年代記)로 풀어내는 동시에, 횡으로는 자신의 몸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고 공유하며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의 피의 연대(連帶)를 보여준다. 자신은 패드형 생리대를 쓰지 않는다고, 너희는 생리대를 쓰느냐고 되묻는 외국인 친구를 보고 감독 본인이 호기심을 느껴 시작된 월경에 대한 종과 횡의 탐구에서 이 둘은 서로 분리되지 않고 끊임없이 교차한다. 의학적 지식이 부족해 월경혈이 여성의 열등함을 증명한다고 믿었던 시대 여성의 경험은 21세기가 십수 년 지난 지금도 ‘처녀막’이라는 잘못된 용어와 잘못된 선입관에 시달리는 여성의 경험과 조우하며, 여성들을 위해 생리컵을 개발한 리오나 차머스의 노력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여성들을 위한 중요한 대안이 되었다. 이처럼 종과 횡이 교차하는 촘촘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월경이라는 키워드 안에서 교차하는 문화적·사회적·생리적·정치적 맥락 역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남성 인터뷰이를 거의 등장시키지 않았음에도 이 작품이 남성 관객에게 교육과 계몽의 효과를 주는 건 일차적으로 잘 직조된 스토리텔링과 정보량 때문이지만, 또한 이 교차와 연결의 그물망으로부터 남성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위근우의 리플레이] 남성 여러분, 이번 주말엔 ‘피의 연대기’를 관람하는 건 어떨까요

교양 다큐로서 <피의 연대기>는 높은 곳에 서서 관객에게 한 수 가르치기보다는, 연출자이자 화자인 감독 스스로 월경에 대한 본인의 무지를 인식하고 다양한 여성의 경험을 공유하고 취재하는 과정을 관객이 함께 따라가도록 유도한다. 모르던 것을 알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이 과정은 충분히 교육적이다. 파피루스를 말아서 탐폰을 만들었던 이집트부터 면과 거즈로 집에서 생리대를 만들어 썼던 할머니·어머니 세대의 이야기는 흥미로운 미시사이며, 면 생리대, 울 탐폰, 해면 탐폰, 생리컵 등 패드형 생리대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제품들의 소개는 동시대 여성들에게 실용적인 정보다. 그리고 무엇보다 월경에 대한 여성 인터뷰이들의 크고 작은 경험담들이 여성 관객들에게 ‘피의 연대’를 느끼게 해준다면, 남성들에겐 월경이란 것이 인류 반수의 보편적 경험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인식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월경에 대한 ‘그날’이란 표현 때문에 정말로 한 달에 하루만 겪는다고 생각하거나(김보람 감독도 ‘관객과의 만남’ 자리에서 ‘그날’이란 표현의 해악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영화 속에 나온 댓글처럼 참으면 되는 일 아니냐고 말하는 남성들이 적지 않은 이곳에서, 남성 관객이 간접적으로나마 여성의 경험세계를 공유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큰 계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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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피의 연대기>가 남성 관객에게 정말 계몽적인 건, 단순히 무지로부터 앎을 향해 가기 때문만이 아니다. 인류 반수가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겪어온 보편적인 경험에 대해 당사자들을 포함한 인류 대부분이 무지하거나 부정적이라는 것은 이미 어딘가 미심쩍은 일이다. 당장 월경을 소재로 한 영화가 이제야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그렇다. <피의 연대기>는 무지로부터 앎을 향해 나아가는 동시에, 이 무지가 사실은 학습되고 강요된 무지라는 것을 드러낸다.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 여성에게 월경의 고통이 시작됐다는 기독교 신화는 월경을 잘못에 대한 징벌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초경에 대해 이제 여성이 된 것이라고 축하하는 문화는 여성을 아이 낳는 존재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여성혐오적이다. 그리고 거의 모든 여성혐오가 그러하듯, 월경에 대한 무지와 오해는 남성 중심적인 관점과 구조에서 비롯되며 또한 이를 강화 및 재생산한다. 가령 탐폰을 끼면 처녀막이 찢어지지 않느냐는 영화 속 질문은 무지한 게 맞지만, 이것은 텅 비고 투명한 상태의 무지가 아니다. 오히려 탐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엔 처녀막이라는 잘못된 단어 속에 스민 여성에 대한 순결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 처녀막은 기본적으로 막이 아닌 주름에 가깝고 처녀성과는 상관없으며 처녀성 자체가 순결을 강요하는 용어다. 지하철에 상당한 하혈을 한 뒤 미처 뒤처리를 못하고 내린 여성에 대해 걱정하기보다는 민폐를 끼쳤다며 핏자국 사진을 찍고 조리돌림을 한 남성 누리꾼 역시 그저 무지해서 여성에게 잘못된 혐오를 투사했다기보다는, 월경을 비롯한 여성의 문제를 몰라도 되는 것으로 치부하는 문화 속에서 그렇게 당당히 무지를 전시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게 맞다. 여성들의 삶이 종횡으로 교차하는 <피의 연대기>엔 남성들이 동참하거나 침묵하며 수혜를 입었던 남성 중심적 문화와 권력의 맥락 역시 교차하고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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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하진 말자. 이 영화는 단 한순간도 남성에게 적대적이거나 분노하지 않으며, 언뜻 무섭게 느껴지는 제목과 달리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와 경쾌한 리듬을 유지한다. 월경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아왔던 평범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기 위해 기존에 널리 알려져 있던 페미니즘 활동가 섭외를 피하려 했던 감독의 의도 덕에, 인터뷰이 각각의 목소리는 하나의 관점에 갇히지 않고 생기 있게 약동한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피의 연대기>는 역설적으로, 여성 창작자가 여성 당사자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관찰하고 궁구하는 순간 그 텍스트는 필연적으로 여성주의적인 맥락과 효과를 가지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 역시 보여준다.

영화 후반부 뉴욕시의 무상 생리대 법안 통과를 이끈 페미니스트 활동가의 “이것은 평등의 문제”라는 말과 함께, 월경에 대한 연대기적 탐구의 여정은 이것이 여성 개개인의 불편함 문제가 아닌 사회 공동체가 논의해야 할 정치적 의제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를 통해 남성 관객 역시 자신의 무지와 그 무지를 가능하게 했던 불의의 연대를 인식하고, 월경을 비롯한 여성주의적 이슈에 대한 동료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이 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필요한 필수 교양으로서, 오랜 시간 끈끈하게 이어져온 여성들의 피의 연대를 느끼고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공감의 서사로서, 남성이기에 몰라도 된다고 믿었던 학습된 무지를 깨뜨려줄 계몽적인 텍스트로서. 학교에서 단체 관람을 해도 좋을 것이고, 배우자나 이성 연인에 대해 여전히 아는 것이 부족한 남성들이 파트너와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눠도 좋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나와 남을 연결하지 못하는 공동체 문화의 붕괴를 안타깝게 이야기하지만, 공통의 경험세계를 공유하고 복구해주는 텍스트는 흔치 않다. 그리고 <피의 연대기>는 그런 흔치 않은 작품 중 하나다.

지하철에서 심각한 하혈을 했던 여성의 사연은, 비싼 생리대 가격 때문에 신발깔창으로 대신해야 했던 학생의 슬픔은, 거즈로 만든 생리대를 차고 1시간씩 등·하교를 하다가 허벅지가 다 헤진 어머니 세대의 지난 경험은 모두 교차되고 연결되어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지에 대한 논의와 전망의 제법 단단한 토대를 이뤄낸다. 과연 이것이 시민의 교양이 아니면 무엇이 시민의 교양이란 말인가.

칼럼니스트 위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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