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개의 부품으로 이뤄진 자동차

2010.10.08 10:02 입력 2010.10.08 10:03 수정
경향신문 영상미디어국 이다일기자

이따금 TV에는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조립되고 있는 자동차 공장이 나온다. 차의 뼈대를 이루는 섀시가 지나가면 로봇이 용접을 하고 기술자들이 각종 부품을 조립한다. 컨베이어벨트 옆에는 부품이 쌓여있고 공장의 통로에는 무인 전동차가 부품을 운반한다. 2만개의 부품이 조립된 자동차가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분이다.

자동차 조립의 과정

포드의 생산라인, 벨트위에서 작업자들이 순서대로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wikipedia

포드의 생산라인, 벨트위에서 작업자들이 순서대로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wikipedia

자동차 생산 역사에 가장 큰 혁신은 포드의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이다. 1903년 자동차 회사를 설립한 헨리포드는 ‘T형 포드’제작에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도입했다. 당시에는 혁신적인 시스템이었다. 50여개의 자동차 회사가 있었지만 마치 조각가가 조각하듯이 수공으로 만들던 시절이었는데 이것을 대량생산이 가능한 방식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한 줄로 지나가는 벨트에 차를 놓고 공정에 따라 필요한 부품을 하나씩 조립하는 방식이다. 이후 포디즘으로 불리며 자동차 생산 방식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재고문제는 골치였다. 포드의 방식으로 차를 조립하려면 조립자의 손이 닿는 가까운 거리에 그날 조립할 모든 부품을 적재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었고 산더미처럼 쌓인 부품은 공간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재고관리에 문제점을 야기했다.

이런 문제점을 1980년대 토요타에서 개선했다. 부품업체와 완성차업체가 분업을 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일명 JIT(Just in time)라고 불리는 방식이다. 쉽게 말하면 필요한 부품을 필요한 시간에 부품업체에서 가져다 놓는 것이다. 완성차 제작 업체에서는 부품의 재고관리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었고 작업 공간도 절약됐다. 최근 현대차에서는 JIT방식을 개선에 JIS(Just in sequence)시스템을 도입했다. 부품업체에서 시간에 맞춰서 공급하는 것뿐만 아니라 조립순서에 따라 여러 옵션의 부품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다양한 옵션을 가진 자동차를 생산하는데 적합한 방식이다. 차에 조립될 부품들을 옵션에 따라 순서대로 부품업체에 주문을 한다. 그리고 순서대로 조립하면 각기 다른 옵션을 가진 자동차들이 같은 생산라인에서 제작된다.

자동차 메이커와 부품계열구조

현대차에 납품되는 현대모비스의 섀시모듈.  @현대모비스

현대차에 납품되는 현대모비스의 섀시모듈. @현대모비스

철을 녹여서 차체를 만들고 첨단 전자부품을 조립해야하는 자동차는 원자재 생산부터 조립까지 계열화가 필요했다. 현대차를 예로 들면 현대제철에서 차체를 만들고 현대모비스에서 섀시, 운전석을 비롯한 부품을 만든다. 그 외 수백 개의 협력업체에서 만들어 온 부품을 조립해 자동차가 완성된다.

미국의 자동차 전문지 ‘오토모티브 뉴스’에서 발표한 ‘세계 100대 자동차 부품회사’에는 낮선 이름이지만 우리가 타고 있는 차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드는 회사들이 있다. 2009년 매출액 1위를 차지한 ‘덴소’는 일본 토요타에 부품을 공급한다. 2008년에만 매출 46조원을 기록했다. 또 2위를 차지한 ‘보쉬’는 독일차를 비롯한 여러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공급한다. 현대기아차에 부품을 공급하는 ‘현대모비스’도 12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밖에도 GM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는 ‘LG케미컬’은 6위로 첫 등장해 깜짝쇼를 펼쳤다. 대부분의 부품업체는 연관된 완성차 업체의 흥망에 따라 성과가 나뉜다. 미국차의 극심한 부진 속에 ‘델파이’는 꾸준히 3위권에 들다가 순위가 크게 하락했다.

자동차 부품업계의 미래, 모듈화

현대모비스가 제작하는 모듈. @현대모비스

현대모비스가 제작하는 모듈. @현대모비스

자동차 부품업계는 크게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시장과 A/S(사후관리)시장으로 나뉜다. 현대모비스의 경우 7:3 정도의 비율로 OEM사업 비중이 높다. 즉 완성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게 주된 사업이다. 초기에는 완성차 회사에서 요구하는 설계대로 만들어 제품을 납품했다. 하지만 납품에서 그치지 않고 부품의 수요, 공급 예측과 물류관리까지 맡아 하면서 부품업계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 최근에는 자동차에 필요한 부품을 볼트나 너트의 단위가 아닌 엔진, 변속기, 섀시 같은 큰 단위의 조립품을 만들어 납품한다. 이것을 '모듈'이라고 부른다. ‘모듈화’는 세계 자동차 업계의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모듈화’의 장점은 크게 두 가지다. 부품업체에서 1차 조립을 통해 모듈을 만들기 때문에 불량률을 낮추고 조립시간이 줄어든다. 따라서 자동차 업계에서는 모듈화의 척도를 경쟁력으로 삼기도 한다. 현대차의 쏘나타는 40% 정도를 모듈화 했고 르노삼성의 경우에도 모듈화를 확장해가고 있으며 폭스바겐에는 평균 17개의 모듈을 사용하고 있다.

모듈 시스템이 자동차에 처음 도입된 때는 1990년대 초반 독일 자동차 업계의 불황기였다. 폭스바겐의 3세대 ‘골프’ 모델에 독일 부품회사 ‘Hella’의 ‘프론트엔드(앞 범퍼를 포함한 전방 부품)’ 모듈로 생산비용과 불량률을 낮추기 위해 적용됐다. 이후로 폭스바겐은 ‘모듈화’를 회사의 기치로 내세우고 있다. 엔진, 변속기 등의 모듈을 폭스바겐의 여러 모델이 공유한다. 뿐만 아니라 회사의 애프터서비스센터 건물도 모듈화에서 차용한 디자인으로 꾸몄다. 국내에서는 현대모비스가 99년 국내 최초로 섀시 모듈을 공급한 것을 시작으로 덕양산업, 성우하이텍, 만도, 현대위아 등 다양한 업체가 자동차에 들어가는 각종 모듈을 생산하고 있다.

현대모비스의 경우 현대차에 주로 납품하지만 ECU를 비롯한 전장 모듈을 크라이슬러에도 수출하고 있다. 지프 랭글러에는 4년 전부터, 최근에는 그랜드체로키, 닷지 듀랑고에도 모듈 공급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BMW에도 브레이크, 에어백과 같은 주요 부품을 납품하기로 했다. 부품업체의 당면과제가 바로 수직적 계열화를 탈피해 글로벌 회사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JIS시스템에 의해 모듈이 조립되는 과정. @현대모비스

현대차의 JIS시스템에 의해 모듈이 조립되는 과정. @현대모비스

모듈화가 도입되면서 생산 공장의 모습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부품업체 공장에서 만든 모듈을 차에 싣고 완성차 공장으로 납품했다. 물류비용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JIT, JIS 방식에 따라 시간과 순서에 맞춰 부품을 공급해야 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완성차 공장과 부품공장이 근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현대차의 체코공장, 미국 조지아공장 바로 옆에는 현대모비스의 공장이 있다. 공장 내부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부품업체의 모듈이 완성차 공장으로 운반된다. 구조상으로는 마치 한 회사처럼 움직이지만 가장 효율적인 생산과정을 찾아가는 과학이 숨어있다.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가 계열화 되어가니 단점도 드러났다. 완성차 회사에 의존도가 절반을 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2009년 자동차 부품매출 세계 1위를 차지한 덴소는 토요타와 장기계약을 통해 안정적 협력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49%에 이르는 토요타 의존도가 약점으로 지적된다. 한국의 현대모비스도 마찬가지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세계 5대 자동차 회사에 진입했지만 부품업체 12위에 머물러 독자기술 개발과 글로벌화가 당면과제다.

<경향신문 영상미디어국 이다일기자 cam@khan.co.kr>

현대모비스의 미국 오하이오 공장 메인라인. @현대모비스

현대모비스의 미국 오하이오 공장 메인라인. @현대모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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