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일본의 불패신화 ‘닛산 GT-R’

2012.05.18 14:42

닛산의 GT-R은 일본의 드림카라 할 만하다. 고성능 스포츠카 계열의 전형적인 GT(Grand Touring)카인 GT-R은 일본인의 감성과 향수를 자극하는 몇 안 되는 모델 중 하나다. 특히 일본 모터스포츠 역사에 남긴 영향이 매우 크다. 여러 레이싱 대회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이른바 ‘GT-R 불패신화’를 남긴 일본의 대표 모델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포르쉐의 벽을 넘어서기 위해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집념과 열정은 GT-R이 높이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가 되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닛산 GT-R은 사실 스카이라인 시리즈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GT는 장거리 주행이 가능한 고성능 자동차를 일컬으며 ‘R’은 레이싱의 약자를 썼지만 보통 해당 트림에서 최상위 모델을 뜻한다. 스카이라인은 1957년 프린스 자동차에서 시작됐다. 조그만 규모의 회사였으나 항공기술자들이 주축이 돼 자부심만큼은 대단한 회사였다.

원래는 전기자동차를 조립하고 생산했으나 한국전쟁 발발 이후 배터리 값이 오르고 전기차의 경쟁력이 떨어지자 결국 가솔린 엔진의 차량 제작으로 방향을 틀었다. 선발주자였던 토요타가 1955년 첫 번째 국산차 크라운을 출시하자 이에 자극받아 2년 후 직렬 4기통에 배기량 1,484㏄ 엔진을 얹은 스카이라인을 출시했다.

닛산 GT-R 3세대(R32) <출처: 한국닛산>

닛산 GT-R 3세대(R32) <출처: 한국닛산>

코드네임 ‘ALSI’로 출시된 스카이라인의 첫 차는 1963년 1,900㏄로 업그레이드된 GT로 바뀌어 자국 시판 차량들을 대상으로 한 제1회 일본 그랑프리에 참가했다. 메이신 고속국도 개통을 기념해 열린 이 대회에서 프린스는 꼴찌를 했고 기술력을 입증하려 했던 당초의 의도와 달리 판매량 급감이라는 역효과만 낳게 됐다.

프린스의 스카이라인으로 시작, 포르쉐 904에 무릎 꿇어 = 이때 일본에서는 자동차회사의 경쟁력 제고라는 이유로 정부 주도 아래 업계간 합병 조짐이 일기 시작했다. 프린스로서는 무엇보다 자신들이 가진 기술력을 입증해야 했고 해답은 레이싱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이는 것 뿐이었다.

닛산 GT-R의 경쟁상대였던 포르쉐 904 <출처: (cc) Terabass at Wikipedia>

닛산 GT-R의 경쟁상대였던 포르쉐 904 <출처: (cc) Terabass at Wikipedia>

이듬해 제2회 일본 그랑프리가 열리기 전 프린스의 개발 책임자였던 ‘나카가와 요이치’는 ‘레이스에서 이기지 않으면 작은 회사인 우리는 위험하다’고 공표했고 개발자들은 스카이라인 2000GT S54 레이스카를 만들어냈다.

150마력 이상의 최고시속 180㎞를 장담했던 스카이라인은 토요타 코로나나 닛산 블루버드, 마쓰다 캐롤 등 자국 차량과의 경쟁에서는 우위를 보였지만 포르쉐 904의 위엄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했다. 개인 드라이버가 수입해서 급하게 참전이 결정된 포르쉐였지만 역시 성능면에서는 스카이라인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닛산 GT-R 1세대 <출처: 한국닛산>

닛산 GT-R 1세대 <출처: 한국닛산>

이때부터 ‘타도 포르쉐’를 외쳤던 프린스는 한 해를 건너 1966년에야 드디어 복수의 기회를 얻게 됐다. 하지만 포르쉐도 904 이상의 성능을 보유한 906이 참가를 하기로 돼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재규어와 로터스, 포드 등 당대 경주대회를 휩쓸던 쟁쟁한 모델들이 대거 참여했다.

고민 끝에 엔진의 밸브형식을 기존의 SOHC에서 DOHC로 바꿨다. 특히 가장 큰 문제인 차체 경량화에 사활을 걸었다. 1년 전 그랑프리에 참가했던 S54의 경량형 철제 바디는 1,070㎏이였으나 포르쉐 904의 총 중량은 700㎏이였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는 경쟁에서 질 게 뻔한 일이었다. 다행히 항공기의 알루미늄 용접을 담당했던 기술자들 덕분에 기존의 강철 보디를 알루미늄 보디로 바꿀 수 있었고 그 결과 무게를 660㎏으로 줄인 ‘R380’이 탄생했다.

닛산 GT-R 2세대 <출처: 한국닛산>

닛산 GT-R 2세대 <출처: 한국닛산>

R380, 포르쉐 제치고 일 그랑프리 우승, 49연승 대기록 달성 = R380은 대회 내내 독주했고 포르쉐를 비롯하 여타 수입차들을 제치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닛산에 흡수합병되기 3개월 전 일이다. 우승 덕분에 명성을 얻게 된 프린스는 생산라인과 기술력을 그대로 인정받는 조건으로 1966년 8월1일 닛산에 합병됐다. 닛산도 R380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기술력을 이어받고 싶어 했다.

그렇게 해서 이듬해 탄생한 모델이 바로 닛산 스카이라인 GT-R(코드네임)이다. 2.0ℓ 직렬 6기통 엔진에 160마력, 최고시속 200㎞의 성능을 자랑했다. 1세대 GT-R로 불렸던 이 차는 외관상으로는 기존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으나 광폭타이어로 인한 뒷쪽 펜더의 개구부가 커진 점이 특징이었다.

VR38DETT 엔진 <출처: (cc) Muji Tra at Wikipedia>

VR38DETT 엔진 <출처: (cc) Muji Tra at Wikipedia>

‘양의 가죽을 쓴 이리’라는 닉네임으로도 불렸던 GT-R 1세대는 1972년까지 3년동안 마쓰다에게 단 한 번 승리를 내준 것을 제외하고 49전 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 ‘불패신화의 GT-R’이라는 닉네임을 얻게 됐다.

하지만 1972년 일본의 배기가스 규정에 막혀 양산이 중단됐고 이듬해 ‘KPGC110’이라는 이름의 2세대 GT-R이 도쿄모터쇼를 통해 공개됐다. 하지만 이때는 고성능 스포츠카의 수요가 오일쇼크로 크게 꺾여있을 때였고 결과적으로 실패작이란 멍에를 뒤집어써야 했다.

닛산 GT-R 4세대(R33) <출처: 한국닛산>

닛산 GT-R 4세대(R33) <출처: 한국닛산>

스카이라인의 고유 DNA, RB26DETT 엔진과 아테사4WD = 생산이 중단됐던 GT-R은 16년이 지난 1989년 R32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2.6ℓ 280마력의 트윈터보 엔진에 스카이라인만의 특징인 RB26DETT 엔진과 아테사 4WD이 적용됐다. RB26DETT 엔진은 ‘레이스 전용의 26 배기량, 듀얼 오버헤드 캠 사프트와 전자식 연료분사장치, 그리고 트윈터보’를 뜻했다. 아테사4WD는 후륜구동을 기본으로 주행하며 차제가 불안정할 경우 앞바퀴에도 적절히 구동력을 배분해 주는 ‘다판 클러치’를 쓴 사륜구동 시스템을 말한다.

R32를 이어 1995년 R33이 등장하는데, 오일펌프 드라이브 이음새 부분이 강화됐고 엔진과 캠 샤프트 또한 향상돼 토크를 증가시켰다. 1999년엔 공기저항계수를 줄인 R34가 공개됐다. RB26DETT 엔진은 280마력까지 출력을 냈지만 튜닝을 통해 500~600마력은 쉽게 올릴 수 있었으며 R34 역시 일본 그랑프리를 석권하며 명성을 이어갔다. 특히 R34는 튜닝업을 통해 1,000마력 이상을 끌어 올리기도 했다.

닛산 GT-R 5세대(R34) <출처: 한국닛산>

닛산 GT-R 5세대(R34) <출처: 한국닛산>

2007년 등장한 GT-R은 새로운 3.8ℓ 트윈터보 V6 엔진에 최대출력 485마력과 최대토크 60㎏•m의 성능을 뽐냈다. 특히 이 차는 포르쉐와 인연이 깊은 모델이기도 하다. ‘모토레이싱의 성지’라 할 수 있는 독일 뉘르부르크링(Nurburgring) 24시 경주에서 양산차 중 최고 수준인 7분 26초 70을 기록하며 포르쉐의 기록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 대회는 프랑스 르망 24시,벨기에 SPA 24시와 함께 세계 3대 내구레이스 경기의 하나로 서킷을 24시간 연속으로 달려 순위를 가리게 된다. GT-R의 명성은 지금까지 이어져 2012년형은 3.8ℓ 트윈터보 V6 VR38DETT 엔진에 최고출력 530마력, 최대토크 62㎏•m의 강력한 성능을 자랑한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닛산 GT-R(2012년형) 제원

엔진 형식 : 3.8ℓ VR38DETT 트윈터보 V6 / 배기량 : 3,799㏄ / 차체형식 : 2도어 쿠페 / 트랜스미션 : 6단 듀얼 클러치 / 최대출력 : 530hp·6,400rpm / 최대토크 : 62.0㎏·m·3,200~6,000rpm / 전장 X 폭 X 전고 : 4,670㎜ X 1,895㎜ X 1,370㎜ / 휠베이스 : 2,780㎜ / 공차 중량 : 1,735㎏ / 생산년도 : 2012년형 / 생산국가 :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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