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거래소, 멈춰선 발전기에 연 3400억 ‘헛돈’ 썼다

2011.09.20 21:58 입력 2011.09.21 00:00 수정
홍재원 기자

매일 전력량 입찰… 탈락해도 ‘전기료’ 지급

전력거래소가 가동하지도 않은 ‘허수 발전기’에도 연간 3400억원의 전기료를 지급한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전력거래소의 ‘2010년 비가동 발전기 용량정산금 지급내역’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놀고 있는 발전기에 3417억4100만원의 ‘용량요금’이 지급됐다.

용량요금이란 개별 발전회사들이 전력 공급 입찰에 응하면 지급하는 돈이다. 지난해 용량요금 4조원 중 3400억원은 실제 발전기를 가동하지 않은 회사에 돌아갔다.

한 시민이 20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국전력공사 강남지점에 차려진 9·15 정전피해신고센터에서 한전 관계자와 상담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한 시민이 20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국전력공사 강남지점에 차려진 9·15 정전피해신고센터에서 한전 관계자와 상담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이 같은 허수는 전력거래소의 독특한 전력 생산 방식에서 비롯된다.

전력거래소는 하루치 전력 생산량을 조절하기 위해 입찰을 한다. 전력의 수요와 공급을 맞추기 위해서다. 전국에는 329기의 발전기가 있다. 거래소는 하루 전날 이들 모든 발전소에 입찰 참여 여부를 타진한다.

예컨대 ㄱ발전사가 “내일 우리가 공급할 수 있는 전력량은 총 10만㎾이며 가격은 ㎾당 100원”이라고 응찰하는 식이다. 또 ㄴ발전사는 20만㎾를 50원에, ㄷ발전사는 30만㎾를 70원에 공급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전력거래소는 세 곳의 용량을 합쳐서 “내일 공급할 수 있는 전력은 총 60만㎾”로 결정한다.

전력거래소, 멈춰선 발전기에 연 3400억 ‘헛돈’ 썼다

전력거래소는 전력 생산량이 결정되면 다음엔 수요량을 계산한다. 당일 날씨와 에너지를 많이 쓰는 생산공장의 수요를 감안해야 한다. 이렇게 나온 당일 전력 수요가 50만㎾라면 싼 가격을 제시한 순으로 발전소를 정한다.

전력 생산원가는 발전기마다 다르다. 원자력발전기가 ㎾당 40원가량으로 가장 싸고 유연탄 60원, 가스발전 150원, 중유 180원 수준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화력발전소가 불리한 조건이다.

전력거래소는 입찰에서 싼값을 제시한 ㄷ사와 ㄴ사를 당일 전력 생산회사로 결정한다. 이들 2개 회사만으로 당일 필요한 50만㎾를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비싼 가격을 써낸 ㄱ발전사는 입찰에서 배제돼 발전소를 돌리지 못한다.

문제는 ㄱ발전사가 공장을 돌리지 않고도 전기료를 받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ㄱ발전사와 같이 멈춰선 발전기에 지급된 돈이 3417억원이다. 단순 계산으로 2001년 전력거래소 체제 출범 후 10년간 3조원 규모의 돈이 이 같은 방식으로 지급됐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싼 전력을 우선적으로 구매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비싼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소는 평상시 입찰에서 계속 탈락할 수밖에 없다”며 “가동하지 않는 발전소에도 평소 시설관리에 필요한 일정한 돈을 지급하는 게 관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용량요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생산원가가 비싼 화력발전소는 전력성수기가 아니면 늘 입찰에서 탈락하기 때문에 발전소를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먹구구식 발전시스템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와 직결돼 있다. 발전기 고장으로 가동이 불가능한 발전기가 이 같은 사실을 숨긴 채 입찰에 응할 경우에도 손쉽게 돈을 타낼 수 있다. 입찰에서 탈락해도 요금을 받을 수 있어 비싼 가격을 써내면 공돈을 챙긴 채 공장을 놀릴 수 있는 셈이다.

전력대란 같은 초대형 사고가 생기지 않으면 발각될 가능성도 별로 없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18일 “정전 당일 202만㎾의 전력 공급능력이 허위로 보고됐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실체 없는 전력 생산능력을 지칭한 것이다.

단전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202만㎾를 적어낸 발전소들도 전기요금을 타갔을 것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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