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금리 큰 폭 인상 땐 서민 이자 부담에 ‘직격탄’ 우려
한은 ‘독립성 침해’ 논란 불거져…환율시장 개입도 본격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 가능성을 시사하자 경제당국이 다급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속된 금리 인상 흐름 속에서 또 한 번 금리가 큰 폭으로 오르면 서민 대출자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연일 치솟는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수급 대책을 통해 시장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겠다고 밝혔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아래 사진)은 25일 “미국과 (국내) 금리 격차가 커지면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도 “그걸(금리 인상) 가파르게 쫓아가자니 국내 경기 문제나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 여러 대출자들이 금리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고, 한은도 다음달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릴 가능성이 높아지자 그동안 ‘통화당국 소관’이라며 금리에 관한 언급을 피해왔던 기재부가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를 공식적으로 표시한 것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2일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 직후 ‘0.25%포인트 인상 기조가 아직 유효하냐’는 질문에 “전제조건이 많이 바뀌었다”며 빅스텝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기재부는 국내 가계부채 상황을 들어 금리 인상 자제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가계부채 수준이 높은 상태에서 금리가 크게 오르면 대출자들의 이자부담이 커져 취약계층부터 단계적으로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추 부총리는 이날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부채 증가 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여섯 배에 달한다”고 말했다.
통화당국은 올해 초 연 1.0% 수준이던 기준금리를 5차례에 걸쳐 2.5%까지 끌어올렸고, 대출자들의 상환 압박은 이미 높아진 상태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자영업자 등을 대상으로 저금리 대출을 지원하는 등 정책을 잇따라 발표했는데, 다음달 금리가 한 차례 더 인상되면 이 같은 정책 효과마저도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추 부총리의 이 같은 발언에는 물가 상승률이 정점에 도달하는 등 인플레이션 고비를 넘겼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재부는 금리 인상 대신 외환보유액 투입, 민간 보유 해외 금융자산 매각 등 경제당국의 정책을 이용해 환율 상승을 막아보겠다는 입장이다. 달러 강세를 진정시키기 위해 시장에 달러를 추가 투입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재부는 이날 조선사의 선물환 매도 수요를 시중은행과 국책은행이 소화하는 등 연말까지 80억달러가량이 국내 외환시장에 공급될 수 있도록 조치키로 했다. 또 정부는 민간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해외 금융자산을 팔면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식으로 2조1000억원가량의 민간 대외자산을 국내로 끌어들이는 방안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추 부총리는 이날 “외환보유고는 금고에 쌓아두라고 있는 게 아니라 이럴 때 시장안정조치를 하라고 있는 자금”이라며 “외환보유고가 아직 많으므로 이런 부분을 활용해 적절한 시장안정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추 부총리의 금리 발언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경쟁적으로 큰 폭의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상황에서 달러 유동성 공급만으로 달러 강세를 완화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아울러 경제당국이 한은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