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한 철공소길에 뮤직펍 열고 프리마켓…대전 원도심 ‘변화 날갯짓’

2024.06.27 15:18 입력 2024.06.27 18:50 수정

대전 동구 원동 철공소길에 오래된 철공소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종섭 기자

대전 동구 원동 철공소길에 오래된 철공소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종섭 기자

대전 동구 원동 철공소길은 오랜 세월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원동은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하면서 대전역 인근에 처음 생긴 마을이다. 그래서 이름에도 ‘으뜸 원(元)’자가 쓰였다. 이곳에 철공소길이 생긴 건 1950년대다. 대전 최초 공업사인 남선기공이 터를 잡은 이후 기계·부품상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철공소 골목이 형성됐다. 골목 곳곳에 자리잡은 여관이나 여인숙도 철공소들이 호황을 누리던 시기 몰려든 기술자들 덕분에 성업했던 곳들이다.

하지만 산업 발달과 구조 변화로 영세한 철공소들은 설 자리를 잃어갔고, 이곳에서 성장한 기업들은 넓은 산업단지를 찾아 떠났다. 1990년대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대전역 인근 원도심에 자리잡은 관공서나 주요 기관들이 떠난 것도 철공소길의 쇠락을 앞당겼다. 지금도 30여개 철공소가 영업을 하고 있지만 골목은 생기를 잃은지 오래다.

쇠락해 가던 이 골목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22일 원동 철공소길은 청년들이 주도하는 프리마켓 행사로 모처럼 활기를 되찾은 분위기였다. 마을 주민과 청년들이 함께 노래자랑을 진행하고 버스킹을 하며 골목에 흥을 돋웠다. 청년 작가들이 직접 만든 소품을 판매하고, 먹거리도 나누는 흥겨운 난장이었다.

대전 동구 원동 철공소길에서 지난달 ‘철부지 프리마켓’이 열리고 있다. 동구 제공

대전 동구 원동 철공소길에서 지난달 ‘철부지 프리마켓’이 열리고 있다. 동구 제공

이날 행사는 철공소길의 유휴 공간에 조성된 ‘청년마을’ 입주자들이 주도했다. 2022년 옛 여관을 리모델링해 만든 원동 청년마을에서는 현재 20명의 젊은 문화예술인들이 ‘철부지들’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영상, 공예, 패션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청년 작가들이다.

이들의 청년마을 입주는 철공소길에 찾아온 작은 변화의 시작이었다. 골목길을 되살릴 방법을 찾던 청년들이 올해 처음 기획한 행사가 매월 한 차례 열리는 ‘철부지 프리마켓’이다.

조영래 청년마을 대표는 “처음 마을에 들어왔을 때 원주민들과 소통하며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가장 큰 숙제였다”며 “수익 모델을 개발하고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고민하다 시작한 것이 프리마켓”이라고 말했다. 이어 “입주 3년차를 맞아 주민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청년들의 입주 문의도 늘고 있다”면서 “철공소길의 역사성을 살리면서도 다시 사람이 모이는 골목을 만들기 위한 고민을 함께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전 동구 원동 철공소길 옛 동사무소 건물에 조성된 뮤직펍 ‘락공소’에서 지난 18일 국악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이종섭 기자

대전 동구 원동 철공소길 옛 동사무소 건물에 조성된 뮤직펍 ‘락공소’에서 지난 18일 국악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이종섭 기자

자치단체도 골목길의 부활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다. 동구는 철공소길에 있는 옛 동사무소 건물에 최근 ‘락(樂)공소’라는 이름의 뮤직펍을 조성했다. 공연장과 와인바, 야외 테라스 등을 갖춘 락공소에서는 정기적인 라이브 공연과 지역에서 활동하는 젊은 뮤지션들의 공연 무대가 마련된다. 청년마을과 다른 원도심 관광 자원 등을 연계해 관광객과 젊은 인구를 끌어모을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어 보겠다는 취지다.

주민들은 골목의 변화에 기대감을 나타낸다. 원동에서 40년간 철공소를 운영한 윤영로씨(70)는 “철공소길이 한때는 사람과 일감이 넘쳐나던 동네였지만 지금은 유령도시처럼 변해 버렸다”며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유동인구가 많아지면 아무래도 골목이 조금은 다시 살아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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