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무리수·검찰도 검증 무능… 결국 제 무덤 팠다

2014.03.12 00:00 입력 2014.03.12 03:53 수정

국정원·검찰, 수사 시작부터 항소심까지 자충수

여동생 “간첩 진술 강요”… 증거들 번번이 기각돼

위조 논란 후에도 검찰 ‘국정원 주장’ 전달 역할만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조작의 진상이 드러나면서 국가정보원과 검찰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국정원과 검찰은 이 사건 수사의 시작부터 항소심 재판 때까지 계속 무리수를 뒀다. 초기에 바로잡지 못한 잘못된 수사는 초유의 증거 은닉, 기록 위조와 날조 사태로 이어졌다.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에 대한 국정원의 수사는 2012년 10월 유씨의 여동생 가려씨가 탈북자 신분으로 한국에 들어오며 본격 시작됐다. 가려씨는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 독방에서 6개월 동안 생활하며 수사를 받았다. 수사과정에서 가려씨가 북한 이탈주민이 아니라 재북화교임이 확인됐지만 국정원은 가려씨를 신문센터에서 내보내지 않았다. 이 기간 국정원은 가려씨의 변호인 접견이나 서신 교환도 금지했다.

수사과정의 문제점은 공개되지 않은 채, 국정원은 “오빠가 간첩”이라는 여동생의 진술을 핵심 증거로 지난해 1월13일 유씨를 구속했다. 구속 일주일 만에 사건은 언론에 보도됐고 탈북자 출신 1호 서울시 공무원이 간첩이라는 사실은 시민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한 달 뒤인 2월26일 유씨를 구속 기소하며 사건의 경과를 공식 발표했다.

국정원의 무리수·검찰도 검증 무능… 결국 제 무덤 팠다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재판은 재판부의 결정으로 가려씨가 신문센터를 나오면서 기류가 변했다. 가려씨는 “국정원 수사관들이 ‘오빠가 간첩임을 자백하면 오빠와 함께 남한에서 살게 해주겠다’고 회유하고, 내 몸에 ‘회령 화교 유가리’라고 쓴 종이를 붙여 탈북자들이 다니는 길에 세워놓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검찰과 국정원이 재판에서 내놓은 증거는 번번이 탄핵됐다. 검찰과 국정원은 유씨가 2012년 1월21일 및 23일쯤 북한에서 스마트폰으로 찍었다는 사진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해당 사진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록을 살핀 결과 중국에서 찍은 것으로 밝혀져 증거능력을 상실했다. 국정원과 검찰은 유씨의 노트북을 압수해 2012년 1월22~23일 유씨가 중국 옌지에서 찍은 사진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이를 제출하지 않았다. 사실상 증거를 은닉한 것이다.

재판부는 사실상 유일한 증거였던 가려씨의 증언마저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고 판단, 유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지난해 8월 무죄를 선고했다.

국정원이 제공한 증거가 모두 무너졌지만 검찰은 항소심에서도 아무런 검증 없이 국정원의 자료에 의존했다. 국정원이 입수한 유씨의 북·중 출입경기록, 출입경기록 발급사실 확인서, 싼허변방검사참 정황설명서에 대한 답변서를 검찰은 순차적으로 재판부에 제출했다. 국정원이 제공한 기록이 변호인 측이 제출한 기록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도 검찰은 국정원 측의 논리를 강화할 자료만 요구했다.

법정에서 기록 위조 논란이 불거진 이후 검찰은 변호인 측 기록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중국 동포 임모씨의 자술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하지만 임씨의 자술서도 국정원 협력자가 임의로 작성한 변조된 문서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정원의 무리한 수사에는 정치·선거개입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다급한 상황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씨 사건이 처음으로 보도된 지난해 1월 경찰은 국정원에 대한 본격 수사를 벌이고 있었고, 국정원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었다.

이번 사건이 증거 위조 사태로 확산된 데는 검찰의 책임도 상당하다. 검찰은 국정원의 수사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국정원 주장의 전달자 역할에만 머물렀다. 검찰은 위조 논란이 불거진 뒤에도 ‘조작이 아닌 절차의 문제’라며 국정원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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