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보다 삶”… KAIST 교수들, 시 쓰고 토론

2011.04.12 21:46
정혁수 기자

학생들 슬픔 다독이기 나서

“얘들아! 학점보다 삶이 크고 중요하단다.”

카이스트(KAIST) 교수들이 실의에 빠진 학생들을 다독거리기 시작했다. 외국인 교수까지 나서 “영어강의는 아주 사소한 것”이라면서 “여러분의 삶만큼 값지고 중요한 것은 없다”고 위로했다. 다른 교수들도 한 편의 시로, 제문으로 카이스트의 슬픔을 어루만졌다. 12일 학내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학생들에게 발송된 인문사회과학과 제프리 화이트 대우교수(42·사진)의 e메일이 게시됐다. 그는 윤리학과 분석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화이트 교수는 “영어에 익숙한 해외파와 달리 국내파 학생들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서 “영어는 사소한 문제일 뿐 학점보다 삶이 그보다 크고 중요하다”고 당부했다.“학생들이 강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큰 실패로 생각합니다. 생애 처음으로 맞이한 실패…. 그것으로 상실감은 물론 자신감마저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학점보다 삶”… KAIST 교수들, 시 쓰고 토론

화이트 교수는 신입생들의 부적응에 대해서는 ‘한국식 교육’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대학입학 전까지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교육을 받아왔잖아요. 하지만 대학에서는 모든 것을 자기가 결정하고 해야 하는데…. 그 차이에서 큰 혼란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는 “평소 ‘학점을 잘 받지 못하면 가족들에게 얼굴도 들지 못하고 큰 실패를 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고 호소하는 학생들이 많았다”며 “성적이 저조하면 돈을 내야 하니까 스트레스(stress)와 우울증(depression)을 호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날 테크노경영대학원 이재규 교수는 전체 학생들에게 e메일로 시 한 편을 보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 잃는 것이 가장 두렵다. 그 사랑 때문에 죽고 싶던 마음조차 살아야 할 이유가 되지 않겠니. 네 주변에 너를 사랑하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혹 아무도 없거든 내게 오너라. 사랑한다 내 아들딸들아.”

그는 “수업에서 머리로 배워라. 삶에서는 가슴으로 배워라”고 배움의 자세를 일깨웠다.

생명화학공학과 김종득 교수는 ‘4월의 제문’이라는 글을 동료 교수들에게 보냈다. 그는 서남표 총장의 마지막 결단을 촉구했다. “지금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번민하고 있을지 모르는 학생들에게,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는 이 지긋지긋한 죽음의 사슬을 끊고 꿈과 비전을 가져다 줄 희망이 필요합니다. 서 총장의 마지막 결단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날 카이스트 곳곳에서 열린 각 학과별 사제 간 대화에서도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다. 교수와 학생들은 “은둔형 외톨이가 되지 말자” “영어강의 탓에 정서적인 상호작용이 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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