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휴업 중에도 공부 또 공부 “살아남으려면, 성적 올려야”

2011.04.12 21:59

어느 카이스트 신입생의 하루

12일 오전 10시10분 대전 유성구 구성동 카이스트(KAIST) 기숙사. 신입생 김미연양(19·가명)은 계속 울려대는 친구의 휴대전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교수님과의 대화에는 안 오니.”

“아뿔싸. 우리 과 교수님과의 대화가 아침 10시부터 시작한다고 했지. 벌써 10분이나 늦었네….”

미연양은 새벽 5시까지 보고서를 쓰다 그만 깜빡 잠이 들었던 것이다.

◇ “이 틈에 과제나 하자” = 학생과 교수의 자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카이스트에는 이틀째 휴업조치가 내려졌지만, 미연양은 여전히 ‘공부 중’이다.

“엄습하는 불안감, 자살의 공포를 공부로 해소하는 상황이에요. 살아남으려면, 그리고 ‘벌금’처럼 부과되는 등록금을 내지 않으려면 일단 성적이 좋아야 하잖아요. 전날도 거의 밤을 새워서 보고서를 썼으니까요.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오전에 반별로 진행되는 교수와의 간담회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작금의 사태가 안타까운 일이지만 솔직히 말해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자살 사태로 휴강한다고 하니까 애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그 틈에 과제나 해야겠다고 해요. 이 참에 푹 쉬겠다는 애들도 있고요. 그만큼 학업의 스트레스에 억눌려왔다는 얘기죠.”

미연양은 여론 수렴을 위한 휴업 중에도 공부와 숙제에 매달렸다. 그의 모습에서 지나친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카이스트 학생들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았다.

◇ “일반고 출신은 2~3배 더 공부해야 해요” = 미연양은 일반계 고교를 나왔다. 카이스트 학생의 60~70%를 차지하는 과학고 출신이 주류라면 그는 ‘비주류’인 셈이다. 카이스트에서 미연양 같은 ‘비주류의 인생’은 훨씬 고달프다.

“과학고를 나온 친구들은 과학·수학 등 기초과목 중 상당 부분을 고등학교 때 이미 배우고 오는데 저희들은 처음 접하거든요. 과학고 출신 학생보다 두 배 세 배 공부해야 간신히 따라갈 수 있어요.”

그는 거의 모든 학생의 커리큘럼이 획일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연양은 “출신고교 등에 따른 다양한 커리큘럼을 학교 측이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연양은 현재 물리·화학·미적분 등 ‘마(魔)의 3과목’을 따라잡기 위해 학교 측이 소개해준 선배로부터 지도(투터링)를 받고 있다. 이날도 휴업으로 생긴 황금 같은 여유시간을 이용해 학력을 보충하기로 하고 선배들과 일정을 잡아 일종의 ‘과외수업’을 받았다. 미연양은 영어로 진행하는 학교수업 때문에 부담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단어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영어로 수업을 하게 되니까 스트레스가 커요. 공부의 효율도 안 오르고요.”

그는 “신입생들의 경우는 한국어로 강의를 하고 2학년 이후부터 점차 영어수업을 늘려갔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 “가슴을 펴고 다닐 수 있었으면…” = 봄꽃이 활짝 피어난 캠퍼스를 걷던 미연양은 19세 소녀의 꿈을, 때로는 절망을 이야기했다.

“사실 꿈이니, 청춘이니 하는 말은 모두 환상이 되어버렸어요. 입학 전에는 대학에 가면 여행도 다니고, 미팅도 하고 싶었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카이스트라는 학교 담장 안에서 보내는 상황이거든요. 저희들도 때로는 놀기도 하고 행복해지고 싶기도 한데….”

그는 “학교는 나 같은 신입생도 가슴을 펴고, 행복감을 느끼며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미연양은 최근 학교 안에서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희망의 기운’도 전했다.

“우리끼리 모이면 ‘힘내자’는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어요. 구성원들이 힘을 모아 좋은 개선책을 내놓고 추진한다면 이 어려움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죠.”

밤이 되자 미연양은 다시 도서관을 찾았다. 물리와 화학 과목의 실험보고서를 빨리 써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지금은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요…. 성적이 낮은 학생에게 거액의 돈을 내라고 하는 제도만은 없어진다죠. 돈으로 벌을 주는 것은 좀 그렇잖아요.”

미연양은 “이제 학교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모아 제대로 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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