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만 네 번째” 발달장애인의 의미있는 낮 시간 위해 농성장에 모인 부모와 특수교사들

2018.04.19 15:55 입력 2018.06.05 20:28 수정

18일 서울 종로장애인복지관 앞 농성장에서 좋은교사운동 소속 특수교사들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좋은교사운동 제공

18일 서울 종로장애인복지관 앞 농성장에서 좋은교사운동 소속 특수교사들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좋은교사운동 제공

“제가 삭발만 4번째예요. 장애인 부모들이 머리 깎고 농성해서 고등학교까지 특수교육이 의무가 됐어요. 아이가 고등학교까지는 커버되는데 성인이 되니 갈데가 없네요. 그러니 주간활동 서비스를 확실하게 제도화해달라는 거죠.”

지난 18일 저녁 서울 종로장애인복지관 앞 농성장 천막 안에서 정순임씨가 말했다. 정씨는 광주에서 25살 발달장애인 아들과 산다. 정씨 곁에 좋은교사운동 소속 특수교사 8명 등 교사 10여명이 둘러앉았다. 교사들은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농성에 힘을 보태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정씨를 포함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 209명은 ‘세계 자폐증 인식의 날’이던 지난 2일 청와대 부근에서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요구하며 삭발을 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의무교육을 마친 발달장애인들이 낮 시간을 안정되게 보낼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그동안의 ‘주간보호’ 시스템은 주간보호센터에서 이뤄지는 돌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장애인 부모들이 원하는 ‘주간활동’은 발달장애인이 주간보호센터를 벗어나 지역사회 안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정씨는 설명했다. 정부는 2016년부터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를 시범운영하고 있지만 몇몇 지역에 한정돼 서비스를 받는 이가 그리 많지 않다.

주간활동의 큰 축은 곧 ‘일’이 돼야 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발달장애인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중증장애인직업재활지원 사업을 확대해달라고 요구한다. 정씨는 “우리 아들은 중증이 아닌데도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아들을 노동조합 조합원으로 만드는 게 희망사항”이라며 웃었다.

서울 서대문구 구의원으로 활동하는 김혜미씨에게는 25살 발달장애인 딸이 있다. 딸은 하루 4시간씩 장애인들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한다. 그는 “딸이 일하고 집에 온 뒤 친구라도 사귈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는데, 지역사회가 함께 가지 않으면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해 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과 스웨덴에 가서 장애인 정책과 지원서비스를 살펴보고 왔다. 그곳에서 만난 한 발달장애인은 동물농장에서 밥을 주는 일을 하며 임금을 받았다. 김씨는 “한국은 장애인이 일하는 것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한다. 장애인 직업교육도 제과제빵이나 바리스타 분야에 한정돼 있는데 직업군을 좀 더 폭넓게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특수교사들에게 학교에서 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교육을 내실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교육청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도 특수교육 기금이 있으니 필요하면 적극 요구하라고 조언했다.

19일 서울 종로장애인복지관 앞 농성장 앞에서 좋은교사운동 소속 특수교사들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좋은교사운동 제공

19일 서울 종로장애인복지관 앞 농성장 앞에서 좋은교사운동 소속 특수교사들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좋은교사운동 제공

초등학교 특수교사인 정모 교사는 2016년 교장이 장애 학생을 차별하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은 적이 있다. 무더운 한여름 특수학급에만 에어컨을 틀지 못하게 한 교장에게 문제를 제기한 교사가 바로 그였다. 이 사건은 사회적 이슈가 됐고, 인권위 권고에 따라 교장은 지난 2월 결국 해임됐다.

정 교사는 “몇 명 되지 않는 아이들을 한명, 한명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특수교사로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에 진정을 넣었다. 어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고통의 몇 배를 느끼셨구나 생각했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는 “인권위 권고 뒤에 이 지역 학교들은 특수학급을 적극 지원해주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한다. 어머니들의 외침과 울림이 쌓이고 쌓여서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라고 했다. 의정부의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노소온 교사는 “학교 현장의 인권교육이 형식적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중학교 이후에는 학생들 생각이 굳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초등학교 인권교육부터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장애인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을 요구하며 청와대 국민청원을 진행하고 있다. 26일 마감되는데 19일 오후까지 동의한 사람이 3만명이 못 됐다. 좋은교사운동은 “발달장애인도 다른 이들처럼 직업을 갖고 여가를 즐기고 원하는 교육을 받는 것은 헌법에 부여된 국민으로서의 온전한 권리”라며 청원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