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 ‘오운완’

장애인 전용 체육시설 있지만···‘통합 체육 공간’ 필요한 이유는

2022.08.08 06:00 입력 2022.08.08 09:43 수정

장애인생활체육지도자 이순홍씨가 지난달 26일 서울 광진구의 정립회관에서 장애인 휠체어농구팀을 지도하고 있다. 휠체어농구팀 동호회 회원들은 운동을 하기 위해 일주일에 2번 서울 마포구와 강서구, 경기 양평 등 각지에서 이곳을 온다. 최유진 PD

장애인생활체육지도자 이순홍씨가 지난달 26일 서울 광진구의 정립회관에서 장애인 휠체어농구팀을 지도하고 있다. 휠체어농구팀 동호회 회원들은 운동을 하기 위해 일주일에 2번 서울 마포구와 강서구, 경기 양평 등 각지에서 이곳을 온다. 최유진 PD

서울 광진구의 정립회관은 한국소아마비협회가 운영하는 장애인 전용 체육시설이다. 이곳을 오려면 역이 있는 큰 길가를 지나 아차산 숲길로 들어서 오르막을 쭉 올라야 한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에서도 비장애인 걸음 기준으로 20분 거리다. 휠체어가 오르기 쉽지 않아, 전용 셔틀이 다니지 않는 지역에 사는 장애인들은 자가용이나 장애인 콜택시로만 올 수 있다. 장애인 복지의 암흑기였던 1975년 설립된 정립회관은 ‘그 시절 혐오’를 피해 산 위로 올라갔다. 아차산 언덕 위 이곳은 패럴림픽에 나가는 국가대표의 훈련 장소이자, 때로는 30년 가까이 휠체어농구 아마추어 경기를 뛰러 오는 누군가의 삶의 공간이었다.

정립회관으로 가는 길. 아차산 언덕 위에 있는 정립회관을 가려면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휠체어로 오르기 쉽지 않아 장애인들은 자체 셔틀버스나 자가용을 이용한다. 이순홍씨 제공

정립회관으로 가는 길. 아차산 언덕 위에 있는 정립회관을 가려면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휠체어로 오르기 쉽지 않아 장애인들은 자체 셔틀버스나 자가용을 이용한다. 이순홍씨 제공

최근 지어진 대부분의 장애인 체육시설들은 산이 아닌 평지에 있다. 이제는 장애인 체육시설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 대신, ‘장애인 체육시설이 있으니 장애인은 거기 가서 운동하면 되지 않냐’는 질문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 질문은 현실 앞에서 무력하다. 대한장애인체육회의 ‘장애인 전용 체육시설 현황’을 보면, 장애인 복지관에 딸린 체육시설까지 포함한 전국의 장애인 전용 체육시설은 69개에 그친다. 지난해 말 기준 등록장애인 수(264만5000명)에 비하면 턱 없이 적다. 서울 기준으로도 인구 밀집도가 높은 자치구에는 시설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많은 장애인들은 전용 체육시설에서 운동을 하려면 왕복 2~3시간 거리를 감수해야 한다.

그마저도 등록을 하려면 최소 몇 개월부터 1년 넘게까지 대기해야 한다. 공공시설이라는 특성상 주간 프로그램 위주라 직장을 다니는 장애인은 이용이 어렵다. 지체장애인 변재원씨(29)는 “제주도에 있을 때 한 복지재단의 수영 수업을 등록하려면 1년 반을 기다려야 했다. 이게 오늘 등록해서 내일부터 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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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체육시설을 늘리면 문제가 해결이 될까? ‘장애인 체육시설 늘리기’에만 초점을 맞춘 정책은 자칫하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공간을 ‘분리’하는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휠체어 농구팀 트레이너 이순홍씨(27)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어려워하고 낯설어하는 이유가 익숙하지 않은 게 크지 않냐”며 “장애인과 같은 공간에서 운동을 하며 땀 흘리는 모습을 보는 게 서로 익숙해지는 과정인데, (운동하는 공간의) 분리를 해버리면 결국 다수가 소수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경험은 없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제의 시발점은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이용하는 대부분 체육시설을 갈 수 없어 소수의 장애인 체육시설로 몰린다는 것이다. 원칙상으로는 일반 체육시설을 장애인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상당수의 체육시설은 ‘장애인 경사로가 없다’ 등의 이유로 무한 대기가 이어진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발표한 ‘2021년 장애인 생활체육조사’ 결과를 보면, 제일 많은 장애인 응답자(26.5%)가 장애인의 체육시설 이용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가장 필요한 시설로 ‘다니기 쉽게 만들어진 복도 및 통로’를 골랐다. ‘장애인용 운동용품, 기구 및 장비’(19.2%)보다도 많다.

2021년 장애인 생활체육조사 중 ‘체육시설의 이용 편의성 향상을 위한 시설’에 대한 설문 결과.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2021년 장애인 생활체육조사 중 ‘체육시설의 이용 편의성 향상을 위한 시설’에 대한 설문 결과.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이씨는 “제일 쉬운 방법은 (시설을 새로 짓는 대신) 일정 크기 이상 체육시설에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경사로를 만들고 화장실 턱을 없애고 장애인 화장실을 하나 더 설치하는 것”이라며 “여기 와서 운동을 하는 건 당사자 마음이지만, 장애가 있든 없든 다 ‘올 수는 있게’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접근성을 제고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늘리자는 것이다.

장애인 생활체육에 대한 재정 지원 역시 ‘통합체육’으로 가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금은 장애인 생활체육 바우처의 대상이 장애인으로만 맞춰져 있는데, (통합체육의 차원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운동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경우 지원금을 주는 등 여러 유인을 만드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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