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은둔 청년에게 “취업·자기계발은 잊고…여기선 너 하고 싶은 거 해”

2023.05.23 06:00

비영리단체 더유스, 20~30대 은둔청년 위한 소모임

서울 용산구 한 모임공간에서 지난 17일 은둔청년들이 다코야키 만들기 소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한 모임공간에서 지난 17일 은둔청년들이 다코야키 만들기 소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시간·주제·인원 상관없이
아무나 편히 놀러오는 형식
거창한 지원보다 인적 교류
일주일에 한 번 ‘외출’ 계기
“모임 오랫동안 지속됐으면”

“과감하게. 실패해도 돼. 망쳐도 돼. 좋아, 좋아.”

다코야키 반죽을 뒤집던 김준우씨(27·가명)의 손이 머뭇대자 옆에서 격려가 이어졌다.

전용 팬이 있어도 무른 반죽에 동그란 모양이 잡히기까지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주위가 요란해도 “집중하느라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던 김씨는 20여분간 심혈을 기울인 끝에 동글동글한 다코야키 한 접시를 완성해냈다.

지난 17일 20~30대 청년 6명이 모인 서울 용산의 한 공간을 찾았다. 비영리 민간단체 ‘사람을 세우는 사람들 더유스’(더유스)가 매주 은둔청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소모임이다. 나이도, 사는 지역도, 살아온 이력도 다른 이들의 공통점은 가족 이외 타인과 거의 교류하지 않는(때로는 가족과도 단절했던) ‘은둔’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날 이들은 다코야키를 만들어 나눠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소모임 주제는 은둔청년 28명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사전 투표로 정했다. 매주 시간도, 주제도, 참여 인원도 바뀌는 이 모임의 원칙은 ‘하고 싶은 것을 해보자’는 것이다. 모임은 아무나 놀러 오면 되는 느슨한 형식이다.

지난 2월 처음 모임을 찾은 모카씨(32·활동명)는 심적으로 힘들어 바깥출입을 하지 않다가 이날 다시 나왔다고 했다. 모카씨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식물인간 상태였던 아버지는 그가 20세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오랜 병간호로 인한 피로와 알 수 없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려고 일본 유학을 택했지만 조울증이 발병했다.

치료차 한국에 돌아온 그는 20대 후반까지 4~5년간 은둔 생활을 했다. “방 안에서 ‘나는 실패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혔다”는 그는 증상이 심할 때가 아니면 자신의 은둔 경험을 청소년들과 나눈다.

대학 입학과 취직처럼 사회가 단선적으로 요구하는 ‘삶의 목표’가 좌절돼 은둔 생활을 시작한 경우도 있다. 최진권씨(31)는 대학 졸업 후 인터넷 방송 편집 일에 뛰어들었다가 사기를 당한 후 2년간 고립을 자처했다. 최씨는 “친구들은 결혼하고 좋은 직장을 다니며 30대를 맞는 걸 보니 아무도 만나지 않고 싶더라”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다 끊고 마치 죽은 사람처럼 살았다”고 했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집 밖을 나갈 계기’를 만들어주는 이 소모임이 일상의 활력이 된다고 했다. 특히 ‘부담 없음’이 장점이라고 했다. 최씨는 “대중교통을 타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은둔청년도 많다”며 “여기서는 ‘취업’이나 ‘자기계발’ 같은 것과 상관없이 ‘너희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니 부담 없이 올 수 있다”고 했다.

김재열 더유스 대표는 “다른 거창한 지원보다 은둔청년들에게 ‘친구 만들기’처럼 인적 네트워크를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며 “나와서 사람을 만나다 보면 안 사던 옷도 필요하고, 그러다 보면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겠느냐”고 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모임에 나온 성정민씨(32·가명)는 “이 모임을 계기로 물류센터 등에서 조금씩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둔청년들의 바람은 이 모임이 오래 유지되는 것이다. 모카씨는 “은둔청년들이 주도해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모임이 드물다”며 “오래 지속되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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