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차지한 환풍구, 용접 녹슬어 ‘너덜너덜’… 목숨 건 보행

2014.10.19 22:15 입력 2014.10.19 22:17 수정

서울 환풍구 6000개 넘어, 200곳은 높이 30cm도 안돼

“지하철 경우 70%가 고정 안돼”… 안전 규정 없이 방치

대도시에서 환풍구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서울의 경우 지하철, 공영주차장, 아파트, 상가 같은 다중이용시설에 딸린 환풍구는 최소 6000여개에 이른다. 경향신문이 19일 도심 환풍구 시설을 현장 취재한 결과 최소한의 안전기준을 준수한 환풍구는 찾기 힘들었다. 사람들은 경고문도 없이 비좁은 인도로 비죽 솟아난 환풍구 위를 아슬하게 걸어다녀야만 했다.

환풍구 안전기준은 미비한 데다 지키지도 않는다. 도시철도건설규칙은 지하철 환풍구 기준을 “지하선로에는 지하 공간의 크기, 도시철도의 운행계획, 이용객의 편익 등을 고려하여 적절한 환기설비를 해야 한다”고 포괄적으로 규정해 놓았을 뿐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내부 기준으로 1㎡당 500㎏ 이상의 하중을 견디도록 설치한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의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건물 환풍구’는 “도로면으로부터 2m 이상 높이에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낮은 곳의 높이가 60㎝였던 경기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공연장 환풍구처럼 이격 규정을 따른 환풍구는 많지 않다.

<b>한국은… 인도 위로</b> 19일 서울 서대문역 인근 인도에 있는 지하철 환풍구 위를 시민들이 걸어서 지나가고 있다(위 사진). 이날 덕수궁 대한문 앞 환풍구에는 판교 사고 이후 통행 통제선이 설치됐다(아래 사진). | 서성일 기자

한국은… 인도 위로 19일 서울 서대문역 인근 인도에 있는 지하철 환풍구 위를 시민들이 걸어서 지나가고 있다(위 사진). 이날 덕수궁 대한문 앞 환풍구에는 판교 사고 이후 통행 통제선이 설치됐다(아래 사진). | 서성일 기자

<b>일본은… 공중으로</b> 반면 일본은 시민 통행에 상관없이 지상 위 건축물의 형태로 공중을 향해 환풍구를 만든다. | 일본 아찌넷 캡처

일본은… 공중으로 반면 일본은 시민 통행에 상관없이 지상 위 건축물의 형태로 공중을 향해 환풍구를 만든다. | 일본 아찌넷 캡처

일부 환풍구는 좁은 도로 한가운데 낮은 높이로 있거나 별도 경고문구가 붙어 있지 않았다. 환풍구 위를 인도처럼 걸어다니거나 벤치처럼 앉아 있는 시민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종로 피카디리 극장 앞 약 2m 폭 인도의 3분의 2를 환풍구가 차지하고 있었다. 인도보다 5㎝ 정도 높은 환풍구를 피하려면 한 줄로 통행하거나 차도로 나가야 했다.

종로구 적십자병원 근처 인도 상황도 마찬가지다. 인도 폭과 거의 같은 넓이의 환풍구가 인도 중앙에 자리잡았다. 그 옆 건물 주차장이어서 사람들은 환풍구를 인도 삼아 걸어다녔다. 출퇴근길 이곳을 지나다니는 회사원 김모씨(27)는 “차가 환풍구에 걸쳐 주차하는 경우가 많아 환풍구 위로 다닐 수밖에 없다”며 “판교 사고 소식을 들으니 갑자기 불안해졌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황학동 가구판매점 거리 상황도 비슷했다. 좁은 인도 15㎝ 정도 높이의 환풍구 위는 인도였다. 인근 가구점에서 버리려고 내놓은 침대 매트리스와 의자 같은 물품들이 환풍구 위에 올려져 있기도 했다.

서울 지하철 이대입구역 인근의 한 버스정류장 앞에 위치한 10㎝ 정도 높이의 환풍구는 버스를 기다리는 장소로 쓰이고 있었다.

서울 지하철에 설치된 환풍구 2418개 중 인도에 설치된 환풍구는 1777개다. 녹지대 389개, 차도 49개, 중앙분리대 등 기타 장소에 203개가 설치돼 있다. 이 중 120㎝ 이상 높이로 설치된 환풍구는 1445개, 30~120㎝ 미만은 774개, 30㎝ 미만은 199개다. 특히 30㎝ 미만 환풍구는 올해까지 보도면과 같은 높이로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보행자 접근이 더 잦아져 사고 발생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박종국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은 “18일 서울 종로 일대를 돌며 환풍구를 점검해본 결과 너덜너덜한 곳, 용접된 곳이 녹슬어 떨어져 나간 부분 등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지하철 환풍구의 70%는 제대로 고정이 안돼 있는 상태였다”며 “종로, 시청 등은 집회도 많고 걸어다니는 사람도 많은 지역이라 설비 점검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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