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비용 철거’ 탓 붕괴 사고, 돈과 맞바꾼 ‘안전’의 민낯

2021.06.11 20:44

건물 수직으로 뜯는 작업 방식…붕괴 방지용 철줄 등 안전장치도 없어

업계 “재하도급 주며 총공사비 20% 떼…시간이 돈” 구조적 문제 지적

사고 현장에 놓인 추모 화환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 건물 붕괴사고 사흘째를 맞은 11일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현장에 한 시민이 두고 간 추모 화환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사고 현장에 놓인 추모 화환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 건물 붕괴사고 사흘째를 맞은 11일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현장에 한 시민이 두고 간 추모 화환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건축물 철거는 시간이 곧 돈입니다. 최대한 빨리 공사를 마치고 현장에서 빠져야 합니다.”

광주에서 건축물 해체 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11일 “철거는 공사기간이 길어질수록 비용부담이 늘어난다”며 “원청업체라면 안전에 좀 더 신경 쓰겠지만 하도급업체는 그렇게 하면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철거 공사를 수주한 원청업체는 대부분 재하도급을 주는데 이 과정에서 총공사비의 20%를 떼어간다고 한다.

A씨는 “좀 더 안전하게 철거를 진행할 수 있는 공법이 있지만 그렇게 하면 공사기간이 두 배 정도 길어진다”면서 “이번에 참사가 난 광주 동구 학동 붕괴 현장처럼 작업을 하는 것은 건물 해체 현장에서 일상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건물 철거작업 중 붕괴된 5층 건물이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친 ‘광주 참사’는 안전을 비용과 맞바꾼 한국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좀 더 안전한 방법이 있지만 대부분의 건물 해체 현장에서는 ‘공사기간 단축’ ‘비용절감’을 더 우선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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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은 일선 건물 철거업체와 건축물 구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이번에 붕괴된 건물을 대상으로 해체 시 소요되는 비용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사고 당시 철거업체가 학동 재개발구역 현장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진행한 공법은 안전을 우선하며 진행하는 방식에 비해 공사비용이 절반에 불과했다.

건축물 해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방식은 굴착기에 집게처럼 생긴 ‘압쇄기’를 장착한 뒤 콘크리트 등을 뜯어내는 ‘압쇄공법’이다. 굴착기 1대를 기준으로 안전관리자 1명, 신호수 2명, 물을 뿌리는 살수원 1명 등 노동자 4명이 필요하다.

압쇄공법은 크게 2가지다. 건축물의 하층부를 먼저 부순 뒤 잔해를 쌓아 굴착기가 이곳에 올라가 고층부를 철거하는 방식은 ‘성토 압쇄공법’이다. 6층 이하나 건물 높이 18m 이하 건물 철거에서 주로 사용된다. 사고 현장이 이 공법을 썼다. 이 공법은 수직으로 건물을 뜯어내 속도가 빠르지만 붕괴위험이 크다. 산처럼 쌓인 잔해가 남은 구조물을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밀어내는 경우가 많다. 이를 막기 위해 구조물에 철줄을 걸어 안쪽으로 붕괴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광주 사고 현장에서는 이 같은 조치도 없었다.

다른 하나는 굴착기를 건물 옥상으로 올린 다음 한 층씩 철거하며 내려오는 ‘톱다운’(장비탑재) 방식이다. 보통 7층 이상 건물을 철거할 때 적용된다. 층마다 잭서포트라는 철 기둥 보강재도 설치해야 한다. 그 대신 한 층씩 수평으로 건물을 뜯어내 붕괴위험이 거의 없다.

6층 이하 건물에서도 가능하지만 현장에서 이 공법이 사용되지 않는 것은 비용 때문이다. 굴착기를 건물에 올리려면 대형장비인 크레인이 필요하다. 성토 압쇄공법에 비해 작은 굴착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공사기간도 길어진다.

건물의 해체 비용을 두 공법으로 계산한 결과 성토공법은 공사기간 10일에 장비 임대료, 노동자 임금 등으로 1840만원이 들었다. 장비탑재는 한 번 이용하는 데 150만원인 크레인 비용이 추가되고 공사기간이 20일로 늘면서 임금 등이 증가해 3880만원이 필요했다. A씨는 “탑재공법은 낙하물방지망을 설치해야 하고 보강재 설치비용도 추가돼 총공사비가 성토공법 보다 5배 정도 많이 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건물 해체계획서를 작성하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는지 확인할 방법도 마땅치 않은 만큼 비용이 들더라도 안전한 공법을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구조 전문가 등을 배치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조성구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부회장은 “장비탑재 공법으로 철거를 하면 붕괴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안전하게 하려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지만 절차대로 해야 한다”면서 “해체 현장은 돌발 변수가 많기 때문에 건축물 구조 전문가를 배치해야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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