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노동자는 누가 돌봐주나

2011.05.01 22:12 입력 2011.05.02 00:26 수정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그림자 노동자’ 간병인·요양보호사

‘냉동밥’으로 때우고 쪽잠… 박봉에 가사일까지 맡아

“냉동밥 18개가 제 1주일치 식량입니다.”

지난달 27일 서울대병원. 6년째 간병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정경임씨(51)는 점심시간이 되자 냉동고에 얼려둔 밥을 꺼내 배선실로 향했다. 정씨는 집에서 싸온 멸치볶음과 김치를 반찬 삼아 선 채 밥을 먹었다.직원 식당에서 3800원짜리 밥을 팔지만 급여를 생각하면 사먹을 형편이 안된다. 정씨는 일요일만 집에서 쉬고 주 6일을 24시간 병원에서 보낸다. 요즘엔 뇌출혈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돌보고 있다. 환자의 가래를 빼주고, 음식물 섭취를 돕고, 씻기고, 안마하고, 약 먹이고, 진료시간까지 챙기느라 한숨 돌릴 틈이 없다. 밤에도 환자 곁을 떠나지 못하고 쪽잠을 자야 한다.

정씨는 “보호자가 올 때는 잠시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데 갈 데가 없다. 한번은 비상구 계단에서 박스를 깔고 앉아 있는데 참 서글프더라”고 말했다. 그의 일당(24시간 기준)은 5만5000원, 시급으로 따지면 2292원이다.

간병노동자 최은자씨가 지난달 27일 서울대병원에서 뇌종양 수술을 받은 환자를 돌보고 있다. | 김문석 기자

간병노동자 최은자씨가 지난달 27일 서울대병원에서 뇌종양 수술을 받은 환자를 돌보고 있다. | 김문석 기자

뇌종양 수술을 받은 환자를 돌보는 최은자씨(65)는 팔과 손등에 파스를 잔뜩 붙이고 있었다. 최씨는 “하루에 12가지도 넘는 일을 하는 것 같다”며 “밤에 잠을 못 자는 게 제일 괴롭다”고 말했다.

제121주년 노동절(1일)에 돌아본 간병·요양 노동자 등 ‘돌봄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이처럼 열악하다. 돌봄노동자 대부분은 중·노년층 여성으로 저임금, 부당한 처우, 과중한 업무량에 시달리고 있다.

2008년 시행된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제도권 안에 있는 요양보호사의 노동환경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9일 만난 요양보호사 주민순씨(59)는 싱크대 앞에 서서 도시락을 먹거나, 시간에 쫓길 땐 김밥을 사들고 이동 중에 남몰래 먹는다고 했다.

오전 9시15분까지 암환자 할머니의 집으로 출근하는 주씨는 할머니의 대소변을 치우고, 빨래하고, 점심을 차린다. 주씨가 보여준 ‘업무 차트’에는 20가지 체크 항목이 있었다. 오후에는 또 다른 환자의 집으로 이동한다. 그렇게 오전·오후 돌봄 대상 1명씩 한 달에 약 50만원, 월 100만원 안팎을 번다. 식비와 교통비는 따로 없다.

주씨는 “빨래와 청소, 집안 심부름 등 안 해도 되는 일을 해야 할 때 속상하다”고 털어놨다. “(돌봄노동자를 파견하는) 민간 센터는 ‘돌봄 대상자’와 ‘요양보호사’ 를 돈벌이 수단으로 인식한다”고도 했다. 센터 측은 돌봄 대상자 1명당 국민건강관리공단으로부터 약 100만원을 지원받는다. 이 때문에 환자를 센터에 등록시키기 위해 요양보호사로 하여금 집안일을 덤으로 하게 한다. 돌봄노동자들이 돌봄서비스 공급을 시장에 맡기지 말고 공적 기관에서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현재 공적 기관에서 담당하는 요양서비스는 전체의 3% 수준이다. 민간시설에선 요양보호사에게 임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 등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사례도 많다. 돌봄노동자들은 그래서 스스로를 ‘그림자 노동자’라 부른다.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하지만 노동인권을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건강세상네트워크, 병원노동자 희망터, 공공노조 등 26개 단체는 최근 간병·요양 노동자의 노동실태를 알리고 개선을 요구하는 ‘따끈따끈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간병·요양 노동자에게 따뜻한 밥 한 끼와 근로기준법을!’이라는 구호로 출발했다.

캠페인 참여 단체들은 “정부와 병원이 제공해야 할 필수 의료서비스를 환자나 노동자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잘못”이라며 ‘간병서비스 제도화’를 촉구하고 있다.

간병서비스 제도화 문제는 지난해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의료계, 시민사회 등에서 논의되고 있다. 간병·요양 노동자의 급여를 환자 개인 부담이 아닌 의료서비스 일환으로 제도권에서 부담하도록 하자는 게 골자다.

또 간병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은 경제적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고, 돌봄노동자의 ‘노동자로서의 지위’와 노동인권 보장을 위해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자는 것도 논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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