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중소기업엔 난제 중 난제… 시간제 일자리 확충으론 풀지 못해”

2013.06.12 06:00 입력 2013.06.12 06:18 수정
특별취재팀

광명전기 이재광 대표가 말하는 ‘중기’의 현실

“그게 사람 늘리자는 건가요? 제게는 줄이자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아요.”

종합 전기업체인 광명전기의 이재광 대표(54)는 정부가 최근 발표한 여성 일자리 확충 대책에 ‘돌직구’를 날렸다. 그는 육아휴직 확충이나 시간제 일자리 도입 등의 정책이 기업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광명전기는 설립된 지 59년 된 업체로 태양광 부품, 전압기 등을 생산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한국의 일하는 여성 90%가 포진해 있는 곳이다. 중소기업의 여성 고용 확대가 여성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키워드라는 점을 감안하면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체감 인식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 대표는 10년째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광명전기는 전체 노동자 280명 중 18명이 여성이다. 숫자가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성 인력의 우수성, 장점 등을 체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성 인력을 늘리려고 애썼지만 현실적 제약 때문에 번번이 중도에 포기했다고 한다. 경향신문은 지난 5일 이 대표로부터 여성 일자리에 대한 중소기업의 인식, 현실, 그리고 정부 정책의 실효성 여부 등을 들어봤다.

광명전기 이재광 대표가 지난 5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소기업 여성 고용의 어려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광명전기 이재광 대표가 지난 5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소기업 여성 고용의 어려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 육아휴직 대체인력 확보, 중기엔 비현실적 얘기
육아 부담 덜어주는 게 여성 고용 늘리는 해법

■ 육아휴직, 현실은 ‘공공의 적’ 취급

이 대표는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여직원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첫 번째 이유로 “대기업은 조직으로 움직이는 반면, 중소기업은 개인으로 움직인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중소기업은 인원이 적다보니 모든 인력이 핵심인력이다. 당연히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영업팀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 회사 영업팀은 3명이 한 조로 움직인다. 팀장, 과장, 대리로 구성돼 각 팀마다 몇 개의 민간업체, 공기업, 플랜트(발전소) 등을 나눠서 맡고 있다. 한 팀에서 육아휴직으로 인해 인원이 비면 다른 팀에서 그 업무를 나눠 영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플랜트를 대상으로 영업하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해외 파트를 맡기면 그쪽 업무를 잘 모르는데 어떻게 일을 하겠나. 업무량이 두 배가 되니 그 팀에 있는 사람은 짜증이 나서 일을 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영업팀 외에도 회사 내 각 팀에는 인원이 3~4명뿐인 경우가 많다. 인원이 4명인 재경팀에서도 은행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여직원 한 명이 빠지면 당장 모든 업무가 마비된다. 민감한 얘기지만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누구에게나 ‘공공의 적’이 되는 게 중소기업의 현실이다.

이 대표는 “우리 회사 여직원들은 출산휴가 3개월도 겨우 쓰는데 육아휴직 기간 1년은 말이 안되는 비현실적인 소리”라고 잘라 말했다. 이 같은 중소기업의 현실은 여직원들로 하여금 육아휴직을 포기토록 한다. 이 대표는 “회사에서도 (출산한 여직원이) 오래 자리를 비울 거면 다른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본인 스스로도 눈치가 보여 육아휴직을 안 쓴다”고 했다. 아이를 두 명 낳은 여직원의 경우 육아휴직을 쓰기엔 눈치가 보이고 회사를 다니면서 아이를 돌보기는 힘들어 회사를 그만둔다.

■ 대체인력, 하늘의 별 따기

여직원에게 육아휴직을 사용하도록 하고 대체인력을 고용하는 방법은 어떨까. 이 질문에 이 대표는 “대기업이면 몰라도 중소기업에선 대체인력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광명전기는 코스피에 등록된 상장기업이다. 직원 평균 연봉이 4000만원, 대졸 초임은 2700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라는 이유로 수도권 4년제 대학 출신들도 원서를 잘 제출하지 않는 실정이다. 이 대표는 “1~2년 근무하려고 누가 중소기업에 오겠느냐”고 말했다. 사람이 비게 되면 대체인력을 써야 하지만 사람 자체를 찾을 수가 없다. 전기공학과 나온 여직원을 잘 키워놨는데 대체인력이라고 미대나 경영학과 출신을 뽑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그는 “예컨대 여기자가 육아휴직을 하면 그 빈자리를 기자가 대체해야지, 다른 직무에 있는 사람을 끌어다 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대체인력을 찾아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인력을 구해 투입한 뒤 육아휴직을 마친 여직원이 복귀하면 대체했던 여직원을 그만두게 하든지 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애초부터 두 명을 다 고용할 여력은 없으니 출산한 여직원이 아예 육아휴직을 하지 않게 하는 게 최선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육아휴직 대체인력으로 시간제 일자리를 활용하자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말도 안되는 얘기이며 탁상행정”이라고 일축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생산성이 낮아 근무시간을 딱 지켜서 일하면 회사가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대표는 “일반 직원들이 계약상 근로시간보다 30%를 더 연장근무한다고 생각하고 임금책정을 하는데, 짧은 시간만 근무하는 시간제 일자리는 아르바이트일 뿐 대체인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자리 분배도 결코 쉽지 않다고 말한다. 특히 생산직의 경우 연장근로를 전제로 임금수준을 결정하는데 일하는 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늘리게 되면 급여 수준이 떨어지게 되고 이는 결국 노동자들의 생활궁핍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 지금 ‘여성 일자리’인가]“육아휴직, 중소기업엔 난제 중 난제… 시간제 일자리 확충으론 풀지 못해”

■ 맞춤형 지원정책 필요

현재 광명전기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영업, 엔지니어, 기획, 총무 등에 골고루 포진해 있다. 그는 “영업 같은 경우도 여직원을 써보니 더 잘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남성들은 최종 구매자와 가끔 언성을 높이며 다투기도 하는데, 여성들은 갈등이 생겨도 부드럽게 잘 풀어낸다는 것이다. 또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짜거나 컴퓨터 설계처럼 앉아서 집중해야 하는 부분은 여성이 더 세심하게 잘한다는 게 그의 평가다. 그는 남녀가 섞여 있는 조직에서는 여직원에게 “여자라고 생각하지 말라”며 혼자 출장도 보내는 등 업무능력을 길러주려고 신경도 쓴다. 실제 현재 18명 수준인 여성을 30명으로 늘릴 생각도 하고 있다.

이 대표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여성 고용 장려책은 “육아 걱정을 하지 않고 일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출산휴가 3개월만 쓰고 그 후 육아는 부담을 안 느끼고 직장에 나와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꺼번에 장기간의 육아휴직보다는 연차를 2~3배 주는 등 탄력적인 근무 정책도 필요한 것 아니냐는 제언도 했다.

그는 “중소기업은 공장도 작은데 자체적으로 보육시설을 설치할 곳이 없다”며 “회사 밖 보육시설 설치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 고용을 위해 현재 있는 제도보다 중소기업에 맞는 선택적 복지,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 특별취재팀 전병역(산업부)·김재중(정책사회부)·남지원(사회부)·이혜인(전국사회부)·이재덕(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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