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11) 답은 중소기업에 있다

2013.06.12 06:00
특별취재팀

리서치 업체 ‘엠브레인’의 사례 분석

“여성 인재 고용 늘리자 회사도 성장… 보육시설 투자 아깝지 않아”

마크로밀엠브레인은 시장조사와 정치 여론조사 등을 수행하는 조사전문(리서치) 기업이다. 외환위기(IMF) 직후인 1998년 직원 4명의 온라인 회사로 문을 열어 지금은 ‘업계 톱10’에 속하는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야근 많고 일이 거칠기로 소문난 이 업계에서 이 회사는 특이하다.

당장 여성인력이 풍부하다. 정규직 163명 중 여성이 98명으로, 전체의 60%다. 여성비율이 30%도 채 안되는 동종 업계와 비교하면 파격적인 성비다. 간부급 여성 비율도 높다. 임원 8명 중 여성이 3명이다. 원래 여성이 많은 회사는 아니었다. 회사가 커나갈수록 여직원이 늘어났다. 2003년에는 전 직원 48명 중 여직원이 25명으로 52% 수준이었다. 회사 규모가 작을 때는 리서치업무보다 기존 리서치회사에 패널을 공급하는 역할만 했다. 회사가 성장하고 직접 조사 및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연구부서를 강화하기 시작하면서 여직원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여직원들이 많아지자 남성들 사이에서 “역차별. 남자를 뽑아달라”는 얘기가 나왔다. 한때 남직원을 더 채용해야 하느냐를 두고 회의까지 열렸다. 하지만 굳이 성비균형을 위해 경쟁력 있는 여성을 떨어뜨릴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지난해 입사한 신입 20명 중 남성은 2명뿐이었다.

30년 전통의 토종 리서치회사, 해외에 대규모 모기업을 둔 외국계 리서치회사 등 공룡들의 틈바구니에서 엠브레인은 차근차근 세력을 키워갔다. 2003년 매출액 33억6000만원, 영업익 3억3000만원에서 올해에는 매출액 235억원, 영업이익 27억5000만원을 겨냥하고 있다. 여성 인력 확충이 기업을 키우고, 실적을 끌어올렸다는 수치적 증거는 없다. 하지만 엠브레인 내부는 물론 업계에서는 성장동력의 한가운데에 여성인재 확충이 자리하고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여성 직원이 60%에 달하는 리서치 전문 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 최인수 대표(왼쪽)가 지난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여성 직원이 60%에 달하는 리서치 전문 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 최인수 대표(왼쪽)가 지난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출산 후 쉬는 여성 인재 공략… 직원 160명 중 100명이 여성
‘엄마 직원’ 위해 10시 출근제

■ 성별 다양성이 경쟁력

기업 관계자들은 엠브레인의 고속성장을 ‘여성 인재 활용’에서 찾는다. 특히 조사 및 연구 업무의 특성상 차분하고 꼼꼼한 ‘여성적 특성’이 강점이 됐다. 엠브레인 최인수 대표(48)는 “책상에 차분하게 앉아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보고서를 쓰는 것이 주요 업무이다. 경험상 우리 일은 여성이 더 잘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상품과 관련된 리서치는 시장에서 빨리 유통되는 소비재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식료품이나 화장품, 생필품 같은 소비재들이 회사의 주요 연구대상이다. 여성연구원들은 소비재 분야 연구에 큰 강점을 보였다. 실제로 연구원 자신이 생활하면서 소비해 봤고, 관심을 가져 왔던 물건들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보기술(IT)이나 자동차 등에 대한 연구에는 남성연구원이 더 우수한 성과를 보이기도 한다. 엠브레인 양요한 상무는 “우리는 타 업체에 비해 여성연구원의 풀이 넓기 때문에 소비재 분야에서 특히 강점을 갖고 있다”며 “우리가 다른 회사에 비해 경쟁력이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 경력단절 여성 채용

최 대표는 “우리는 경력사원 선발 시 특히 여성인력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엠브레인은 경력사원을 채용할 때 ‘출산 후 일을 쉬고 있는 여성’들을 적극 공략했다. ‘인재의 틈새시장’을 노린 것이다. 육아문제로 쉬고 있는 여성인재를 채용하면 다른 기업과 크게 경쟁할 필요 없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최 대표의 생각이었다. 경력단절 여성을 꺼리는 보통 기업과 비교하면 파격적인 생각이다.

“일을 잘하는 여성을 뽑는 것이 일을 잘하는 남성을 뽑는 것보다 쉽습니다. 힘들게 다른 회사에서 인재를 빼앗아올 필요 없이, 능력이 출중하지만 어쩔 수 없이 쉬고 있는 여성을 적극 끌어오는 게 훨씬 쉽지 않나요? 그런 여성들이 좋은 성과도 많이 냈고요.” 그렇게 데려온 여직원들이 회사의 허리를 튼튼히 채워주고 있다. 엠브레인 최국림 본부장은 “여성들은 육아문제만 해결하면 기혼이나 미혼이나 상관없이 회사일에 전념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여성친화적 기업문화’가 성장동력

여직원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여러 부분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여직원들의 육아문제였다. 노동강도가 강하고 근무시간이 긴 업무 특성상 일을 그만두는 여직원이 늘어났다. 최 대표와 임원들은 “능력있는 여성들이 회사를 그만두게 만드는 것보다 제도와 시설을 확충해 좋은 여직원들을 더 많이 채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직원들이 그만두지 않고 일을 계속하게 할 수 있도록 회사 차원에서 대폭 지원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출근시간을 오전 10시로 늦췄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는 직원들을 배려한 조치였다. 회사에 수유실을 설치해 언제든지 유축을 할 수 있게 했다. 요즘에는 회사 근처에 보육시설을 마련하는 것도 진행 중이다. 의무적으로 보육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중견기업이지만, 우수한 인재들을 붙들어놓기 위해서는 그만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 이미 교사를 선정하고 보육시설을 마련할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기업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일단 긴 회식이 사라졌다. 회사 차원에서 오후 10시 이후로는 공식적인 회식을 금지했다. 개인적으로 늦게까지 노는 것을 제재할 수는 없지만 회식자리가 밤늦게까지 이어져 일과 삶의 양립을 깨면 안 된다는 취지였다. 분기마다 한 번씩은 일찍 퇴근해서 팀원들끼리 화합하는 ‘팀 데이’도 여성 팀장들의 제안으로 도입했다.

여직원들이 늘어나면서 기업문화를 바꾸기 위한 투자는 늘었지만 오히려 업무성과는 좋아졌다는 게 엠브레인 임원들의 자평이다. 여성친화적 정책이 여직원들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회사 전체의 복지 향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최국림 본부장은 “회사 분위기가 부드럽고 구성원들의 편의를 잘 봐주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다같이 성장하려는 욕구가 굉장히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전병역(산업부)·김재중(정책사회부)·남지원(사회부)·이혜인(전국사회부)·이재덕(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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