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위원이 노동법 모르고, 결정문도 못 써… 노동자만 윽박

2015.07.13 22:09 입력 2015.07.13 22:17 수정
강진구 노동전문기자(공인노무사)

(3) 선무당 판치는 노동위

▲ 단협 등 노동법 지식 부족
민법으로 ‘노동자성’ 판단
‘사용자 보호 기관’ 전락

“노동부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나도 노동위원회에서 일하려다 보니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처음 공익위원 된 사람은 오죽하겠느냐.”

고용노동부를 거쳐 노동위원회에서도 다년간 근무한 고위공무원 ㄱ씨는 “그나마 (공익위원의) 87%는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이 있는 분들로 채워지는데 항상 13%가 문제를 일으킨다”며 현재 노동위원회 인적 구성이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했다. 변호사 출신 노동부 공무원 ㄴ씨는 “지방으로 내려가면 공익위원들이 결정문 취지를 쓸 능력이 안돼 조사관들이 대신 써주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초심 판정을 걸러줄 중앙노동위 공익위원 중에도 노동법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어 비판의 도마에 오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지난해 7월 양동운 금속노조 포스코 사내하청지회장은 부장판사까지 지낸 변호사 출신의 중앙노동위 ㄷ공익위원 때문에 애를 먹어야 했다. ㄷ공익위원은 양 지회장에게 “단체협약이 이미 해지됐다면 ‘노조 간부 징계 시 노조와 협의를 거친다’는 단협 조항도 효력이 없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양 지회장은 “조합비 공제 등 노사 간 채무적 효력은 사라지지만, 징계 협의를 조합원의 근로조건에 관한 규범적 조항으로 볼 수 있다면 노조와 협의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ㄷ공익위원은 “효력이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거지, 뭐는 있고 뭐는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다그쳤다. 양 지회장이 재차 단체협약의 특수한 성격에 대해 설명하려 하자 ㄷ공익위원은 “시간이 없다. ‘예’ 아니면 ‘아니요’라고 답하라”고 윽박질렀다. ㄷ공익위원은 단순 채무 계약과 달리 단협은 해지 후에도 근로조건을 규율하는 규범적 효력이 유지된다는 법리를 전혀 접해보지 못한 듯했다. 노동위원회 한 관계자는 “ㄷ공익위원처럼 변호사 출신 공익위원 중에도 노동법의 기본 법리에 무지하거나 민법의 계약 법리로만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양동운 지회장(사진)이 지난 5월 박지만씨가 회장으로 있는 이지그룹 본사 앞에서 양우권 이지테크 분회장의 자살을 불러온 부당노동행위에 항의하고 있다. 양 지회장은 “부당해고 문제로 노동위원회에 갈 때마다 조합원들의 말은 벽에 부딪혔다”며 누굴 위한 노동위원회인지 묻게 된다고 말했다. | 금속노조 제공 이미지 크게 보기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양동운 지회장(사진)이 지난 5월 박지만씨가 회장으로 있는 이지그룹 본사 앞에서 양우권 이지테크 분회장의 자살을 불러온 부당노동행위에 항의하고 있다. 양 지회장은 “부당해고 문제로 노동위원회에 갈 때마다 조합원들의 말은 벽에 부딪혔다”며 누굴 위한 노동위원회인지 묻게 된다고 말했다. | 금속노조 제공

실제 변호사 출신 공익위원들이 당사자 의사를 중시하는 계약 법리만을 강조해 불이익을 입는 노동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변칙근로계약이나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판단할 때 곧잘 일어난다.

YTN·SBS·MBC·JTBC 등 방송사 프리랜서 부당해고 사건에서 변호사 출신 공익위원들과 여러 차례 법리 다툼을 벌인 노무법인 로맥의 문영섭 노무사는 “방송사에는 동일 업무를 시키고도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노동자로서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변호사들은 계약을 맺을 때 프리랜서 의미를 알고 있지만 집중적으로 묻는다”고 말했다. 노무 제공 실태를 중요시하는 노동 판례의 대원칙이 무시된 채 민사소송처럼 주로 계약 형식을 앞세워 노동자성의 주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민사소송과는 달리 당사자가 주장하지 않은 부분도 직권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간과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7월 중앙노동위에서는 주심 공익위원이 계약 만료를 3개월 앞두고 부당해고된 노동자 배모씨(62)를 심문하던 중 “이미 계약기간이 끝나 구제 실익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더 이상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노동자위원이 심문 과정에서 배씨는 1년 단위로 계약이 4차례 자동연장된 사실을 밝혀냈다. 무기계약 노동자로서 직장에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인된 것이다. 주심 공익위원도 뒤늦게 보충심문을 통해 갱신기대권이 존재함을 확인했다. 하지만 결론은 각하 판정이었다. 배씨가 갱신기대권 대신 ‘계약기간이 3개월 남았는데 억울하게 잘렸다’는 주장만 반복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서울지노위 노동자위원인 박성우 민주노총 서울본부 법규국장은 “노동자 권리구제의 편의와 신속성을 위해 만들어진 노동위원회를 당사자주의가 적용되는 민사소송과 혼동하는 공익위원들도 많다”며 “해고 노동자가 해고기간 전체가 아니라 1개월치 임금만 금전보상을 원했다고 1개월치만 주자고 주장하는 공익위원도 있었다”고 말했다.

공익위원 중에는 노동자 보호보다 사업주에게 미칠 현실적 부담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 3월 대전의 한 코팅업체 부당해고 사건은 해고절차의 정당성만 확인하면 쉽게 해결될 사안이었다. 기술자인 줄 알고 뽑았던 경력직원이 영업업무만 담당한 사실을 알게 된 사장이 말다툼 끝에 ‘당장 여기서 나가라’고 했다. 이 발언을 해고통보로 보면 서면통보 없이 해고가 이뤄진 만큼 부당해고가 명백했다. 하지만 주심 공익위원은 채용, 업무수행, 해고 직전 상황까지 장시간 심문을 진행했다. 노동자위원이 “노동법상 쟁점은 해고절차만 확인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자, 주심 공익위원은 “노동위원회가 노동법만 갖고 판단하는 곳이냐”고 반문했다. 절차적 정당성을 따지기 전에 ‘오죽하면 해고했을지 심정을 헤아려 보자’는 뜻이었다.

올해 초 서울의 한 시내버스 운전사가 제기한 부당징계 구제신청 사건도 비슷한 사례다. 휴일연장 운행 거부로 정직 처분을 내린 데 대해 사측에서는 ‘시민의 발이 돼야 할 버스기사가 자기 권리만 주장해서 되겠느냐’며 휴일연장 운행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당사자가 원치 않는 휴일·연장근무를 강제할 수 없다는 근로기준법 정신이 부정당하는데도 공익위원들은 사측 입장에 공감하는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지난달 29일 전남지노위는 민주연합노조와 순천시의 노동쟁의를 조정하면서 최저임금법을 위반하는 조정안을 내기도 했다.

민주노총 박은정 정책국장은 “2004년 공익위원 선출 방식이 노사 양측의 순차배제방식으로 바뀐 이후 주로 노동위원회가 추천한 사람들로 공익위원이 채워지면서 정부의 친기업적 정책에 동조하는 판정이나 조정이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노동위원회 부당해고 구제신청 인정률은 2004년 19.9%였으나 2009년 11.5%, 2014년 10.7%까지 떨어졌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노동위원회가 사용자 보호를 위한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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