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호식 '직장 갑질', 노동법으론 '괴롭힘' 처벌 못한다

2018.11.04 16:21 입력 2018.11.04 20:13 수정

양진호식 '직장 갑질', 노동법으론 '괴롭힘' 처벌 못한다

직원들에게 폭언을 퍼붓고, 활을 쏘아 생닭을 잡으라 하고, 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상추를 제대로 못 씻었다는 이유로 해고. 온갖 폭로가 터져나온 위디스크 실소유주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사건은 전형적인 직장 내 폭력·괴롭힘이다. 단순한 개인 간의 폭력이 아니라 직장에서의 위계와 권력관계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반복되기 쉽고 은폐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장이나 상사를 노동법으로 제재할 수는 없을까. 사용자의 폭행은 근로기준법으로 금지돼 있고 처벌도 강하지만 사실상 사문화돼 있고, 폭언이나 강요 같은 괴롭힘을 금지하는 조항은 없기 때문에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상 사용자가 저지른 폭행은 개인 간 단순폭행보다 엄중하게 처벌받는다. 근로기준법에는 ‘사용자는 어떤 이유로든 근로자에게 폭행을 하지 못한다’고 돼있다. 형법상 폭행죄는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인 반면 근로기준법상 폭행은 피해자와 합의했어도 처벌할 수 있다. 형량도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법상 폭행(2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보다 훨씬 강하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자가 근로기준법상 폭행죄로 처벌받는 경우는 드물다. 근로기준법 위반 수사는 경찰이 아니라 노동청에서 하는데,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가 많고 검찰도 적극적으로 노동청으로 사건을 넘기지 않아 일반 폭행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아닌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저지른 폭행은 근로기준법상 폭행죄가 아예 적용되지 않는 것도 허점이다. 직장갑질119의 이용우 변호사는 “가해자 징계 같은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거나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준 사용자를 처벌하는 제재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 회장 사건의 경우 공개된 동영상 속의 폭행 피해자가 현 직원이 아닌 퇴직자라 근로기준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

폭행이 아닌 괴롭힘이나 강요, 폭언은 노동법으로는 처벌할 방법이 아예 없다.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은 노동자를 ‘고객의 폭언’에서 보호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닭을 죽이라고 강요한 일은 형법상 강요죄 등이 적용될 수 있지만, 피해 노동자가 직장 안에서 보호받기는 어렵다. 상사에게 계속해서 폭언을 듣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도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어렵고, 사업주에게 부서이동이나 가해자 격리 같은 보호조치를 요구할 권리도 없다.

올초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라고 불리는 근로기준법·산안법 등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지위를 이용해 신체적·정신적·정서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한 이 법은 지난 9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의 규정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법제사법위원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개정안 자체에도 한계가 있다. 폭언·괴롭힘을 금지행위로 명시하긴 했지만, 가해자를 형법보다 강하게 처벌하거나 사업장을 제재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고용노동부는 5일부터 양 회장이 소유한 계열사 5곳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다. 부당해고 등 노동관계법령 위반 행위를 집중적으로 다룰 가능성이 높다. 탐사보도매체 뉴스타파와 ‘셜록’은 “양 회장이 회식 도중 화장실에 가려면 벌금을 내라며 월급에서 10만원을 공제하게 했다” “워크숍에서 상추를 빨리 씻지 못했다며 직원을 해고했다”는 증언들을 보도했다. 사용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임금에서 일부를 공제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상추를 빨리 못 씻어서 해고했다면 부당해고로 최대 징역 5년이나 벌금 5000만원에 처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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