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선의’ 앞세워 불법파견 지우려는 정부

2023.12.03 21:28

상생임금위 ‘복리후생 조치를 불법파견 징표서 배제’ 논의

사실상 원청에 면죄부…노동계 “이중구조 개선만이 해법”

고용노동부가 꾸린 상생임금위원회가 하청업체에 대한 원청의 ‘배려 조치’를 불법파견 징표에서 배제하는 내용을 담은 특별법 제정을 논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계는 잇달아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 있는 대기업의 사내하청 사용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 향상을 위한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을 거부한 정부가 원청의 선의에 기대는 방식의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책만 내놓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3일 노동부와 상생임금위에 따르면 상생임금위는 파견과 도급 구별 기준을 손질해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복리후생·직업훈련을 지원하는 조치 등은 불법파견 징표로 보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 2월 발족한 상생임금위는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 핵심 의제인 임금체계 개편,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등을 논의하는 전문가 중심 기구다.

사법부는 현대차·기아·한국지엠을 포함한 완성차 업체, 포스코·현대제철을 포함한 철강업체 등이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이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을 잇달아 내려왔다. 형식적으로는 원청 대기업이 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원청이 하청 노동자 업무를 지휘·명령하면서 사용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도급이 아닌 파견이라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발의한 파견법 개정안도 하청업체에 대한 원청의 ‘배려 조치’를 불법파견 징표에서 배제하는 내용을 담았다. “파견과 도급의 구별기준을 명확히 하면서도 원·하청 상생을 위해 취해지는 조치는 파견 판단 기준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생조치 사례는 노동조건 향상, 산업재해 예방, 직업능력 개발을 위한 지원 등이었다. 원청이 하청업체를 지원하고 싶어도 불법파견으로 판정될까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것을 해결해 ‘착한 원청’의 상생협력을 유도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노사정 합의 파기, 노동계 반발 등으로 파견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노동계는 ‘착한 원청’의 선의에 기대는 방식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의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노동부는 올해 초부터 조선업·석유화학·자동차 업계의 원·하청 상생협약 체결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원청의 기성금(도급비) 지급 부족을 토로했던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상생협약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김유정 금속노조 법률원장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복리후생 지원 등을 불법파견 징표에서 빼면 되레 원청 대기업이 불법파견을 쉽게 활용하도록 돕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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