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④‘찍퇴’와 ‘사축’이 말한다]저는 10년차 ‘사축’입니다

2016.01.19 06:00 입력 2016.02.02 18:39 수정

좁은 취업 문 통과했더니 야근은 일상 술자린 필참

서른둘, 10년차에 얻은 건 긴 노동·저임금·축난 몸

저녁도 미래도 없는 나날 우린 사람인가, 사축인가

“비석처럼 앉아 있었다.”

이혜영씨(32·가명)는 광고 벤처회사의 한자리에서 40시간까지 일해봤다. 보름 동안 단 하루도 안 쉬고 야근하기도 했다. 사장은 “일하기 더 편할 것”이라며 주택가에 사무실을 얻었다. 이씨는 일하다 졸리면 바닥에 누워 15분씩 잤다. 머리를 못 감는 날이 늘어났다. 속옷과 양말이 모자라면 세면대에서 빨아 모니터 뒤에 널어뒀다.

많아야 10명이 근무하던 회사에서 4년간 20명이 그만뒀다. 이씨는 회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이 됐다. 생일에도 야근했고, 엄마의 암 수술 날도 일 때문에 병원을 찾지 못했다. 대신 오래 앉아 일하다가 방광염을 얻고 장염과 허리 디스크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4차례 직장을 옮기며 밤낮으로 달려온 10년. 이씨는 업무 능력이 오르고, 박봉이던 월급도 5배 뛰어 400만원이 됐다. 하지만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업무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 지난해 10월 회사를 그만뒀다. 나이 서른을 갓 넘어 “온몸이 번 아웃(Burn Out·소진)됐다”는 상실감 때문이다. “재취업 준비는 안 하고 있어요. 다시 가고 싶은 회사도 없고.”

[부들부들 청년][1부④‘찍퇴’와 ‘사축’이 말한다]저는 10년차 ‘사축’입니다

정도영씨(31·가명)도 지난해 여름 뛰쳐나온 회사가 첫 직장이다. ‘생초짜’가 내놓은 결과물은 늘 비교됐다. “못하겠으면 관둬. 이런 거 할 사람 밖에 쌔고 쌨어.”

정씨는 입사 5개월 만에 상사로부터 머리털이 쭈뼛 서는 말을 들었다. 모멸감에 몸이 떨렸고, 신입사원의 패기는 단숨에 꺾였다. 상사들은 시시콜콜 지적하면서도, 정작 뭘 잘하고 못하는지 어찌하면 잘할 수 있는지 짚어주지 않았다.

술자리에는 수시로 호출했다. 피하지 않고 따라다녀 봤지만 어느 날 “일 빼곤 다 잘한다”는 소리가 돌아왔다. 어느새 거울 앞에는 탱탱 불어난 몰골이 버티고 있었다. “하루하루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허우적대는 게 싫었어요.” 정씨는 2년간 품고 있던 사표를 던졌다.

취업 벽이 두껍지만 입사한 청년들도 비명을 지르고 있다. 절반 이상의 청년에게 야근은 일상이 됐다. 스펙을 쌓던 몸은 회사의 부속품이 됐고, 계약만큼만 돈받고 계약보다는 훨씬 많이 일한다고 생각한다. 저녁도 없고, 미래도 그려볼 수 없는 하루. 청년들은 회사에 길들여져 가는 서로를 ‘사축(社畜)’이라고 불렀다.

“찍퇴(찍어서 퇴직)보단 낫다”고 자조하는 그들의 선택지는 참거나, 제 발로 떠나는 것이다. 평균 11개월간 준비해 취직한 한국의 청년 10명 중 6명이 15개월 만에 첫 일자리를 그만두고 있다. 긴 노동과 저임금에 몸서리치고, 사람으로 대우받고 키워준다는 믿음도 없기 때문이다. ‘행복의 첫걸음’이라고 여겼던 일터에서 사표를 품고 사는 청년들이 묻고 있다. “나는 사람인가요, 사축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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