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③‘월 300’이 가른다] 멀고 먼 ‘월 300만원’…지금은 저축도 결혼도 꿈일 뿐

2016.02.15 22:09 입력 2016.02.15 23:56 수정

일반적인 기준으로 먹고살고, 저축하고, 명절 때 부모님 용돈 드리고, 학자금도 갚아가며, 연애하고 결혼하려면 얼마가 필요할까. 청년들은 ‘월 300만원’을 말했다. 300만원을 도출해낸 계산식은 저마다 달랐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있다. ‘그 이하로는 연애든 저축이든 뭔가 하나 이상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들이 말하는 ‘월 300’은 하나의 이상향인 동시에 기준이었다. 이 기준을 저버릴 수 없는 청년들은 ‘눈이 높아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시간을 늦추더라도 대기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청년들은 왜 ‘월 300’을 말하나

취준생 김수진씨(25·가명)는 지난해 한 중소기업 입사를 포기했다. 입사하면 당초 원했던 해외영업 분야에서 일할 수 있었지만, 연봉이 마음에 걸렸다. 회사는 세후 2000만원(약 월 167만원)을 연봉으로 제시했다. 그간의 공부에 대한 보상과 생활을 꾸려나가기에 불충분하다고 느꼈다. 김씨는 고민 끝에 취업을 늦췄다.

취직 준비를 시작한 지 1년반이 지난 현재 김씨는 대기업과 중견기업 위주로 원서를 넣고 있다. 김씨는 “단순한 의식주 해결이 아닌 저축과 연애 등을 꿈꿔보려면 매달 250만~300만원은 벌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부모님께 손벌리지 않고 결혼하려면 저축도 더 많이 해야 하고, 직장이 멀어 자취를 하게 되면 월세도 40만~50만원이 나갈 텐데 월 170만원으론 부족하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강사 장모씨(32)는 “너무 열악한 조건으로 일하다 보니 기준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면서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려면 300만원 이하로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집을 구할 때 부모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고, 아기가 생기면 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직장인 김중기씨(25·가명) 역시 “월급 170만원을 벌었을 땐 통신비, 교통비, 식비, 학자금 상환 등을 제하면 남는 게 없었다”며 “수도권 기준으로 최소 240만원은 돼야 저축, 자취, 생활비 등을 ‘생각이라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말하는 ‘월 300’은 허무맹랑한 꿈이 아닌 ‘내일을 꿈꾸며 안정적으로 삶을 꾸려나가기’를 가능케 하는 기준에 가까웠다. 이는 통계로 드러난 대졸 구직자의 희망 연봉과도 어느 정도 일치한다. 대한상공회의소(2012년 기준)는 대학생 희망 연봉이 ‘3500만원 이상(34.3%)’과 ‘2500만~3000만원(21.8%)’이었다고 밝혔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대략 250만~300만원 선이다.

‘월 300’과 실제 월급의 간극엔 체념과 포기가 채워진다. 월 평균 200만원을 받는 직장인 김준영씨(29·가명)는 ‘독립적인 진짜 어른의 삶’을 떠나보냈다. 김씨는 “저축 50, 학자금 100, 생활비 50만 합쳐도 기본적으로 200만원이 든다”며 “연애나 취미생활을 하려면 월급이 더 많아야 한다”고 말했다. 300만원과 200만원 사이 100만원만큼이 연애와 결혼, 독립을 들어낸 자리인 셈이다. 직장인 이현아씨(23·가명)는 월 180만원이 목표다. “결혼 및 출산과 집을 포기한 결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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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300’과 거리 먼 중소기업

이규형씨(22·가명)는 중소기업 두 군데를 거쳐 최근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는 첫째 직장에서 주야 교대로 일하며 월 170만원을 받았다. 통신비와 교통비, 생활비를 제하면 저축을 하기가 힘들었다. 이씨는 “가족과 함께 살아 월세 지출이 없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중소기업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이씨는 “전에는 한달을 꽉 채워 일해야만 170만원을 겨우 받았는데 지금은 기본급만도 150만원에 별도 수당이 있고 분기별로 자기계발비도 55만원씩 나온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체의 99%, 고용의 약 88%를 차지하고 있지만 청년들의 기대만큼 임금을 주지 못한다. 경총 자료를 보면, 대졸 신입 근로자의 지난해 중소기업 정규직 초임 평균(임금 총액 기준)이 2532만원, 영세기업 정규직은 2055만원이다. 같은 기간 대기업 정규직의 4075만원보다 40~50%가량 낮다. 게다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나날이 심화돼, ‘월 300’의 희망을 찾는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안착하기 힘든 구조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4년 제조업 분야의 중소기업 월급은 239만원으로 456만원인 대기업의 52% 수준에 그쳤다. 1980년 중소기업 월급이 대기업의 91%로 큰 차이가 나지 않았던 것에 비해 크게 감소한 수치다.

중소 서비스업체에서 일하는 길모씨(24)는 월 140만원가량을 번다. 그는 “대기업에 취직해 3000만~4000만원을 받으면 차도 사고 놀러갈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선 결혼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며 “기회가 온다면 대기업으로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이 대기업을 선호하고, 중소기업은 계속해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일자리로 남아있는 악순환이 굳어졌다. 2011년 <대졸자의 중소기업 취업이 장기적 노동시장 성과에 미치는 효과> 연구는 단지 첫 직장이 중소기업이란 이유로 이후에도 낮은 임금과 고용 불안정을 겪게 될 확률이 높은 ‘중소기업효과’가 존재함을 밝혔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즉 임금 수준이 더 나은 직장으로 상향 이직할 가능성도 낮다. 중소기업에서 첫 직장을 시작한 사람이 대기업으로 옮기는 비율은 대기업이 첫 직장이었을 때의 4분의 1 수준이다. ‘일단 눈을 낮춰 취업하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청년들의 항변이 ‘배부른 불만’이 아닌 셈이다. 직장인 김모씨(25)는 “편의점 도시락을 살 때도 반찬수와 가성비를 따지고, 게임 하나를 해도 가이드와 공략을 찾는 세대가 요즘 청년”이라며 “임금 격차가 이렇게 큰데 오래 일해야 하는 직장을 어떻게 눈 낮춰 갈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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