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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닭에게 살충제를 뿌렸을까···올 여름 폭염도 영향

2017.08.16 19:39 입력 2017.08.17 12:08 수정

닭 진드기  | 국립축산과학원

닭 진드기 | 국립축산과학원

‘살충제 계란’ 파문이 커지고 있다. 유럽에 이어 국내 양계농가에서도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 ‘피프로닐’이 검출됐다. 특히 항생제·농약을 쓰지 않는다는 ‘친환경 산란계 농장’에서 이같은 잔류농약이 확인되면서 소비자들의 충격은 더 컸다.

16일까지 국내 친환경 산란계 농장 대상으로 진행된 잔류농약 검사에서 ‘피프로닐’(사용불가)과 ‘비펜트린’(기준치 초과)이 검출된 곳은 경기 광주시(우리농장·비펜트린), 남양주시(마리농장·피프로닐), 양주시(신선2농장·비펜트린), 강원 철원군(지현농장·피프로닐), 충남 천안(시온농장·비펜트린), 전남 나주(정화농장·비펜트린) 등이다.

■닭의 피 빨아먹고 사는 ‘닭 진드기’

닭 진드기는 어떤 곤충(해충)일까.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에 따르면 닭 진드기는 0.7㎜~1.0㎜ 크기로 작은 편이고 거의 무색이다. 닭의 피를 빨아먹으면 빨간색이 되고 혈액을 소화시키면 검은 색을 띤다. 주로 장마철에 대량 발생한다.

닭 진드기가 알에서 성체로 자라는 데는 8~9일이면 충분하다. 알은 보통 2~3일 내에 부화해 6개의 다리를 가진 유충이 된다. 이 유충은 하루 안에 8개의 다리를 지닌 제2유충이 되고 이후 닭의 피를 빨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3~5일 후에 흡혈성충인 닭 진드기가 된다.

닭진드기의 생애주기 | 국립축산과학원

닭진드기의 생애주기 | 국립축산과학원

닭 진드기의 수명은 최소 1.5개월 최대 10개월에 이른다. 국립축산과학원 문홍길 가금연구소장은 “닭 진드기는 영하 20도부터 영상 50도까지 살아남고 흡혈을 하지 않아도 영상 5도에서 9개월간 살아간다”면서 “골치 아픈 벌레로 꼽혀 유럽에서도 마땅한 구제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드기에 물린 닭은 ‘흡혈 스트레스’를 받는다. 산란율이 감소하고 바이러스성 질병도 매개할 수 있다. 계란의 품질도 떨어뜨린다.

■축산당국은 양계농가에 살충제 원칙 지도했나

현재 닭 진드기를 없애는 데 사용이 허가된 살충제는 10여종이다. 정부는 닭 진드기가 살충제에 내성을 갖지 않도록 ‘로테이션’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살충제에 내성이 생긴 닭 진드기 때문에 여러 농가가 사용금지 약제에 손을 댔다. 양계농가들이 ‘로테이션’ 원칙을 잘 지키지 않은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다.

빈 계사에만 쓰도록 돼 있는 약제를 그냥 뿌렸을 가능성도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닭 진드기는 농가에서 주로 ‘와구모’(일본명)라고 불린다. 시중에 팔리는 ‘와구프리 블루’라는 살충제엔 비펜트린이 함유돼 있다. 비펜트린은 닭이 없는 계사에만 뿌리는 것이 원칙이지만 계란에서 기준치 이상의 비펜트린이 검출된 것을 볼 때 이 원칙 역시 농가들이 지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약제 로테이션이나 계사를 비운 후의 살포 원칙, 피프로닐 사용금지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농가를 비판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축산당국이 농가들을 대상으로 한 닭 살충제 지도엔 거의 손을 놓았기 때문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자는 “피프로닐은 농민들이 쉽게 살 수 있는 살충제이기 때문에 피프로닐이 포함된 제품을 절대 가금류에는 써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린 적이 있는지 당국에 묻고 싶다, 실제 농가가 돌아가는 현실을 보면 그런 안내는 안했을 가능성이 100%”라고 말했다.

약제 로테이션 원칙 역시 농가에서는 제대로 교육받지 않았을 확률이 매우 높다. 양계학회마저 이제서야 약제 세미나를 긴급히 준비하는 상황이다. 노년층이 많은 농주들이 교과서에나 쓰여있는 로테이션 원칙을 당국의 꾸준한 지도와 안내 없이 충분히 인지하기는 어렵다.

닭 진드기가 많아진 데는 기후변화도 역할을 했다. 올 여름 한반도엔 폭염과 함께 높은 수준의 습도가 내내 유지됐다. 닭 진드기는 습한 환경을 좋아한다.

■닭을 닭답게 키우면 건강하다

계란 살충제 파문의 뿌리는 ‘공장식 축산’이다. 닭은 모래에 몸을 비비는 이른바 ‘흙목욕’을 해 진드기를 제거한다. 그러나 밀집사육을 하는 상황에선 1마리당 면적이 0.05㎡에 불과하다. 밀집사육 구조에서 닭은 모래가 아닌 철망을 밟고 서 있다. 닭똥이 철망 사이로 떨어지도록 만들기 위해서 닭 우리를 그렇게 설계했다.

정은정 농촌사회학자는 “닭을 닭 답게 키우면 건강한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키우는 생협 등의 농가에서는 살충제를 덜 뿌리거나 약한 것을 뿌린다”면서 “당장 케이지 사육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면 목표를 평사(땅에서 키우는 것)에 두고 점차 어떻게 시설을 개선해 나갈지를 당국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씨는 이어 “이런 계란 파문이 일면 생협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가 파문이 가라앉으면 탈퇴하고, 다시 파문이 일면 재가입이 쇄도한다”면서 “소비자들이 이제 서서히 좋은 환경에서 나온 계란이라면 좀더 귀중하게 팔리는 것이 옳다는 인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건강한 사육을 지향하는 소규모 농가들이 가장 섭섭해하는 대목이 소비자들의 “비싸다”는 불만이라고 한다.

김재홍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가금류 전공) 역시 “밀집 사육이 아닌 친환경사육을 한다고 진드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다만 약화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책연구기관인 축산과학원 문홍길 가금연구소장은 “동물 복지 차원에선 사육면적을 넓히고 흙목욕을 시키는 게 좋겠지만 닭 진드기 만큼은 그게 해결책이라고 확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흙목욕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외부에 풀어놓아야 하는데, 외부엔 오히려 더 감염요소가 많아서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일지 단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15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농림축산식품부 농산물품질관리원 검사요원들이 시료채취를 위해 계란을 수거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15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농림축산식품부 농산물품질관리원 검사요원들이 시료채취를 위해 계란을 수거하고 있다./연합뉴스

■살충제, 뿌릴수록 내성 갖는 개체가 탄생한다

인간의 역사는 곧 곤충과의 전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번 살충제 계란 파문 역시 ‘인간과 닭 진드기간의 싸움’에서 비롯됐다. 기존의 살충제가 잘 통하지 않자 인간은 더 독한 살충제를 동원했다. 닭 진드기 개체수를 ‘반짝’ 줄이는 데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인간 역시 타격을 입었다.

곤충이 살충제에 내성을 갖게되는 원리는 간단하다. 곤충은 어떤 환경에서든 살아남으려 애를 쓰며, 위기(살충제)를 극복한 개체가 살충제에 내성을 가진 후손을 낳는다. 이 후손이 다시 후손을 낳다보면, 원래의 살충제로는 해충을 많이 죽일 수 없게 된다.

이제까지 인류는 DDT와 같은 화학물질을 개발해 해충을 ‘박멸’ 하려 했지만 한순간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이내 실패로 귀결된 사례가 더 많았다. 해충은 인간의 생각보다 더 끈질기고 영리하다.

미국 일리노이대 길버트 월드바우어 교수가 지은 <곤충의 통찰력-해충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들>에는 곤충학자 스티븐 앨프리드 포브스가 남긴말이 기록돼 있다.

“인간과 곤충의 투쟁은 문명이 싹트기 한참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이어져왔고, 앞으로도 인간종이 존재하는 한 지속될 게 틀림없다. 인간은 스스로를 자연의 정복자라고 여기지만 곤충이야말로 훨씬 전부터 세상을 통제하고 완전히 장악해 왔다.”

사실 살충제에만 의존하는 ‘해충 박멸’에 대한 회의는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이미 500종이 넘는 곤충들이 수많은 살충제에 내성을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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