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징역 채우면 나갈 수라도 있지”…감옥보다 못한 중증·정신 장애인 수용시설

2018.04.19 06:00 입력 2018.04.19 13:59 수정

인권위, 입소자 첫 실태조사

사실상 구금된 채 인권 사각 방치

조사 결과 60% 이상이 강제 입소

10명 중 1명 저체중…건강도 열악

“차라리 교도소는 징역 채우고 나갈 수라도 있는데 여기는 언제 나갈지 몰라요.” “지금 몇 년도예요? (2017년도요) 벌써요?” “30여년 동안 외부 사람하고 한 시간 넘게 이야기해본 게 처음이에요.”

국가인권위원회가 중증·정신 장애인 수용시설에 대해 처음으로 실시한 전면적 실태조사 과정에서 나온 입소자들의 이야기이다. 조사 결과 중증·정신 장애인 시설 입소자들은 식사시간, 샤워, 산책, TV 시청, 휴대폰 사용, 투표, 종교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정신장애인 10명 중 1명은 저체중 상태이고, 10명 중 7명은 영구치 1개 이상을 상실했을 정도로 건강도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외면받고 있는 중증·정신 장애인 시설 입소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조사는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전국장애인부모연대·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3개 기관 합동연구팀이 인권위로부터 용역을 받아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진행했다. 전국 233개 중증장애인 시설 중 45개, 59개 정신요양시설 중 30개의 입소자 1500명을 대상으로 개별면담 및 설문조사가 진행됐다. 2012년 장애인시설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인권위가 중증·정신 장애인 수용시설만 집중해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실태조사 결과 상당수 입소자들이 강제로 시설에 들어왔고, 언제 나갈지 기약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시설 입소자는 “부모님이 여기서 죽을 때까지 지내라고 해서 너무 속상하다”고 조사원에게 토로했다. 연구팀의 ‘중증·정신 장애인 시설 생활인에 대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중증장애인의 67.9%, 정신장애인의 62.2%가 ‘비자발적’으로 입소했다. 중증장애인의 44.4%, 정신장애인의 55.7%는 “가족들이 나를 돌볼 수 있는 여력이 없어 시설에 들어왔다”고 답했다.

일부 입소자들은 “정신병원에만 26년 있었다” “입소한 게 너무 어릴 때라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실제 중증·정신 장애인 10명 중 6명은 10년 이상 장기 입소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증장애인의 58%, 정신장애인의 65%는 입소한 지 10년 이상 됐고, 입소 20년 이상 된 중증장애인은 24.9%, 정신장애인은 36.2%나 됐다.

비자발적 입소자와 장기 입소자가 많다 보니 시설에서 나가 살고 싶다고 응답한 입소자 비율은 중증장애인이 54.8%, 정신장애인은 59.7%에 달했다.

강제 격리 장애인, 외부인 만나자 “지금 몇 년도입니까?”

중증·정신 장애인 수용시설 ‘인권 사각’

중증장애인의 18.0%, 정신장애인의 34.5%는 시설에서 퇴소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고 있었고, 퇴소 결정을 본인이 아닌 시설장·가족 등이 할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정신요양시설의 경우 입소자의 자유로운 퇴소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정신건강복지법이 지난해 개정됐음에도 퇴소권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충남에 위치한 정신장애인 요양시설에서 한 정신장애인이 창문에 설치된 쇠창살 밖을 내다보고 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제공

충남에 위치한 정신장애인 요양시설에서 한 정신장애인이 창문에 설치된 쇠창살 밖을 내다보고 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제공

대부분의 입소자들은 사회에서 격리돼 있었고, 이는 자활 의지를 꺾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출해봤냐는 질문에 한 입소자는 “시설이 해발 600m에 있어 상점도 슈퍼도 없다”고 답했다. 실제 시설들은 지역사회로부터 고립돼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중증장애인 시설 10곳 중 4곳(40.0%), 정신장애인 시설 10곳 중 절반가량(46.7%)은 시설 주변에 이용 가능한 교통수단이 없었다. 중증장애인 시설 10곳 중 6곳(60.0%), 정신장애인 시설 절반 이상(56.7%)은 시설 주변에 슈퍼마켓 같은 근린생활시설이 없었다. 중증장애인 38.9%, 정신장애인 55.1%는 필요할 때 외출을 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 연구팀은 “외부 활동으로 1년에 1~2회의 캠프, 생일잔치용 외식, 자원봉사자가 있을 때 제한적으로 하는 외출 프로그램 등이 있지만 이 정도로는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지원하기에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입소자들은 건물 안에서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다. 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내느냐는 질문에 한 입소자는 “하루 종일 휠체어에 앉아 있다”고 답했다. 또 다른 입소자는 “산책도 허락을 받아야 오후 2~4시에만 가능하다”고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요양시설 대부분은 층별 잠금 장치가 돼 있어 다른 층으로의 이동이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다. 중증장애인 시설 입소자 10명 중 3명(31.2%)은 매점, 식당, 샤워시설, 운동기구, 냉난방기구, TV 등 각종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다고 답했다.

조사에 참여한 여준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시설의 정문을 통제·관리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마당까지 자유롭게 나갈 수 있지만 그것도 시간이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 여 활동가는 “지금이 몇 년도냐고 묻는 입소자도 있었고, 30년 동안 한 시간 넘게 외부 사람과 이야기해본 게 처음이라는 입소자도 있었을 정도로 입소자들은 외부와 차단돼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정신장애인의 건강 상태는 매우 우려스러운 수준이었다. 입소자의 상실영구치율(영구치 중 1개 이상을 상실한 비율)은 69.7%였다. 비슷한 연령대의 일반인 상실영구치율(21.7%)에 비해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여 활동가는 “상당수 입소자의 이가 빠져 있어 잘게 자른 음식이 아니면 기도가 막힐 우려가 있을 정도”라며 “중증·정신 장애인의 건강실태를 별도로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입소자 10.9%는 저체중일 정도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고, 입소자 중 15.3%는 몸이 아파도 의사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