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공포 확산에 ‘사법입원제’ 도입 목소리 커진다

2019.05.01 21:41 입력 2019.05.01 22:56 수정

‘강제입원 절차 완화’가 해결책 될까

5명의 사망자와 13명의 부상자를 낸 안인득씨 범행 현장.  연합뉴스

5명의 사망자와 13명의 부상자를 낸 안인득씨 범행 현장. 연합뉴스

현행 절차 복잡·소송 염려
의료계와 경찰, 대응 어려워

사법입원은 직계혈족 외에도
4촌 친족·동거인 신청 가능

“분리 아닌 사회 내 지원을”
위기쉼터 등 대안 목소리도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범인 안인득씨(42)는 조현병을 앓았다. 5명의 사망자와 13명의 부상자를 낸 지난달 17일 범행 이전 안씨의 형은 안씨를 수차례 강제로 ‘보호입원’시키려 했지만 실패했다. 형은 ‘직계혈족’이나 ‘배우자’에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자를 보호입원시키려면 직계혈족이나 배우자인 보호의무자 2명의 신청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명의 소견이 필요하다.

다른 조현병 환자 장모군(18)은 지난달 24일 경남 창원의 한 아파트에서 이웃에 살던 여성 김모씨(74)를 살해했다. 장군은 올해 2월까지 병원 치료를 받았다. 1월 주치의가 입원을 권해 아버지가 ‘보호입원’을 설득했지만 장군이 거부해 실패했다. 보호입원은 전문의 2명의 진단이 필요한데 환자가 진단을 거부하면 사실상 방법이 없다.

조현병 환자들의 강력범죄가 잇달아 알려지면서 ‘사법입원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사법입원제는 직계혈족에다 4촌 이내 친족이나 동거인도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을 신청하고, 법원 등 사법기관이 입원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의료계는 보호의무자 규정의 폐지와 사법입원제 도입을 계속 주장해왔다. 의료계는 현행 강제입원 절차도 지나치게 까다롭다고 했다. 강제입원에는 보호입원 말고도 ‘행정입원’과 ‘응급입원’이 있다. 행정입원은 자·타해 위협 가능성이 높은 정신질환자가 발견되면 전문의 진단과 지자체장 승인을 거쳐 3개월간 입원시키는 제도다. 응급입원은 위험이 큰 정신질환자를 발견하면 전문의와 경찰 각 1명의 동의를 받아 3일간 입원시키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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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는 강제입원 제도의 복잡한 절차와 행정소송 염려 때문에 병원이나 경찰이 적극 대응하기 어렵다고 지적해왔다. 안씨는 지난해 9월 이후 3차례 폭행 등 범죄를 저질렀지만 강제입원되지 않았다. 안씨는 전문의 진단을 거부하면서도 경찰 조사에서는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행정·응급입원을 피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최근 “현행 강제입원 절차는 지나치게 까다로워 위기 상황에서 적절히 작동하기 어렵다”며 “사법입원제를 도입하고 강제입원 절차를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을 보호의무자인 가족에게 전적으로 맡기다 보니 가족의 잘못된 판단으로 타인까지 다치는 상황이 수차례 일어났다”며 “사법입원제는 국가가 환자 관리를 책임지고 가족의 부담도 덜 수 있어 인권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했다.

사법입원제 등 강제입원 확대가 근본 해결책은 아니라고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강제입원돼 치료를 받았던 환자가 퇴원 후 얼마 되지 않아 범죄를 일으키기도 한다. 조현병 환자 서모씨(58)는 지난달 27일 부산 사하구의 한 아파트에서 친누나(61)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서씨는 보건소 등 요청으로 1개월 동안 ‘행정입원’됐다가 지난 3월 퇴원했다. 서씨와 연락이 끊어지자 정신건강복지센터 직원이 지난달 30일 서씨 집을 찾았지만 문이 잠겨 있었다. 경찰이 강제로 출입문을 열어 안방에서 숨진 누나의 시신을 발견했다. 서씨는 긴급체포된 뒤 정신병원에 다시 강제입원된 채 경찰 조사를 받는 중이다.

정신장애인단체는 강제입원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혐오를 강화한다며 지역 사회가 환자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달라고 호소해왔다. 이들은 정부가 각 광역지방자치단체에 권역별 위기대응센터를 운영하라고 주장한다. 강제입원 대신 위기쉼터, 심리상담, 지원주택 등 지역 사회가 정신질환자를 지원하는 체계 확대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정신장애 인권단체 ‘파도손’, 한국정신장애인협회, 한국조현병환우회 등이 모인 ‘정신건강 서비스 정상화 촉구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달 2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근본적 문제는 정신건강 문제의 위기 관리를 ‘강제입원’으로만 귀착시키려는 것”이라면서 “자발적이며 당사자의 입장에 중점을 둔 응급대응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1일 서울 광진구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열린 ‘21세기의 정신건강과 인권’ 토론회에 참석한 다이니우스 푸라스 유엔 건강권 특별보고관도 “환자가 동의하지 않는 치료는 근절해야 한다”며 “비강압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대안적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유동현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은 “조현병 환자 대부분은 약물치료와 외래진료를 정기적으로 받으면 사회생활에 문제가 없는데도 모든 흉악 범죄의 원인이 조현병인 것처럼 선정적으로 알려졌다”며 “응급상황도 있지만 지원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현실에서 사법입원제 등 강제입원만을 논의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10월 시행 예정인 ‘임세원법(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에서 사법입원제 조항은 빠졌다. 지난 3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사법입원제를 심의하면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강제입원 절차를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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