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지역 가봤더니 "재난지원금, 피해규모 10분의 1수준"

2020.08.22 11:25
이하늬 기자

8월 9일 오전 전남 구례군 구례읍 오일장 상인들이 침수 피해를 당한 상점을 정리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8월 9일 오전 전남 구례군 구례읍 오일장 상인들이 침수 피해를 당한 상점을 정리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수해가 휩쓸고 간 자리에 피해가 남았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지난 8월 12일 폭우 피해 대응과 관련해 재난지원금을 25년 만에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피해 현장에서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200만원? 그걸 누구 코에 붙입니꺼?” 지난 8월 17일 경남 하동 화개장터에서 만난 김모씨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김씨는 이번 수해로 생계 수단인 식당과 주택 모두 피해를 입었다. 식당 건물 일부를 가정집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재난지원금 기준에 따르면 주택 침수와 관련돼 김씨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은 200만원이다.

김씨의 주택과 가게는 화개장터에서 그나마 지대가 높은 곳이라 완전히 침수되지는 않았다. 가게와 주택의 절반 정도가 물에 잠겼다. 그렇다고 피해가 적은 건 아니다. 침대와 옷장, 책상 등 가구는 못 쓰게 돼 모두 버렸다.

1억원 정도의 상품 없어졌는데…
하동군은 피해를 입은 상인들에게 500만원을 긴급지원했다. 김씨는 이 돈으로 도배와 장판부터 했다. 여기에 총 525만원이 들었다. 피해 규모를 묻는 말에 김씨는 “피해금액이 가늠이 안 된다. 가게를 새로 여는 것보다는 확실히 돈이 더 들어간다. 그건 처리 비용은 없으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종일 가게 앞 도로에 쭈그려 앉아 수세미로 그나마 쓸 만한 물건들을 닦았다.

김씨의 가게에서 조금 더 낮은 지대에 있는 슈퍼마켓에는 2m 가까이 물이 차올랐다. 그 안에 있던 냉장고 6대가 다 넘어져 깨졌고, 심지어 물에 떠내려간 것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당시 진열돼 있던 상품들이다. 맨 위 선반대에 있던 컵라면과 휴지 정도를 제외하고 모든 상품을 폐기했다. 주인 민모씨는 “가게에 있던 상품 80%는 버렸다”고 말했다.

휴가철을 앞둔 시기라 피해는 더 컸다. 피서객을 상대로 판매하기 위해 있는 담배, 아쿠아슈즈, 술, 각종 냉동식품, 튜브 등을 구비해놨기 때문이다. 민씨는 “담배만 2000만원어치가량 폐기했고, 총 피해액은 8000만원에서 1억원 정도 될 것 같다. 코로나19 때문에 봄 장사 망치고 그나마 여름에 기대를 걸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하동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다는 소식에 잠시 기대를 걸기도 했다. 하지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된 시·군 주민이 다른 지역 수재민보다 행정, 재정, 금융, 의료상 혜택을 더 받는 것 이외에는 차이가 없다. 현재 상황에서 민씨 부부가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은 하동군 자체지원금 500만원과 침수 보상 200만원이 전부다.

섬진강을 두고 하동과 마주 보고 있는 전남 구례의 피해는 더 심각하다. 1184채의 주택이 침수됐고 피해를 입은 상가는 435곳이다. 구례군 양정마을에 사는 김모씨는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는 바람에 휴대전화 하나만 달랑 챙겨서 집을 나왔다. 양정마을은 구례군 안에서도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기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이다.

8월 7일 밤에 불어나기 시작한 물은 10일 오전이 되어서야 다 빠졌다. 대피소에서 지내다 돌아오니 집 안은 흙투성이였다. 집이 통째로 물에 잠겨 가전제품과 가구, 옷, 생활용품은 물론이고 문짝이나 창문도 다 뒤틀려 쓸 수 없게 됐다. 복구에는 3000만원 정도가 예상된다. 하지만 김씨가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은 침수 주택 관련 200만원이 전부다.

소를 키우는 축산 농가 주민들은 그야말로 망연자실 상태다. 양정마을에서만 1000마리 이상의 소가 죽거나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는데, 소 한 마리당 지원금은 100만원이다. 상품 가치로 따졌을 때 소 한 마리는 700만원에서 900만원 수준이다. 구례군청에 따르면 구례군에서 소를 키우는 농가 중에 보험에 가입한 농가는 한 곳도 없다. 주민들이 막막해하는 이유다.

수해 피해를 입은 경남 하동 화개장터 한 가게가 도배를 위해 기존 벽지를 모두 뜯어냈다. / 이하늬 기자

수해 피해를 입은 경남 하동 화개장터 한 가게가 도배를 위해 기존 벽지를 모두 뜯어냈다. / 이하늬 기자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재난지원금 기준이 이렇게 낮은 줄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재난지원금 기준은 1995년에 만들어진 이후, 25년 동안 제자리에 머물다가 이번 수해를 계기로 주택이 모두 파손됐을 경우 1300만원에서 1600만원으로, 절반만 파손됐을 경우 650만원에서 800만원으로, 주택이 침수됐을 경우 1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간보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연재해와 관련된 보험상품은 별로 없으며, 그마저 가입률도 낮다. 행정안전부가 관장하고 민간이 판매하는 풍수해보험의 가입률은 주택 19.5%, 온실 11.6% 수준이다. 지난해까지 시범사업을 하다 올해부터 전국으로 확대된 소상공인 상가와 공장의 가입률도 0.35%에 불과하다. 화개장터 상인 김모씨는 “보통 화재보험만 알지 풍수해보험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자연재해 관련 보험 가입 적어
이외에 농촌에 특화된 가축재해보험과 농작물재해보험이 있는데 역시 가입률이 높지 않다. 농업정책보험금융원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가축재배보험에 가입된 소는 12.2%에 불과하며,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된 경작지 역시 38.9% 수준이다. 양정마을 김모씨는 “보험에 가입 안 된 농가는 사실상 파산”이라고 전했다.

정부와 국회도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는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8월 10일 “재난지원금 현실화를 위해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에서 함께 지혜를 모아달라”고 말했고, 박수영 미래통합당 의원도 “상향 목표를 설정하고 3년에 걸쳐 예산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건은 빠른 현실화다. 구례군청 관계자는 “군 예산은 너무 열악하다. 국비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일회성 대응이 아닌 기후위기 시대에 맞는 재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례적인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에 따른 현상이라면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극단적 날씨가 일상화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해 재난 대응 매뉴얼을 다시 작성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해외에서는 기후위기 재난과 관련한 여러 논의가 진행됐다. 2015년 8월 미국 오리건주에서는 청소년들이 연방정부와 화석 연료 기업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8세였던 한 원고는 “매년 해수면이 상승해 해변에 있는 집이 언제 물에 잠길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 살고 있다”고 했다. 올해 1월에는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가 기후위기로 터전을 떠난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했다. 남태평양 섬나라 키리바시의 토착민이 2016년 해수면 상승으로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유엔에 진정을 낸 데 따른 것이다.

환경전문변호사 출신인 이소영 민주당 의원은 “올해 수해와 같은 재난이 이례적인 일이라면 일회적인 지원을 높이면 된다. 하지만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은 반복될 것이다. 상습 침수 지역에서 토지가 잠겼을 때 정부가 수용할 것인지, 주민들의 재산권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등 보상 문제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이주대책까지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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