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 기상예보 더 어려워진다

2020.08.22 10:33 입력 2020.08.22 10:35 수정

툭하면 빗나가는 기상청의 예보를 믿지 못해 노르웨이 등 해외 기상청 앱을 쓴다는 ‘기상망명족’의 이야기가 최근 화제가 됐다. 하지만 과거의 패턴을 벗어나, 원인조차 제대로 설명하기 힘든 기상이변 현상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망명’을 한다고 나아질까. 기상 관측 장비가 발달하고 예측 수준이 높아져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변화무쌍한 날씨와 기상이변 때문에 100% 정확한 예보를 기대하긴 어렵다. 특히 한국의 경우 지리적 변수까지 더해져 날씨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의 기상위성 테라(Terra)·아쿠아(Aqua)가 촬영한 8월 14일 오후 2시 무렵 위성사진에서 한반도 중부 지역을 중심으로 비구름이 깔려 있다. / 기상청

미국의 기상위성 테라(Terra)·아쿠아(Aqua)가 촬영한 8월 14일 오후 2시 무렵 위성사진에서 한반도 중부 지역을 중심으로 비구름이 깔려 있다. / 기상청

■기후변화, 기상예보 어려움 가중

한반도는 극지방의 찬 공기와 적도 지방의 더운 공기의 온도차로 인한 에너지 불균형이 큰 중위도에 있다. 게다가 대륙과 해양의 경계에 있다 보니 양쪽의 영향을 받아 변동성이 더 크다. 처음부터 한국은 기상예보의 정확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여기에 복잡성을 더하고 있다.

김정훈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중위도에서 극한의 기상 현상이 발생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배후로 중위도의 에너지 불균형을 키워 제트기류의 흐름을 요동치게 하는 지구온난화를 지목했다. 제트기류는 중위도 지방의 고도 9~10㎞ 대류권과 성층권의 경계면인 대류권계면 부근에서 만들어져 북반구를 기준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강한 바람대를 일컫는다. 기후 현상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해수면 온도와 관련성이 깊다. 해수면 온도의 남북 쪽의 차이가 크면 제트기류가 강해지고 작으면 약해진다.

김 교수는 “에너지 불균형이 예전에는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였다면 온실가스 배출 증가로 적도에 비해 북극 기온이 급격히 오르면서 제트기류의 강도가 약해지고, 측선 형태에서 굽이치는 형태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제트기류가 약해지고 굽이치는 형태로 바뀌면서 북쪽의 찬 공기가 중위도로 내려오기 쉬워졌고, 이 때문에 극한의 강수 현상이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상청이 올해 장마의 원인을 설명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북극의 고온현상과 ‘블로킹(정체성 고기압)’으로 우리나라 주변에 찬 공기가 장기간 머물렀고, 이 때문에 따뜻하고 습한 공기인 북태평양고기압이 북상하지 못하고 동서로 길게 확장한 가운데 장마철이 길어졌다는 것이다.

정체성 고기압은 해마다 지역에 따라서 불규칙하게 출현해 발생 자체를 예측하기 어렵다. 이현수 기상청 기후예측과장은 “기후변화와 블로킹, 북극 고온현상이 해마다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 예보가 어렵다”면서 “기후변화를 기상예보의 요소로 포함해 예측하더라도 올해와 같은 패턴을 맞추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함유근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이번 장마의 원인으로 북서태평양고기압의 확장을 들었다. 함유근 교수는 “북서태평양고기압이 평년보다 서쪽(인도양)까지 많이 뻗고 강도도 세져 인도를 따라 한반도 쪽으로 따뜻하고 습한 공기를 유입시켜 장마의 호조건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고기압은 시계 방향의 순환을 만드는데 한국은 북서태평양고기압의 언저리에 걸려 남에서 북으로 바람이 불게 된다. 이때 적도 쪽 습한 공기가 강하게 유입되면서 장마가 길어진 것이다.

함 교수는 “중위도 예측은 원래 어려운데다 한반도는 바다와 육지의 경계에 있고, 땅덩어리도 좁아 사실 기상청이 맞추기 어렵긴 하다”면서도 “이번에는 시간당 예측이 틀려서 문제가 아니라 (북극 해빙 등) 장마가 길어질 수 있는 원인을 실제적으로 예측을 하지 못한 것이 진짜 원인이다”고 평가했다. 기상청이 현재 활용하는 영국 기상청의 통합모델(UM)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차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북극 해빙(海氷)이 녹으면 그 영향으로 찬 공기가 한반도의 장마전선을 남쪽으로 내려 장마를 오래 끌고 갈 수 있다. 이런 해빙의 효과를 모델이 과소반영하거나 과대반영하는 식으로 오차가 발생했을 텐데 예보관이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짚은 것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화 이후 지구 평균기온은 1도 올랐다. 해양이 0.7도 올랐다면, 대륙은 1.5도 올랐다. 온도 상승은 지역마다 다르다. 지난 7월 환경부와 기상청이 발간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에 따르면 1912년부터 2017년까지 우리나라의 평균 지표면 온도는 1.8도 올랐다. 세계 평균 상승폭(0.85도)의 두 배를 넘는다. 보고서는 지금의 온실가스 배출 추세라면 21세기 말 한반도의 기온은 현재보다 2.9~4.7도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8월 14일 기상청 일기도를 보면 한반도 중부 지역을 중심으로 장마전선(빨간색 반원과 파란색 삼각형 번갈아 표시)이 형성되어 있다.  / 기상청

8월 14일 기상청 일기도를 보면 한반도 중부 지역을 중심으로 장마전선(빨간색 반원과 파란색 삼각형 번갈아 표시)이 형성되어 있다. / 기상청

■기상예보 모델에 적극 반영해야

기온이 올라가면 대기 중 수증기량이 증가한다. 더 큰 에너지를 품고 폭우와 태풍이 더 세게 나타날 수 있다. 윤기한 기상청 통보관은 “하루 최저·최고기온이 10도 차이가 나는데 3~4도가 무슨 문제냐고 생각할 수 있다”며 “하지만 25도와 28도는 출발 자체가 달라서 대기가 엄청나게 많은 수증기를 포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기 중 수증기가 응결되면 또다시 열이 나오고, 그 에너지가 바람과 태풍을 강하게 만든다. 빙하가 녹으면 토양이 드러나면서 열을 흡수해 지구 온도를 높인다. 동토층에 갇힌 메탄 등 강력한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문제도 있다. 변화의 속도가 지수함수적으로 빨라지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극한 기후 현상이 발생할수록 일주일 이상 장기 예보는 물론이고, 하루 이틀 수준의 단기 예보도 어려워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며 “아무리 관측의 정확도를 높이고 수치모델을 개선하더라도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기후변화 앞에선 인공지능을 이용한 예측도 한계가 있다. 인공지능은 과거의 데이터에 의존하기 때문에 과거에 없는 기후 급변 현상을 예측하긴 어렵다.

기상청이 기후변화 요소를 더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함유근 교수는 “기후예측에서는 3개월 정도의 계절단위의 변화를 주로 보는데 기후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상황에서 기후변화의 변수를 더 적극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기예보는 관측과 수치모델, 예보관의 능력이라는 3요소가 잘 맞아떨어질 때 최상의 결과를 생산할 수 있다. 수치모델은 질량, 운동량, 에너지 보존 법칙 등 과학 이론을 컴퓨터 언어로 번역한 것이다. 초기 기상 조건을 수치모델에 입력하면 순차적으로 다음 시간의 미래 기상 상태를 출력한다. 예보관은 그 결과를 토대로 지역 특성을 고려해 예보한다.

한국이 올해 4월 시험 가동한 ‘한국형 수치예보모델’(KIM)은 기상청이 현업에서 활용하는 영국 기상청의 수치모델이나 미국, 중국 등 해외 기상청의 수치모델과 비교해 큰 성능 차이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기상기구에서 권장하는 수치모델의 예보 정확도는 지구 상공위 약 5㎞ 위 고도에서의 대기 변화를 얼마나 잘 맞추느냐로 평가한다. 그렇게 볼 경우 가장 우수한 유럽 중기 모델이 100점 만점에 85점, 영국 84점, 일본 84점이다. 한국의 KIM은 82점 정도로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국지적 영역에서만 볼 때의 성능은 오히려 우리 기상청이 더 좋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지형 특성상 산이 많아 예보 지역 전반에 비가 오지 않아도 계곡 같은 곳엔 국지적으로 쏟아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안전을 생각해서 비가 올 것이라고 예보하게 된다. 안전을 생각해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한다. 결과적으로 비가 오지 않은 지역의 이용자 입장에선 ‘오보’라고 생각하게 된다.

■세계 유일한 기상청의 ‘동네예보’

작은 변수가 점차 큰 영향을 주는 나비효과가 빈번한 기상의 특성상 오차가 커질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아침에 덥다는 생각에 에어컨을 켜면 이로 인해 기온이 더 올라 예보가 틀리게 되는 식이다. 비가 많이 와서 댐의 수문을 열면 물에 잠긴 땅이 많아져 수증기 증발량이 커진다. 그러면 다시 비가 많이 오는 식으로 오차가 생긴다. 관측 장비와 기술이 발전해 종관규모(1000㎞ 이상)에서의 하루 이틀 사이의 예보 정확성은 80% 수준까지 올라왔지만 기본적으로 기상예보는 확률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태생적 한계에 기후변화라는 복병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예보의 정확성을 까다롭게 따지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영국 기상청도 2009년 폭염을 예고했다가 폭우가 내려 조롱의 대상이 됐고, 미국 캔자스주의 TV 기상 예보관이 100% 비가 온다고 한 날 중 3분의 1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도 기상청이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동네예보’를 제공한다는 문제는 남는다. 동네예보는 사방 2㎞ 이하 범위의 날씨를 3시간 단위로 보여주는 서비스다. 예보의 간격과 지역이 촘촘할수록 빗나갈 확률이 높다는 점에서 기상청 스스로 예보의 신뢰도를 깎는 우를 범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훈 교수는 “우리는 지형적으로 지엽적인 강수의 편차가 있어서 이를 예보하기 위해 도전적인 측면에서 도입한 것이긴 하지만 너무 앞서나갔다”고 말했다.

일본도 예보를 할 때는 우리의 경북보다 큰 현 단위로 한다. 미국 역시 우리의 도 정도 되는 크기의 ‘카운티’ 단위로 예보한다. 관측 해상도(대개 10㎞)는 우리나 해외나 비슷하다는 점에서 우리가 볼 수 없는 영역까지 (예보관의 분석을 더해) 서비스하겠다는 것은 애초에 오보의 가능성을 크게 안고 있는 것이다. 함유근 교수도 “기상청에서 대국민 서비스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잘 안 맞고 맞출 수 없으면 무리하게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항공산업도 어려움 맞을 수 있다

기상과 경제활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일례로 엘니뇨가 강해지면 옥수수 수확량이 전 세계적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만약 엘니뇨 예측을 1년 이상 앞당겨 할 수 있다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최근처럼 장마가 길어지면 호박과 상추 등 작물 가격이 폭등할 수 있다.

기후변화로 제트기류의 흐름이 변하면 항공기 운항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서 LA를 왕복한다고 할 때 갈 때는 동쪽으로 흐르는 제트기류를 따라가기 때문에 빨리 갈 수 있지만 돌아올 땐 제트기류를 마주해서 느려진다. 일반적으로 왕복을 기준으로 하면 제트기류를 이용할 때 더 느려진다. 따라서 항공기는 돌아올 땐 제트기류를 피하게 된다.

김정훈 서울대 교수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특이하게도 북미와 유럽 사이에선 제트기류가 강해져 그로 인해 항공기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된다. 항공기의 운항 시간이 길면 그만큼 탄소 배출량이 많아진다. 김 교수는 “항공기가 이동하는 성층권 하부 지역은 기후변화에 굉장히 민감한 지역”이라면서 “이 지역에서 탄소 배출이 많아지면 기후변화의 효과가 더 커진다는 게 저를 포함한 국제 연구진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해안가에서 태풍의 영향력을 키운다. 2050년 이후가 되면 인천공항을 포함해 해안가에 있는 큰 규모의 공항들이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홍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기온이 높아지면 비행기를 이륙시킬 때 양력도 더 많이 필요로 한다. 같은 무게의 항공기를 띄우기 위해 더 긴 활주로가 필요하다. 공항 주변이 이미 개발돼 더 이상 활주로를 확장하기 어렵고, 비행기를 더 크게 만들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향후 항공 이용에 장애가 될 수 있다.

김 교수는 “기후변화로 태풍이 많이 발생하면 항공기 취소나 연착이 많아지고 난기류 발생도 증가해 항공 운항의 안전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항공기가 배출하는 탄소는 전체 배출량의 1%도 안 되지만 그 배출이 영향력이 크게 나타나는 성층권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관련 연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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