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미국 백신 회사들의 생존법

2020.09.13 09:13
이하늬 기자

미국 제약사 모더나. 연합뉴스

미국 제약사 모더나. 연합뉴스

모더나·이노비오·노바백스. 코로나19로 인해 유명해진 미국 제약사들이다. 모두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이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단 한 번도 백신 개발에 성공한 적이 없다는 것과 상품보다는 주식으로 돈을 번다는 것이다.

올해 1월 2일, 모더나 주가는 주당 19.23달러였다. 그러다 코로나19가 확산되고 감염병혁신연합(CEPI)으로부터 백신지원금을 받자 지원금을 받은 이튿날인 2월 26일 모더나 주가는 주당 29.16달러까지 뛴다. 3월 중순, 임상시험에 들어간다고 발표한 이후 또 한 차례 주식이 출렁였다.

회사 CEO, 상반기에만 2100만달러 시세 차익

이후에도 모더나는 승승장구한다. 5월 15일, 모더나 출신의 몬세프 슬라위 박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백신 초고속 작전(Warp Speed)의 총 책임자로 임명됐고, 같은 달 18일 모더나는 1상 임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발표만으로 모더나 주식은 30%가량 폭등했다.

이날 모더나 재무책임자 로런스 킴은 스톡옵션을 행사해 300만달러를 들여 24만1000주를 사들인 뒤 1980만달러에 팔았다. 이날 하루에만 1680만달러, 약 200억원을 번 것이다. 로런스 킴은 슬라위가 초고속 작전의 총 책임자로 임명된 날에도 130만달러 상당의 주식을 매각했다.

이튿날에는 의료부문 책임자 탈 작스가 150만달러에 산 12만5000주를 바로 977만달러에 팔았다. 820만달러의 이익을 남겼다. 로이터에 따르면 모더나 최고경영자 스테판 반셀과 반셀이 소유한 기업들은 모더나 주식을 팔아 올해 상반기에만 2100만달러를 벌었다. 7월에도 300만달러 상당의 주식을 추가로 매각했다.

하지만 모더나 1상 임상 결과에 백신의 효능을 입증할 핵심 정보가 빠졌다는 사실이 의학 전문지에 실리자 모더나의 주가는 빠르게 떨어진다. 모더나 임원진들이 이런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커지자 모더나 측은 모두 사전 계획서에 따라 자동거래시스템으로 거래했다고 해명했다. 현재 모더나는 3상 임상을 준비 중이다.

한국에서 1/2a상 임상 진행 중인 백신 후보물질 INO-4800 개발사인 이노비오도 모더나와 비슷하다. 1/2a상은 1상과 2상의 첫 번째 단계를 동시에 진행 중이라는 의미다. 현재 서울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임상이 진행 중이다.

올해 1월 2일 이노비오 주가는 주당 3.21달러였다. 그러다 CEPI로부터 900만달러를 지원받고 3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회의에 초대받는다. 이후 이노비오는 관련 소식을 마구 쏟아낸다. 트럼프의 초고속 작전에 이노비오의 백신이 포함됐다고 홍보하고 6월 24일에는 미국 국방부로부터 스마트주사기 ‘셀레트라’ 수주를 받은 사실을 알린다. 7월 초에는 1상 임상에서 36명 중 34명에서 면역반응을 유도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소식이 나올 때마다 이노비오 주가는 요동친다. 백악관 회의 며칠 만에 이노비오 주가는 200% 넘게 뛰었다. 셀레트라 수주 소식이 나오자 주가는 31.69달러까지 올랐고, 1상 임상 결과 직전에도 30달러 수준을 유지했다. 올해 초에 비해 10배 가까이 폭등한 것이다. 그러자 이노비오 임원진은 380만달러 상당의 지분을 매각한다.

하지만 당시 이노비오 1상 임상 발표에는 백신의 효능을 결정하는 ‘중화항체’ 형성 여부에 대한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아 비판이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초고속 작전에 포함됐다는 홍보도 거짓이다. 여기에 임원진이 지분을 매각했다는 소식까지 더해지자 이노비오 주가는 9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노비오의 이 같은 행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8월 9일 “지난 10년 동안 이노비오 내부자들이 2500만달러 상당의 주식을 팔았다”며 “그동안 이노비오는 2009년 신종플루 사태 이후 말라리아·지카 바이러스는 물론 ‘암 백신’까지 연구 중이라고 발표했으나 아직 한 개 백신도 내놓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전염병 터질 때마다 투자로 연명

공매도 전문업체인 시트론 리서치도 이노비오를 사기 바이오 기업이었던 테라노스에 비교하며 비판했다. 테라노스는 피 한 방울로 200여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키트 ‘에디슨’을 개발했다고 주장했지만 사기로 밝혀졌다. 이노비오는 지난 5월 주주들로부터 제품 실행가능성의 허위표시 및 시장 기망을 이유로 소송을 당한 상황이다.

역시 CEPI의 지원을 받는 노바백스도 ‘투자’로 연명하는 회사다. 노바백스는 2015년 신생아 호흡기세포융합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 ResVax와 에볼라 바이러스 백신 임상시험에 들어가면서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주가가 280달러까지 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임상은 실패했다. 주가가 떨어지자 노바백스는 다시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으로부터 추가 지원금을 받으며 버틴다. 그러나 지난해 두 번째 임상에까지 실패하자 주가는 다시 폭락했고 상장폐지 위협에 시달리는 지경에 이른다. 노바백스 입장에서 코로나19는 기사회생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올해 1월 2일 4.49달러이던 노바백스 주당 주가는 CEPI로부터 지원금을 받은 다음 날인 5월 12일 39.82달러까지 올랐다. 7월 7일 미국 행정부로부터 16억달러(1조9000억원)를 지원받게 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날 하루에만 주가는 전일 79.44달러에서 104.56달러까지 올랐다. 1상 임상 결과를 발표한 8월 노바백스 주가는 178.51달러까지 치솟았다. 올해 들어서만 주가가 4500%가량 폭등한 것이다.

NBC 7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노바백스는 백신이 실패해도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노바백스 임원진은 백신 후보물질이 2상 임상에 들어가면 1억달러(약 1200억원) 이상의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노바백스는 경쟁적인 상황에서 임원진을 격려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밝혔다. 모더나나 이노비오 임원진의 행태가 노바백스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생긴 셈이다.

현재 노바백스는 1/2상을 실시한 뒤 1상 예비조사 결과만 발표한 상황이다. 노바백스는 3상 임상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효능을 확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 한 제약사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에 IT 기업들이 이런 방식으로 생존했다. 업계에서는 최근 제약·바이오주가 IT 때보다 더 심하게 거품이 끼인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며 “이런 상황에서 임원진의 주식 매도는 이런 우려에 무게를 실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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