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산안법 위반 1심 판결 전수조사

(상)한 노동자 죽음에 사측 책임은 ‘869만원’

2021.01.04 06:00 입력 2021.01.09 18:44 수정

산재 못 줄이는 형량

3일 오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앞 단식농성장에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이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라는 의미로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에서 준비한 어린이들의 신발이 놓여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3일 오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앞 단식농성장에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이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라는 의미로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에서 준비한 어린이들의 신발이 놓여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사망 185명에 내려진 벌금 총 16억여원…“기업범죄 인식” 목소리
‘김용균법’ 시행 1년…징역 기간 1개월 늘었으나 대부분 선처 받아

16억800만원.

2020년 법원이 185명의 산업재해 사망사고에 대해 부과한 벌금이다. 지난해 법원은 산업현장에서 벌어진 노동자 등의 죽음에 대해 피고인 1명당 평균 518만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사망자 1명당 869만원이 국가로 귀속됐다.

사망 노동자의 고용주·상사 154명이 징역·금고형을 선고받았고, 이들 중 149명이 재판 직후 풀려났다. 5명만 구속당하는 처벌을 받았다.

한국은 일터에서의 죽음에 이렇게 죗값을 치르게 한다. 경향신문은 3일 사망자가 발생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사건 중 지난해 대법원 열람시스템에 게시된 1심 판결문 178건을 전수조사했다.

판결문에 나타난 사망자는 총 185명이었다. 대부분 ‘한 번 사고에 사람 한 명’이 죽었다. 176번의 사고로 176명이 죽었다. 질식·폭발 등으로 2명 이상이 동시에 죽기도 했다.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건설업에 종사하면서 아파트·상가·공공시설 등을 짓다가 추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287명이 재판정에 섰다. 법원은 이들의 산안법 위반·업무상과실치사 혐의에 벌금형 또는 평균 7.3개월의 징역·금고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개는 ‘징역 4개월·집행유예 1년’이나 ‘6개월·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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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165곳도 함께 책임을 졌다. 개인과 법인이 납부한 벌금 총액은 16억800만원이다. 사망자 숫자로 나누면 1명당 869만원이 지불된 셈이다. 개인은 평균 518만원, 법인은 평균 553만원을 냈다. 고용노동부 과거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산안법 위반(상해·단순위반도 포함)으로 기소된 개인·법인은 각각 420만원·524만원을 벌금으로 냈다. 보고서는 “과연 이 정도 벌금액으로 적정한 위하력(억제력)이 작동할지 의문”이라고 했는데, 3년이 흐른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1981년 제정된 산안법은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씨 사망을 계기로 한 차례 전면 개정됐다. 이른바 ‘김용균법’이 지난해 1월16일 시행된 지 1년, 개정 산안법을 적용받은 판례를 보면 징역기간은 평균 8.3개월로 소폭 늘었으나 모두 선처받아 구속을 면했다. 개인·법인들은 옛 산안법을 적용한 판례보다 100만원 이상 적은 평균 422만원을 벌금으로 냈다. 경영계는 이를 두고 “세계 최고 수준의 처벌”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9월 기준 산재사고 사망자는 660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7명 줄어드는 데 그쳤다. 죽음에 대한 ‘비용’을 획기적으로 높이라는 요구가 나온다. 매출액에 비례하는 과징금·벌금, ‘나도 감옥에 갈 수 있다’는 경영자들의 위기의식, 수사기관·법원이 산재를 ‘기업범죄’로 받아들이는 제도적 혁신. 이 같은 토양은 기업이 ‘안전’에 투자할 인센티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그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여야가 논의를 차일피일하면서 오는 8일까지인 임시국회 기간 내 처리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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