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서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노력하라 말할 수 있나요?"

2021.07.31 10:32 입력 2021.07.31 13:54 수정

‘아동 주거빈곤’ 문제를 10여년간 연구해 온 임세희 서울사이버대 사회복지과 교수. 송윤경 기자

‘아동 주거빈곤’ 문제를 10여년간 연구해 온 임세희 서울사이버대 사회복지과 교수. 송윤경 기자

주거공간이 비좁아 책 읽고 그림 그리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장판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고 때때로 쥐가 나온다. 단열이 되지 않아 외부와 실내온도가 별 차이가 없는 공간에서 지내기도 한다. 현재 45만여가구의 아동이 이런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2019년 주거실태조사).

지난 10여년간 ‘주거빈곤 아동’을 연구해온 임세희 서울사이버대 사회복지과 교수를 7월 25일 만났다. “공간의 변화에 따라 나의 행동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주거빈곤에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고 말하는 그는 주거환경이 아동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면밀히 연구해온 학자다. 임 교수는 “아동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주거빈곤 고통을 겪는 아동들을 외면하는 것은 그 아이들에게 부당하게 모든 짐을 지우는 일”이라며 “주거정책에서 아동을 우선으로 하는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식료품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관(왼쪽)과 곰팡이가 피어있는 안방(오른쪽). 경향신문 자료사진

식료품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관(왼쪽)과 곰팡이가 피어있는 안방(오른쪽).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국사회의 주거 수준은 크게 향상됐다.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규모도 줄어들었을 거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최근 공공임대주택이 공급되면서 ‘주거빈곤 아동’ 규모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여전히 많다. 2019년 주거실태조사를 토대로 보면, 정부가 정한 면적 기준이나 침실 분리 기준이 충족되지 않는 곳에서 자라는 아동이 약 43만명이다. 지하,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판잣집,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쪽방에 사는 아동은 4만4000명으로 조사됐다. 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 아동 중 모르는 이들과 화장실이나 부엌을 함께 쓰다고 응답한 아동이 각각 4만8000명, 2만8000명으로 나타났다.

-열악한 주거환경이 정서발달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서울시 아동가구 주거실태조사’를 보니 주거빈곤 상태의 아동은 그렇지 않은 아동보다 우울증을 비롯한 기분 장애를 3배 더 겪었다.

“자신의 책상 하나 놓을 곳이 없고, 옷과 가방에 밴 곰팡내를 뺄 방법이 없는 환경에서 자란다고 생각해보라. 이런 조건들은 아이들에게 무력감을 심어준다. 부모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기에 많은 아이가 요구도 하지 않게 된다. 그저 참으면서 ‘억누르는 삶’을 산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조차 낮아지고 스스로 무가치하다고 여길 수 있다. 때때로 분노가 올라올 때 누군가 수용해주고 다독여주면 좋겠지만, 부모들도 장시간 노동에 지쳐 있다 보니 쉽지 않다. 가끔 ‘옛날에는 온 식구가 단칸방에 살았다’고 말하는 이들을 보는데, 과거의 빈곤과 양태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의 주거빈곤 아동들은 ‘다른 애들은 다른 환경에서 산다’는 것을 안다. 몇년 고생하면 우리 집, 내 방이 생길 거라는 기대를 가질 수가 없다.”

-주거가 열악하면 규칙적인 생활조차 어려울 때도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이 자신의 리듬을 찾기가 힘들다. 오빠 3명과 한방을 쓰다가 부엌 겸 거실로 나온 여자아이를 본 적이 있다. 누가 물 먹으러 오면 비켜줘야 하는 곳에서 잠을 청하는 거다. 그러니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일단 주거환경이 개선되면 아이들의 수면패턴이 좋아진다. 잠을 잘 자니, 아침식사도 더 많이 한다. 환기 등의 이유로 요리조차 버거운 가정이 많은데, 집이 쾌적해지면 부모가 요리하는 비율도 올라간다.”

축사를 개조해 만든 농가 주택, 빛이 제대로 들지 않는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축사를 개조해 만든 농가 주택, 빛이 제대로 들지 않는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국의 아동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다. 그런데 아동결핍지수는 매우 높다. 괴리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동빈곤율은 소득 중심의 통계인 반면 아동결핍지수는 의식주, 교육, 여가 등 다차원적 빈곤을 측정한다.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놀 수 있는지, 학교 과제를 할 수 있는 적당한 공간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그렇지 못하다’는 답변(만 17세 이하 응답자)이 각각 15.2%, 7.7%씩 나온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G7 국가인 이탈리아보다 높고,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이지만, 아동결핍지수는 OECD 국가 가운데 헝가리를 제외하면 가장 높다. 증가한 소득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나아가 아동빈곤율이 예전보다 낮아진 이유도 들여다봐야 한다. 아동가구의 소득이 개선됐기 때문이 아니라, 저소득가구가 아이를 안 낳는 추세가 반영된 결과다.”

-오랫동안 ‘아동 주거빈곤’을 연구해왔다.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2018년에 조사한 사례였는데, 대학생과 고3, 2명의 남학생이 뒤척임도 어려울 정도의 비좁은 방에서 함께 지내고 있었다. 난방이 균일하지 않아 엉덩이 한쪽은 화상을 입은 상태였고, 비가 오면 누전으로 두꺼비집이 내려가는 곳이었다. 컨테이너에서 사는 아이들도 기억에 남는다. 여름철에 군불을 지펴 습기를 제거해야 하는 환경이었다. 방 2개를 7명의 식구가 나눠쓰는 가정도 있었다. 고등학생 아들이 엄마, 여동생, 외할아버지 발밑에서 가로로 잠을 자야 했다.”

환기가 되지 않아 음식을 하지 못하는 주방(왼쪽)과 짐이 많아 제대로 사용하기 어려운 세탁실(오른쪽). 경향신문 자료사진.

환기가 되지 않아 음식을 하지 못하는 주방(왼쪽)과 짐이 많아 제대로 사용하기 어려운 세탁실(오른쪽). 경향신문 자료사진.

-코로나19로 집에서 지내야 하는 시간이 길어졌는데, 주거빈곤 아동의 고통이 더 심해졌을까.

“원격수업은 가만히 앉아 듣기만 하는 수업이 아니다. 발표도 해야 하고, 선생님께 자신이 쓴 것을 보여주기도 해야 한다. 아이가 여럿이면서 공간이 좁으면, 형제자매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 된다. 수업 참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학교에 갔다면 주거조건과 관계없이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을 텐데…. 더구나 지금처럼 폭염일 때 집이 ‘사우나실’ 같은 곳도 있다. 단열이 안 돼 바깥과 실내온도가 큰 차이가 안 나는 사례들이 많았다.”

-‘사우나실’ 같은 집에서 공부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공정한 경쟁을 한다고 할 수 있을지.

“지금의 ‘노력주의’, ‘공정’ 담론엔 누구나 동등한 노력을 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데 온종일 에어컨을 틀 수 있는 가정의 자기 방이 있는 아이와 실내가 열기로 꽉 차 있는 가정의 아이가 어떻게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겠나. 2019년 여름에 온도계를 주고 집안 온도를 체크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실내온도가 38도인 가정이 있었다. 컨테이너, 흙집이 주로 단열이 잘되지 않아 내·외부 온도차가 작다. 사우나실에서 책 읽고 공부한다고 생각해보라. 아이가 그런 조건에 있는데 ‘왜 더 노력 못 했어’라고 묻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

-주거복지정책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아동을 우선으로 하는 원칙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현 정부 들어 주거복지정책이 강화됐지만 청년과 신혼부부에 재원이 집중되고 있다. 통합 공공임대주택 우선공급 대상을 정하는 가점만 살펴봐도 ‘1자녀’는 ‘주택청약종합저축 6회 이상 납입’과 가점(1점)이 같다. 자녀가 1명 있을 때와 없을 때 꼭 필요한 주거요건은 큰 차이가 나는데도 말이다. 아동기는 신체·인지·정서 발달이 이루어지는 시기이고 이때의 경험이 인생을 좌우한다. 아동은 부모를 선택하지 못한다. 자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주거빈곤 아동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아이에게 온전히 모든 짐을 지우는 것과 같다. 스웨덴의 사회정책엔 아동 우선 원칙이 명확하다. ‘우리는 모든 아동에 대한 공동의 책임을 공유한다’는 그들의 생각을 배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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