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사무실을 위한 ‘특단의’ 냉방조치···다 같이 아이스크림!

2022.09.02 16:00 입력 2022.09.02 18:55 수정
신혜광·이은혜

신혜광·이은혜의 ‘베를린 육아일기’

에어컨이 없는 여름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여느 나라처럼 에어컨 없는 자동차는 독일 내에서도 더 이상 보기 힘들다. 그러나 구체적인 통계자료를 찾기 힘들 정도로 아직 독일 내 대부분 주거 공간과 업무 공간의 에어컨 보급률은 낮다. 다른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과의 잡담 소재 중 하나가 에어컨이다. “날씨 참 덥죠”로 시작해서 “우와, 거기는 에어컨이 있어요?”라고 끝나는, 21세기 이야기라고 믿기 힘든 대화가 무더운 여름이면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된다.

[다른 삶]푹푹 찌는 사무실을 위한 ‘특단의’ 냉방조치···다 같이 아이스크림!

독일이 한국보다 에어컨 보급률이 낮은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보다 북쪽에 있어 여름은 서늘하고 겨울은 더 춥다는, 그야말로 ‘지정학적인’ 이유다. 그러나 갈수록 더워지는 여름 기온은 국지적인 현상이 아닌, 세상 어딜 가나 마주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특별히 에어컨이 없어도 ‘아주 더운 건’ 고작 며칠에서 몇 주이니 그것만 견디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대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미지수다.

‘혹서기 날씨’가 유례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래를 내다본 듯한 독일의 혹서기 대비 대책들이 유난히 빛을 발한다. 내부 온도가 30도가 넘으면 아이들은 학교에서 귀가해야 한다. 만약 에어컨이 있으면 집에 보낼 일은 없을 것이다. 직장에서는 ‘특단의’ 냉방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사우나처럼 절절 끓는 더운 공기 속 아주 힘겹게 돌아가는 선풍기들이 온도를 낮추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단체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그저 대강 “냉장고에 사다 놓았으니 먹고 싶은 사람은 드세요”가 아니라 전체 e메일도 뿌리고 음악 듣거나 무언가 집중하느라 몰랐던 사람들에게 굳이 아이스크림을 들이대며 나눠주기도 한다.

다음 단계의 온도는 35도다. 실내 온도가 35도를 넘으면 ‘근무 불가’ 환경이라 정의한다. 그러니 사측에서 이 보다 낮은 온도의 업무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실 에어컨 없이, 모든 창문으로 들이치는 햇빛으로 데워진 35도의 실내 온도는 잘 내려가지 않는다. 그냥 앉아있어도 옷이 온몸에 끈적끈적 달라붙으며, 미간은 자주 찌푸려진다. 보통 이런 날은 아침부터 열심히 세상을 달궈 점심시간 전에 최고 온도를 찍는다. 이런 날은, 점심 먹으러 밖으로 나가기도 싫다.

푹푹 찌는 이런 더운 날에는 점심 피크 시간임에도 거리가 한산하다. 아마도 대부분 ‘오늘의 날씨’를 예상하고 재택근무를 하거나, 부지런하게 도시락을 싸와 그늘막에서 식사하고 있을 것이다. 에어컨이 있는 상점은 여태껏 본 적도 없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듯하다. 보통 더운 날일수록 가게 밖 자리가 먼저 차는데 아침부터 데워진 바깥 공기는 그마저도 불쾌하게 만든다. 차라리 이런 날엔 구석진 곳에 있거나 지하에 가까운 자리가 더 시원하다. 그렇게 더위를 피해 식사를 하노라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도통 분간이 되지 않는다. 그저 후다닥 서둘러 식사하고 더 시원한 실내로 피신하고 싶은 생각밖에 없다.

에어컨 별로 없는 독일을 덮친 폭염
학교는 실내 30도 넘으면 수업 불가
직장에선 ‘아이스크림 섭취’를 공지

회사마다 있는 각자의 ‘더위 문화’
우리 사무실은 한 해의 가장 더운 날
한데 모여 먹고 마시고 집에 가는 것

이런 ‘탈출구 없는’ 더위 탓에 각자 사무실에는 고유의 ‘더위 문화’가 있다. 우리 사무실 역시 오랜 시간 동안 반복되어온 문화가 있는데 바로 한 해의 가장 더운 날 다 같이 먹고 마시고 집에 가는 문화다. 보통 7월이나 8월의 하루가 당첨되는데 이런 ‘한 해의 가장 더운 날’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앞뒤로 며칠, 길게는 한두 주씩 푹푹 찌는 날씨가 지속된다. 소나기가 내려도 잠깐 그 순간뿐, 언제 그랬냐는 듯 햇볕이 내리쬔다. 그러니 보통 무더위가 며칠씩 지속되면 아는 사람들은 으레 ‘그날이 이번주가 아닐까’라고 짐작하게 된다.

장소는 베를린 시내 중심가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잘레 타바키(Ristorante Sale e Tabacchi)다. 이 레스토랑은 1995년 실내 공사를 진행한 곳으로, 전반적으로 초기 완공 상태가 꽤나 잘 보존돼 있다. 시내 중심가에서 오랜 시간 버텨내온 내공 덕인지 손님 또한 항상 많은 편이다. 그러나 이곳 역시 에어컨은 없다. 그저 시원하게 그늘진 뒷마당을 여름 고객들을 위한 유혹의 장소로 활용한다.

‘그날’이 되면 보통 점심시간 직후 전체 공지 e메일이 온다. “3시까지 잘레 타바키로 전부 모일 것!” 강제성은 없다. 너무 더워서 그냥 집으로 가겠다는 사람도 있고, 간단하게 시원한 화이트 와인만 한잔하고 가는 사람도 있다. 물론 끝까지 남아 디저트까지 먹고, 후에 개인적으로 더 노는 사람도 있다. 보통 본격적으로 저녁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전 자리를 떠난다. 오후 한가한 시간에 우르르 우리 사무실 직원들이 몰려가 와인이나 간단한 애피타이저 정도를 먹는 셈이다.

특별한 음식을 주문하지는 않고 그저 주는 대로 먹고 마시며 두런두런 넋두리 및 잡담을 하며 평소에 못한 얘기들을 나눈다. 무언가 정형화된 틀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해의 가장 더운 날, 같은 장소에서 매년 한 번씩 모이니, 이것도 하나의 문화다.

에어컨에 대해 이렇게 투덜댔지만 현재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는 에어컨이 설치돼 있다. 올봄에 시작해 장장 한 달 넘게 진행된 공사는 불편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오랜 재택근무 후 사무실로 다시 돌아오기 싫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매일 35도를 웃도는 후끈한 날씨에 에어컨 바람을 쐬며 사무실에 앉아있노라면 집에 있는 아내와 아이에게 미안해질 정도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이 사무실의 에어컨 설치에도 어마어마하게 꼼꼼한 원칙이 있다. 동쪽으로 창문이 있는 쪽 업무 공간에는 ‘쿨하게’ 에어컨이 없다. 이유인즉슨, 동쪽으로 드는 햇살은 주로 오전 시간에만 내리쬐니 보통 하루의 가장 더운 시간인 오후녘에는 시원하지 않느냐는 논리 때문이다. 거꾸로 말해, 가장 뜨거운 시간에 오랫동안 햇살이 드는 서쪽 창이 있는 업무 공간에만 에어컨이 설치된 것이다. 에어컨 설치 원년이지만, 동쪽 창가의 친구들은 아침햇살에 푹푹 익어가고 있다.

에어컨 설치에 이어 제빙기, 대용량 냉장고 등 금년에 이뤄진 결과들은 흡족하다. 물론 연신 굉음을 뿜어내는 가정용 제빙기는 80~90명이 함께 쓰기엔 역부족이지만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체감하곤 한다. 저 기계가 우리 곁을 떠나기 전까지 부지런히 써줘야 할 것이다. 다만 이렇게 환경이 달라질수록(인정하기 싫지만 나아질수록) 더 이상 더위를 앞세운 ‘핑계’는 통할 길이 없어 보이지만.

지난주 며칠에 걸쳐 몇 번씩 비가 오더니 금세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여전히 한낮의 태양은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로 조금씩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게 더운 고비는 넘어간 모양이다. 말복이 지났으니 여름도 끝나간다는 생각을 하는, 나는 한국사람이다. 해가 유난히 긴 탓에 유독 하루하루가 길게 느껴지는 여름은 이곳의 황금계절이다. 그래도 더운 건 싫고, 여름은 즐기고 싶다!



[다른 삶]푹푹 찌는 사무실을 위한 ‘특단의’ 냉방조치···다 같이 아이스크림!


▶신혜광·이은혜

현재 베를린에 거주 중인 3인 가족이다. 닭띠 아빠는 건축설계사무실에 다니고, 돼지띠 엄마는 그림을 그리고, 돼지띠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닌다. 단독주택에 사는 것, 자동차로 베를린에서 나폴리까지 여행하는 것이 꿈이다. <스페인, 버틸 수밖에 없었다>와 <어느 멋진 일주일, 안달루시아>를 쓰고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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