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분노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2012.06.25 21:26 입력 2012.06.26 03:35 수정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

지난 20일 하루짜리 시한부 택시파업이 있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사업주와 노조가 함께 집회를 열기도 했다. 언론에 의해 보도된 업계의 요구는 택시의 대중교통 법제화, LPG 가격 상한제 도입, 택시연료 다양화, 요금 현실화 등이다. 아주 가끔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으로,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오르는 연료대와 사납금 제도라는 이상한 고용제도 등으로 인해 고생하는 택시기사의 사정이야 잘 모르는 바 아니어서, 뭔가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네, 라고만 생각하고 말았다.

[별별시선]증오의 분노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며칠 뒤 택시파업에 대해 그린 만화를 보았다. 택시가 없으니 길이 뻥뻥 뚫려 편안하고, 출근길이 빨라졌고, 택시의 불법정차나 난폭운전 등이 없어져 쾌적한 하루였으니 파업을 좀 더 오래하거나 택시를 없애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택시파업을 보도한 기사의 댓글, 그리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보면 이 만화처럼 역설적으로 택시파업을 지지하는 의견이 많았다. 간혹 좋은 기사님들도 계시지만, 으로 시작하는 의견들조차 그간 당했던 난폭한 택시운전이나 불법운행 사례 등을 털어놓으며 ‘택시’를 성토했다.

분명 택시(기사)에 대해 좋은 기억들도 있을 터인데, 하나같이 택시(혹은 택시기사)에 대해 증오하고 분노했다. 증오와 분노는 다른 어느 감정보다 더 강력하고 발빠르다. 그러니 좋았던 기억을 생각할 틈이 없다. 서로를 존중해주는 사회에서는 증오와 분노가 잘 관리된다. 그런데 2012년 우리의 증오와 분노는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 같은 상태다. 비등점에 거의 도달한 증오와 분노에 떡밥이 떨어지면 모두가 우~ 몰려간다. 그 다음은 마치 피냄새를 맡은 피라냐같이 살벌하다. 이건 정당한 분노가 아니다.

<분노하라>의 저자 스테판 에젤은 사회적 저항이 분노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정당한 분노는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를 실천하게 한다. 그런데 택시파업에 대한 여론의 분노는 사회적 무시와 모욕에 반응하는 도덕적 분노가 아니라 증오와 한묶음이 된 분노였다. 증오의 분노는 택시가 보인 온갖 부정적 모습들을 내세워 정당함의 방어막을 친다.

하지만 증오는 본질을 가린다. 택시 문제는 우리나라의 다른 문제가 그렇듯 열악한 노동의 문제이고, 핵심은 1997년 관련법령 개정으로 불법이 된 사납금제도다. 개인택시가 아닌 회사택시를 모는 기사들에게는 매일 정해진 사납금(차종, 운행시간 등에 따라 차이가 있다)을 회사에 내고 남는 나머지가 수익이 된다. 이런 구조에서 기사는 수익을 위해 불법을 자행하게 된다. 모든 위험은 기사가 지고, 회사는 돈을 번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벌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직률이 높고, 그 빈자리를 불황으로 일자리에서 쫓겨난 이들이 채운다. 우리가 그동한 경험했던 불편하고 위험한 택시를 만든 이들은 위험하고 불안한 노동을 하는 기사들이 아니라 그런 구조를 바꾸지 않은 정부와 회사다.

분노하라.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세상을 바꾸기 위한 우리의 분노는 정당하다. 하지만 증오의 분노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증오의 분노는 문제의 본질을 향하기보다 나와 다른 이들을 향한다. 그리고 모든 문제가 그들 때문이라 말한다. 우리 주변에서 증오의 분노는 낯설지 않다. 이주노동자들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인터넷 주장은 일본 극우파의 광기어린 목소리와 다를 게 없다. 단군상의 목을 자르고 땅밟기를 하는 보수적 종교인들의 행태는 순전하고 아름다운 처녀(호라)들을 기대하고 폭탄에 자기 몸을 맡긴 자살특공대와 다를 게 없다.

세계 만화에서 가장 유명한 악당 중 한 명인, 초록머리에 하얀 분칠을 한 얼굴의 조커. 조커의 탄생을 그린 여러 만화가 있지만, 가장 강렬한 작품은 <배트맨 킬링 조크>(앨런 무어, 브라이언 볼런드)다. 만삭의 아내를 둔 무명의 코미디언, 한때 화학약품회사의 실험실 보조로 일했던 경력 때문에 두 악당에게 안내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이 사내는 “화학약품회사라는 데는 워낙 섬뜩하고 흉물스럽”기 때문에 내켜하지 않지만 악당은 “자네 애를 가난 속에서 키우고 싶은 건가?”라고 협박한다. 그 일을 실행하기로 한 날, 두 사내를 만난 코미디언에게 경찰이 찾아와 부인이 아기 젖병 보온기를 시험가동하다가 누전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한꺼번에 잃은 사내는 그 황망한 중에 악당에게 끌려 화학약품회사로 가고 어쩔 수 없이 레드후드를 쓴다. 하지만 금방 경비원에게 발각 당하고, 배트맨에게 쫓기다 화학약품이 가득한 물속으로 뛰어든다. 그날 이후 그 사내는 세상에 대한 증오와 분노에 사로잡힌다. 희대의 악당 조커는 그렇게 증오와 분노 속에서 탄생했다. 어린이부터 노인들까지 누구나 쉽게 증오하고 분노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제대로 된 분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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