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빅브러더’ 시대의 두 추적자

2012.07.02 21:29 입력 2012.07.03 02:06 수정
김선영 | 대중문화평론가

거대권력에 의해 은폐된 진실을 추적하는 두 드라마 <추적자>와 <유령>이 큰 화제다. 두 작품은 주제 외에도, 마치 연작 시리즈로 보일 정도로 유사한 점이 많다. 먼저 누군가의 죽음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추적자>는 평범한 17세 소녀의 교통사고, <유령>은 톱 여배우의 추락사가 발단이다. 그리고 그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여러 겹의 진실이 은폐된 의문사임이 드러난다.

진실을 추적하는 주인공이 경찰이라는 점도 같다. <추적자>의 백홍석(손현주)은 강력계 말단 형사이고 <유령>의 김우현(소지섭)은 사이버 수사대 경위다. 하지만 그보다 흥미로운 공통점은 그들이 진실의 ‘추적자’인 동시에 의문사의 진짜 배후인 거대권력에 의해 추적을 당하는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딸 사고 원인을 밝히려다 법정살인까지 저지른 홍석은 탈옥자가 되며, 우현 역시 그의 숨겨진 정체인 해커 하데스로 의심받고 감시당하는 처지에 놓인다.

[별별시선]‘뉴 빅브러더’ 시대의 두 추적자

사회의 전 영역에 깊숙이 침투한 거대권력의 감시 아래서 추적자와 도망자의 위치를 오가는 시선 교란자 홍석과 우현의 모습은 이를테면 ‘뉴 빅브러더’ 시대의 특징을 보여준다. ‘뉴 빅브러더’란 강력한 전체주의 시대의 감시자 ‘빅브러더’와 비교해 이제는 정부와 기업과 개인으로 분산된 새로운 감시의 주체를 말한다. 튀니지 혁명과 이집트 혁명 등 ‘아랍의 봄’ 당시 정부의 감시를 무력화시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역할을 평가하면서 많이 쓰인 개념이다.

그러나 ‘뉴 빅브러더’ 시대의 감시 층위에도 여전한 위계적 질서는 존재한다. <추적자>와 <유령>에서 그 최상층은 자본권력이 차지하고 있다. 가령 <추적자>의 경우 홍석의 딸 살해를 지시한 권력자는 대선후보 강동윤(김상중)이지만, 그 역시 국내 최고의 재벌 한오그룹 총수인 서 회장(박근형)에게 ‘기르는 개’ 취급을 받는 존재일 뿐이다. ‘지주와 소작인’이라는 표현에서도 나타나듯 정치계, 법조계, 언론계까지 두루 장악한 서 회장의 권력은 전제군주의 그것에 가깝게 묘사된다. 동윤이 힘들게 홍석을 찾을 때 ‘국정원보다 거대한’ 정보팀을 수하에 둔 서 회장은 ‘더 높고 더 멀리’ 위치한 권좌에서 그들을 주시한다.

<유령>에서도 절대권력자는 역시 국내 최대 재벌 세강그룹 후계자다. 부회장 조재민(이재윤)은 비자금 조성 사실을 덮기 위해 민간인 불법사찰까지 벌이고, 상속 2순위 조현민(엄기준)은 검경 내부와 주요 언론에 스파이를 침투시켜 중요한 정보를 통제, 조작한다.

‘세강은 모두를 감시하고 있다.’ 모니터 앞에 앉아 각계 감시자들로부터 모든 정보를 보고받는 현민의 모습은 ‘빅브러더’ 그 자체다.

두 드라마의 이 같은 묘사는 일명 재벌 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거대기업들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한 극적 상상력이라 할 수 있다. 최근 국내 상위 5대 기업의 자산이 정부 총자산의 절반 수준이라는 발표와 10대 대기업의 총수들이 1%도 안되는 지분을 갖고도 지배력이 과거보다 더욱 공고해졌다는 기사는 그러한 현실을 뒷받침한다. 이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이전에 삼성의 노동자 사찰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떠올린다면 두 드라마에서의 최종감시자로서 재벌 묘사는 한층 실감날 수밖에 없다.

더 섬뜩한 것은 그들의 비가시성이다. <추적자>에서 홍석은 동윤에게는 총을 겨눌 수 있었지만 그보다 무서운 권력인 서 회장의 존재는 인식조차 못한다. 이는 <유령>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현민은 별칭부터 ‘팬텀(유령)’이다. 여배우 신효정(이솜) 살인사건에서 그녀의 고급아파트 폐쇄회로(CC)TV에 하데스가 포착돼 용의자로 몰리는 동안, 진범인 현민의 모습은 전혀 찍히지 않았다. 그 역시 아파트의 거주자였고, CCTV는 그 세계에 침입하려는 외부인을 감시하기 위한 시선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두 드라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권력의 ‘감시사회’에 대한 공포를 드러낸다.

홍석과 우현의 ‘뉴 빅브러더’로서 활약은 그렇기에 더 중요해진다. 그들은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권력에의 순응자가 되는 대신 끊임없이 의심하고 권력을 역으로 감시한다. 권력은 진실을 은폐하고 거짓을 조작하지만 그 사이 어딘가에는 반드시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홍석과 우현은 그 흔적을 찾는 추적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에 ‘뉴 빅브러더’가 될 수 있다.

물론 홍석은 동윤과 서 회장 사이에서 한없이 무력한 존재로 그려진다. ‘뉴 빅브러더’ 시대의 도래를 이야기하지만 시민들의 현실은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멈추지 않는 추적 덕분에 결국 두 권력은 서로를 감시하고 견제하게 된다. 자본권력이 보이지 않는 유령이라면 시민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공적 권력부터 감시해서 자본권력을 통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뉴 빅브러더’ 시대의 두 추적자가 우리에게 환기시키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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