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보호하는 법

2012.07.09 21:21
변영주 | 영화감독

비 피해가 있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가 왔다. 최불암 선생이 안내를 하는 음식 프로그램에서조차 가뭄으로 인한 농민의 고통을 이야기할 정도로 가뭄이 심했는데 비가 와서 참 다행이다. 작년 이맘때 <화차>의 촬영을 하고 있었다. 우린 매일 서너 개의 일기예보 어플을 살펴보며 비가 오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촬영을 하다가도 영화의 도입부에 나오는 휴게소 촬영 때는 비가 오기만을 바라며 지냈었다. 그렇게 사람의 바람과 자연의 현상 사이에서 우리는 기뻐하고 절망하고 행복하고 섭섭해한다.

자연의 현상은 기다림이다. 혹은 기원이다. 어쩔 수 없다. 물론 4대강처럼 인간의 탐욕이 촉매가 되어 자연의 현상을 재앙으로 몰아가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우리의 행동으로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건 자연의 현상보다 훨씬 쉬운 일인 것 같다.

[별별시선]우리를 보호하는 법

예를 들어 여러분이 이 글을 읽으실 때쯤 용산 참사의 진실을 찾는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이 누적 3만 관객을 돌파하고 있을 것이다. 상업영화의 흥행과 비교했을 때 대단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다큐멘터리 영화가, 그 적은 상영관의 규모에도 불구하고 3주차에 접어들며 매주 1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고 있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야당의 국회의원들이 단체관람을 하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분들도 몇 분 영화를 보셨다. 역시 기쁜 일이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박 시장은 자신의 임기 동안 강제철거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건 정말 신나는 일이다. <두 개의 문>을 만들며 제작진과 용산의 유가족들이 가장 꿈꾸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국회에선 쌍용차 문제와 관련해서 국회의원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것이 인간의 일이다.

한 편의 영화가 이명박 정부의 폭력의 상징과도 같은 ‘용산’의 진실을 세상과 공유하며 시민으로서 ‘보호’받을 권리를 이야기한다. 스물두 명의 죽음 앞에서 더 이상 무기력하지 않고,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리고, 재능교육 농성텐트와 마주보며 비정규직과 해고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자 세상이 노동의 권리에 눈을 뜬다.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애초의 인간과 닮아가려 애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그 모든 하나하나는 우리들의 한 걸음 한 걸음에 달려있다. 그래서 2012년 여름이 시작된 지금, 마치 기다리던 비가 온 것이 기쁜 것처럼 우리들의 한 걸음이 즐겁다.

이 지면을 통해서도 홍보를 한 기억이 있는데, 지난 6월16일 열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 복직을 위한 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 행진 걷자!’는 많은 분들의 관심 속에서 진행됐다. 행사 담당자들과 국회의원들이 직접 찾아가 끊임없이 설명하고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신고를 허가하지 않았다. 비록 원래의 바람대로 여의도에서 대한문까지 직접 걸을 수는 없었지만, 중간중간 함께 모여 걷고 대한문에 모여 손을 잡았다. 쌍용차 해고자 친구들의 자녀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며칠 동안 고생해서 만든 소품을 들고 노래를 부를 땐 모두들 우리가 왜 지금 여기에 있는지를 새삼 느꼈을 것 같다.

그 꽃 같은 행사를 치른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은 며칠 전, 집으로 한 통의 우편물이 날아왔다. 경찰서에서 온 출석요구서였다. “6월16일 미신고집회에 참여하였고 차도를 점거하여 교통을 방해한 것으로 확인되므로 그 경위 등을 수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방패를 든 경찰로 모든 인도를 막아 갈 수 없게 만들었고, 실제 차들의 통행을 방해한 것 역시 경찰이었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웃으며 걷고 있는지 그 이유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물고 뜯을 생각만 하는 그 속내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뿐이다. 다만 이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 그런 출석요구서를 이제 자신만의 공간에서 한 걸음 튀어나와 기쁜 마음으로 스스로 세상의 깃발을 든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젊은 청춘에게 보낸다면 그는 어떤 심정일까?

실제 그런 일들이 있다. 85호 크레인의 김진숙과 함께하겠다고 부산으로 찾아왔던 많은 청춘들에게 출석요구서가 날아갔고, 벌금 폭탄이 떨어졌다. 해고와 비정규직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행복하게 노동하고 즐겁게 삶을 꾸릴 자유를 위해 거리로 나온 이 청춘들과 함께해 주었으면 한다. 집회할 자유, 연대할 권리를 위해 희망버스 기소자들은 공동으로 정식재판을 청구하며 당당하게 맞서고 있다. 그리고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희망버스 돌려차기 선수단”을 모집하고 있다.

우리의 청춘들에게 희망을 주자. 세상에 시선을 돌리고 한 걸음 걸었더니 전국의 친구들이 생기고 손을 잡아준다는 또 하나의 기적 같은 현실을 선물해 주었으면 한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cafe.daum.net/happylaborworld를 찾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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