샅샅이 다 털어갈 줄이야

2014.01.19 21:10
정지은 | 문화평론가

다 털렸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였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샅샅이 털어갈 줄이야.

국민카드, 농협카드, 롯데카드 3개 카드사의 정보 유출로 시끄러운 주말이었다. 주거래은행이 2개나 포함되어 있으니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내 개인정보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쇼핑몰과 포털에서 한번 유출된 지 오래여서 카드사 사장들이 사과를 할 때까지만 해도 별 느낌이 없었다. 어차피 이름, 주민번호, 휴대폰번호 정도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별별시선]샅샅이 다 털어갈 줄이야

그런데 이건 사과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성명, e메일, 휴대전화, 직장전화, 자택전화, 주민번호, 직장주소, 자택주소, 직장정보, 주거상황, 이용실적금액, 결제계좌, 결제일, 연소득, 신용한도금액, 신용등급, 이용내역까지…. 항공사 마일리지와 연계하면서 여권번호까지 유출된 사람도 있다고 하니 신분 도용이 가능할 정도로 거의 모든 신상정보를 탈탈 털어간 셈이다. 카드번호에 유효기간까지 유출된 카드도 있다고 해서 전화했더니 주말이라 서비스 불가능하단다.

상황이 이런데도 카드사는 유출 확인만 해줄 뿐 대책이 없다. 먼저 알려준 것도 아니고 고객이 직접 홈페이지에 찾아들어가서 확인해야 한다. 유출 여부를 확인하려면 다시 한번 내 개인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심지어 생년월일과 주민번호 마지막 뒷자리만 입력하게 해 놓아서 생년월일이 공개된 유명인들(반기문 총장, 박근혜 대통령 등)은 0부터 9까지 입력해보면 어떤 정보가 유출되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코미디 같은 상황을 연출한 카드사가 선심 쓰듯 내놓은 대책이라는 게 이용 내역 문자통보 서비스를 1년간 무료로 이용하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내 정보를 빼다 판 회사의 사과를 받아도 모자랄 판국인데 그 회사의 서비스를 1년간 무료로 이용하게 해준다는 게 대책인가? 그 서비스 월 300원이다. 1년 무료 이용해도 3600원이다. 어이가 없는 수준이다. 카드사에서 ‘금융 사기에 주의하고 의심되는 연락이 오면 곧바로 신고해달라’는 긴급 공지를 했다는데 문자메시지 하나 받은 적 없고 사과문은 팝업창으로 대신한다. 게다가 2차 피해가 발생하면 피해보상한다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지금 사태는 피해가 아니라는 건가?

화는 나는데 개인들로서는 대체 어떻게 대응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아이디와 비밀번호 바꾸듯이 주민번호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이미 새어나간 내 정보가 악용되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삭제하고 탈퇴하는 것도 쉽지 않다. 계열사 간에는 개인정보가 공유되고 있고, 대기업 카드는 계열사는 물론이고 자회사까지 다 정보가 넘어가 있으니 개인이 일일이 삭제하기도 어렵다. 솔직히 삭제 요청을 한다 해서 제대로 처리되는지도 의문이다. 거의 10년 전에 해지하면서 탈회 신청까지 한 카드사에서 여전히 ‘포인트가 몇 점 남아있으니 쓰라’는 안내 문자가 오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의 나쁜 부자들>이란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분실된 카드가 결제됐고, 그것이 발견됐으면 카드사에 연락이 가야지 왜 카드 주인에게 연락이 가나? 왜 우리는 사회의 부조리를 개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가?”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당연히 개인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신선한 지적이었다.

해외사이트를 이용하면서 이 신선함은 당연함으로 바뀌었다. 로그인을 하고 나서도 공인인증서 인증과 보안카드번호 입력, 각종 프로그램을 깔고 동의해야 겨우 물건을 살 수 있었던 한국 쇼핑몰과 달리 카드번호와 e메일만 입력하면 끝이었기 때문이다.

진부한 결론이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제대로 된 재발 방지 대책이 절실하다. 하지만 그 대책이 정보 유출을 막겠다고 각종 인증 장치와 정보를 추가하고,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은 아니길 간절히 바란다. 주민등록번호 유출을 막는다고 아이핀 제도를 도입했던 것처럼 하나의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정보를 요구하고, 그 정보를 위해 또 다른 인증수단을 추가하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을 테니까.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