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카의 시대

2015.01.12 21:31 입력 2015.01.12 22:12 수정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오늘도 나의 페이스북에는 다양한 소식들이 배달되었다. 한 덩어리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소식이고, 다른 한 덩어리는 내가 공감하는 소식이다. 내가 ‘좋아요’를 누른 페이지나, 아니면 친구가 된 이들이 공유한 소식들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페북이 제공해 주는 소식을 확인한다. 그리고 적당히 ‘좋아요’를 누르고, 적당히 공유한다. 분노도, 연민도, 욕망도, 슬픔도 대개 페북을 통해 공유하고, 표시하는 걸로 끝낸다. 참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딱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을 통해서다. 어디 페북뿐일까. 오늘도 나의 인스타그램에는 정사각형의 멋진 사진들이 클로즈업되어서 올라온다. 음식이나 신발, 옷, 아주 가끔 풍경 따위의 사진들이다. 짤막한 글이 붙기도 하지만 사진으로 소통하면 끝이다.

[별별시선]셀카의 시대

사회관계망서비스, 현실이라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뉴스를 간단하게 접하며 공유한다. 마치 네트처럼 광대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광대한 세계를 스마트폰 안으로 집중시킨다. 이건 마치 셀카와 같다. 셀카, 즉 셀프카메라는 내가 나를 찍는다. 셀카의 관심은 오직 나이다. 셀카를 찍는 사람들을, 그들이 찍은 사진을 보자. 자신의 얼굴에 집중하고, 그 얼굴을 꾸며내는 방법을 탐구한다. 셀카뿐만이 아니라 사회관계망서비스로 공유되는 다른 사진도 셀카처럼 세계의 맥락이 거세된 개인적 관심사에 불과하다. 내 얼굴, 내가 먹은 음식, 내가 방문한 장소, 내 물건들처럼 말이다.

20세기 격동의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긴 로버트 카파는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페인 내전, 중일전쟁, 2차 세계대전의 북아프리카 전선과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을 취재했다. 그의 렌즈는 자신이 아니라 세계를 향해 있었다. 그가 충분히 다가가 포착한 건 꾸며낸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우리 모두가 로버트 카파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모든 이들의 주머니에 20세기 로버트 카파가 들고 다니던 사진기보다 더 좋은 성능의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오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는 고민해 볼 여지가 있다.

20세기 우리는 타인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연민과 배려가 존재했고, 과감하게 연대에 나서기도 했다. 21세기 우리는 타인을 향한 관심을 거두고 내 얼굴, 내가 먹은(먹을) 음식, 내 물건을 찍는다. 21세기의 카메라 렌즈는 타인에게 다가가지 않을 뿐 아니라 타인을 바라보지도 않는다. 가장 안전하게 나를 향하고, 그 안에서 만족한다. 그럴수록 우리의 시야는 셀카에 맞게 좁아졌다. 그리고 묻는다. “분노하라고? 왜? 나는 편안하게 잘살고 있는데?”

2014년 벌어져 여전히 진행 중인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 지난 10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사건의 발단이 되기도 한 여승무원에게는 교수 자리로 입을 다물라고 회유했고, 박창진 사무장도 역시 기업의 간부가 회유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사무장은 회사 측의 제안과 협박에도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작년 12월 KBS와 최초 인터뷰에서 그는 “회사라는 큰 힘에 의해 빼앗긴 개인의 존엄함을 찾기 위해서 인터뷰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셀카의 시대, 나만 바라보며 좁아진 시야를 갖고 있는 시대에 보기 드문 선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년에도 여전히 셀카의 시대는 계속될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셀카 나르시시즘의 시대가 될 듯하다. 분노하는 이들에게 “나는 행복하고 만족하는데?”라며 그들을 조롱할 것이다. 노골적으로 시끄럽다고 구박할 수도 있다. 타인에 대한 관심은 극도로 줄어들고,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이들은 빨갱이라 불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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