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다리타기’

2015.01.18 15:11 입력 2015.01.18 23:34 수정
정지은 | 문화평론가

가끔 사다리타기를 할 때가 있다. 제비뽑기의 일종인 이 놀이는 종이에 그리지 않고도 사다리타기를 할 수 있는 앱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많다. 사다리타기를 하는 경우는 대부분 소소하고 시시한 내기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당첨된 사람이 커피를 쏜다거나 귀찮은 심부름을 하는 식이다.

[별별시선]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다리타기’

주말 동안 인터넷은 신입생 예비소집일에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고급아파트와 임대아파트, 기타 등으로 구분한 팻말 앞에 줄을 세운 경북 안동의 한 초등학교 뉴스로 시끌시끌했다. 이 초등학교 근처에는 고급아파트와 장기임대아파트, 주택가 등이 혼재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 학교 교장은 “업무를 편리하게 하기 위해 다른 학교도 행정구역별로 나눠서 하며, 차별하기 위한 건 아니었다”고 얘기했지만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팻말 앞에 줄 서 있는 사진을 보면서 사다리타기 게임이 떠올랐다. 이 사진의 풍경이 게임과 다른 것은 이 사다리타기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는 거다. 거주하는 아파트처럼 어디에서 출발하느냐에 따라 탈 수 있는 사다리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사다리 출발 지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학연, 혈연, 지연인데 무작위로 선택된 혈연(부모를 골라 태어나는 건 불가능하니까)이 바탕이다. 신분을 나누는 것도 모자라 경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했던 신라의 골품제처럼, 이제 한국도 서울에서 자력으로 내 집을 갖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부모가 물려주는 사다리 없이 서울 입성은 불가능해진 시대인 만큼 부모에 따라 지연이 결정되고, 학연 역시 이 두 가지 요소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까 요새 젊은 남녀들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몇 마디만 해보면 ‘견적이 딱 나오는’ 거다. 구차하게 연봉이 얼마며 부모님은 뭘 하시는지 따질 것도 없다. 일단 집이나 직장이 서울이 아니면 “아아….” 그 후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데, 직장이 공공기관이라고 덧붙이면 “아, 그래요?”라며 다시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이 대화에서 상대방의 흥미는 ‘서울이 아니라는’ 것에서 뚝 떨어졌다가 ‘공공기관’에서 정점을 찍는다. 상대방과 앞으로 관계를 지속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몇 개의 기본적인 사다리를 통과해야 하는 거다. 남녀 불구하고 연애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다리는 계속 작동한다. 한국 사회의 사다리타기는 농촌으로 이주하면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한마디로 설명이 안되기 때문에 매번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홀연히 떠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도 ‘○○집 아들’ 혹은 ‘○○고등학교 ○기’라는 단 한마디로 설명이 끝나는 그 고장 출신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전혀 모르는 사이로 마주앉았다가 아는 사람이나 공통점이 등장하면 갑자기 화기애애해지는 분위기 반전은 그래서 가능하다. 한마디로 사다리 출발지점이 정해지는 다수자들과 달리 연결고리가 별로 없어 출발지점을 제대로 찾기 어려운 소수자는 “원래 뭐 하던 사람이야? 어디 출신이야?”류의 질문을 받으며 이방인 취급을 당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라는 건 거의 동창회라는 사적 조직들로 지배되어 있는 사회예요. 동창회라는 것은 공익성과는 거리가 먼 집단이기주의가 번성할 수밖에 없는 연줄조직입니다. 온갖 분야에서 이른바 출세를 하고 편안하게 살려면 이 연줄에 기대거나 잘 활용해야 합니다. 이 나라는 겉으로는 그럴듯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모두 이런 음성적 연줄로 돌아가고 있어요”라는 김종철 선생의 일갈은 정확하다.

사실 사다리타기 게임을 해서 떡볶이를 사와야 한다고 해서 분노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의 사다리타기 게임은 결론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고, 또 불안하다. 출발지점이 같아도 결론은 다를 수 있으며, 중간 어디쯤에서 또 다른 사다리로 넘나들 수 있을 때 사회구성원들은 웃으며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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