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사소한, 사소한

2015.02.08 21:25 입력 2015.02.08 21:31 수정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집이 경기도 외곽이라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버스를 타려면 한 30분 걸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결국 자가용을 운행할 수밖에 없다. 하루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차를 운행하는 것 같다.

[별별시선]사소한, 사소한, 사소한

시골 국도, 고속도로, 가끔은 대도시의 복잡한 도로까지 다양하다. 매일 차를 가지고 다니면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어쩌면 매일 한번씩 뭔가 울컥 솟아오르는 신묘한 경험을 한다. 화가 나는 결정적 지점, 발화점이라 부르면 어떨까, 나쁘지 않다.

그러니까 발화점은 두 꼭짓점이 있다. 하나는 난데없는 도발.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작은 규칙 무시. 이 둘이 한데 섞이면 발화의 강도가 세진다. 난데없는 도발은 이런 거다. 고속도로나 국도에서 지정된 차선을 가는 경우, 추월 차선을 달리며 추월해 나가거나, 아니면 주행차선을 달릴 때다. 느닷없이 뒤차가 상향등을 깜빡인다. ‘뭐지? 내가 뭘 잘못 했나?’ 급히 생각한다.

추월 차선에서 느리게 달리거나, 혹 제법 속도를 내 달리고 있어도 뒤차가 레이싱 트랙을 달리듯 달려오는 경우라면 양보한다.

그게 아니라 멀쩡하게 추월을 하고 나가고 있을 때나(뒤차와 거리도 꽤 되고), 아니면 내가 주행선에서 주행할 때 뒤차가 상향등을 켜는 건 발화의 꼭짓점이 된다. “(욕을 하고) 뭔데 번쩍이고 그래!”라며 어디에 숨겨놓았는지 모를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다.

얼마 전 일이다. 국도에서 갑자기 뒤차가 상향등을 켰다. 자동으로 화가 폭발한다. 그 차는 나를 추월해 갔다. “추월해 가면 되지 왜 상향등을 켜는 거야!” 그리고 바로 앞 신호등에 멈추었다. 그 뒤에 선 나는, 차에서 내려 “당신이 뭔데 상향등을 반짝거리는 거야!”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별거 아니다. 실수로 상향등 스위치를 건드릴 수도 있다.

오른쪽, 왼쪽으로 배치된 스위치를 헛갈릴 때도 많이 있다. 아니면 위험을 경고하려는 착한 마음에서 상향등을 켤 수도 있다. 백번 양보해, 그냥 나에게 뭔가를 경고했을 수도 있다. 진짜 사소하고 사소한, 상향등 한번 깜빡인 것뿐이다. 왜 난 거기에 도발 당하는 걸까?

규칙 무시는 좀 맥락이 다르다. 막히는 길에서 느닷없이 끼어드는 자동차, 주행차선이 비어있는 고속도로 추월 차선에서 느린 속도로 운행하는 자동차, 정지 신호에 서 있는데, 뒤에서 반짝이고 경적을 울리는 자동차. 이런 이들을 만나면 또 다른 발화의 꼭짓점을 자극받는다.

난데없는 도발과 비교해 조금 더 얄미움이 명백하지만, 내가 화를 내 봐야, 내가 응징해 봐야 해결될 일이 아니다. 길게 늘어선 줄의 맨 앞으로 끼어들지 못하게 좀 더 적극적으로 단속하고, 추월 차선은 주행차선이 아니라 추월 차선이라고 면허를 따기 전부터 제대로 교육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청원할 일이다.

막 운전을 시작했을 때 일이다. 1차선보다 조금 넓은 길에서 뒤차가 거칠게 추월해 나갔다.

난 내가 무척 화가 났다는 걸 알리기 위해 상향등을 계속 깜빡였다. 난 화가 났고, 날 거칠게 추월해 간 그들에게 내 분노를 전해야만 했다. 차를 세우고 따져 묻고도 싶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앞차가 갑자기 정차하며 문이 열렸다. 순간, 화는 공포로 바뀌었다. 후진으로 도망갈까? 차 문을 잠그고 경찰에 신고할까? 그때, 정차한 차 옆쪽으로 차 한대가 지나갈 여유가 보였다. 급하게 그쪽으로 빠져나갔다. 혹시 우리 집으로 따라올까봐 전혀 다른 곳으로 한참 돌아돌아 집에 갔다.

그날 한참을 후회했다. 난 왜 사소한 일에 분노할까.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운전대만 잡으면 거리에서 만나는 사소한 일에 분노한다.

그게 내 삶에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닌데도. 어디 운전뿐이랴. 그게 우리 삶이다. 사소한 것들에 대해 조금만 대범해져도, 우리 삶은 더 행복해 질 터이다.

사소한 분노를 좀 아끼면 거대한 문제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015년에는 좀 대범해져야 되겠다. 적어도 운전을 할 때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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