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부터 겨눈 노동개악

2015.11.01 21:06 입력 2015.11.01 21:07 수정
오민규 |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박근혜 정부 노동개악이 강행되면 노조가 없던 30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그건 사실이 아니야. 우리가 그 시절 겪어봤잖아. 노조가 없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정규직이었다고. 이 직장에서 잘려도 다른 곳에 정규직으로 들어갈 수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달라. 비정규직이 엄청난 규모로 늘었잖아. 이런 상태에서 노동개악이 강행되면 30년 전보다 더 후퇴하는 거라고.”

가끔 노동조합 교육을 하다 보면 환갑이 넘은 조합원들이 참여해 이런 얘기를 해주시곤 한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은 역사를 30년 이상 후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 요즘 교과서 국정화 문제도 그렇고, 대통령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 한다.

[세상읽기] 비정규직부터 겨눈 노동개악

게다가 정부와 재벌은 비열하게도 조직력이 취약한 비정규직 사업장부터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를테면 정부는 지방공기업에까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되 “급여 수준이 매우 낮은 경우(최저임금의 150% 수준 이하)에는 제외 가능”이라고 명시한 바 있다.

이게 무슨 말일까? 뒤집어서 얘기하면 최저임금의 150%, 그러니까 월 175만원만 받아도 모조리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라는 얘기이다. 이에 따라 오랜 근속을 거쳐 간신히 무기계약직이 된 지방공기업 비정규직 다수에게 임금피크제가 실시될 전망이다. 쥐꼬리만큼 월급을 주면서 꼬리마저 떼겠다는 거다.

‘쉬운 해고’로 알려져 있는 저성과자 해고제도 역시 비정규직 사업장부터 밀어붙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이 지난 9월에 공개한 ‘서비스센터 운영 개선 토의(안)’라는 문건에 따르면, LG유플러스 서비스센터 연합회가 저성과자 관리 및 해고에 대한 구체적인 프로세스를 명시하고 있다. 이 문서는 LG유플러스 하청업체로 구성된 서비스센터연합회 자문을 맡고 있는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월간 정량평가를 기준으로 노동자들을 A~D등급으로 분류한 뒤 D등급 직원에 대해서는 개선계획서 제출→교육시행→업무일지 작성의 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특히 분기평가 3회 이상 D등급을 받은 직원은 해고하도록 적시하고 있다.

최근 일부 교육청에서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저성과자 해고제도를 도입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내용이 닮았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연 2회(2월, 8월) 근무성적 평가를 하도록 하고, 5개 등급으로 분류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근무성적 평가결과 3회 연속 최하위등급을 받은 경우 해고할 수 있도록 한다니, 위 사례와 완전히 동일하지 않은가!

민간과 공공 부문에서 이토록 동일한 사례들이 발견된다는 것은, 정부와 재벌이 이미 물 밑에서 ‘쉬운 해고’ 가이드라인을 깊숙이 논의해왔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특히 쉬운 해고를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저성과자 해고제도가 취업규칙에 명시되어야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취업규칙 변경 가이드라인과 함께 쉬운 해고 가이드라인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재벌이 비정규직 사업장부터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조직력이 강한 대기업 정규직에게 곧바로 밀어붙이긴 어려우니 만만해 보이는 곳부터 시행한 뒤, 마지막으로 대기업 정규직을 고립시켜 밀어붙이는 시간차 공격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호락호락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민주노총 소속 비정규노조들은 오는 14일로 예정된 민중총궐기에 비정규직 5만 조합원을 상경시키기로 결정했다. 이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화답할 차례이다. 비정규직 사업장에 쏟아지는 노동개악 공세가 바로 대기업 정규직을 향한 공격의 신호탄임을 자각하고 나서야 한다.

비정규직 5만과 정규직 5만이 손을 잡고 함께 총궐기에 나설 때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을 막아낼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나설 때, 박근혜 정부의 역사 되돌리기를 막아낼 수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굴리기 위해 앞장서온 것은 언제나 자각한 노동계급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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