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 ‘권좌’를

2015.10.26 20:31 입력 2015.10.28 14:32 수정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지금 청년들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권력의 자리’이다. 권력의 자리라니? 스스로를 ‘어른’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그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며 눈을 부릅뜨고 필자에게 삿대질해댈지 모른다. 아니, 분명 그리할 것이다. 교육, 기업, 나랏일 하는 높은 분들이 그리할 것이다.

지금의 청년들은 누구인가? 대부분의 어른들은 ‘어린 사람’들로 볼 것이다. 독립성과 자율적인 존재라고 하기엔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해 한 가정과 나라의 살림을 책임질 수 없는 무능한 사람들이라 여길 것이다. 전적으로 틀린 생각은 아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2010~2011년 조사에 따르면, 대졸자 절반 이상이 부모와 같이 살거나 부모로부터 용돈을 받는 ‘캥거루족’이다.

[세상읽기] 청년에게 ‘권좌’를

또 한국경제연구원의 2015년 1~8월 조사에 따르면 대졸 남성 청년층의 체감 실업률은 정부 공식통계치의 3배인 28%에 달한다. 하지만 이 숫자들에 기대어 지금의 청년들을 그저 어린 혹은 무능한 사람들로만 간주하는 어른이 있다면, 그는 한참 ‘모자란’ 사람이다.

지금의 청년들은 지금의 어른들, 특히 산업화와 민주화의 수혜를 받고 살아온 사람들이 겪어보지 못한 세계를 ‘먼저’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때문에 지금의 청년들은 지금 어른들의 ‘선배’인 사람들이다. 그래서 어리고 무능한 사람들이 아니라, ‘앞서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의 청년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는 곤궁한 누군가가 더 좋은 대학과 더 좋은 스펙과 더 좋은 직장을 위해 온갖 부지런을 떨면 떨수록, 이미 부유한 다른 누군가가 더 많은 돈을 벌게 되는 세계이다. 그렇게라도 들어가 얻은 대학의 졸업장과 자격증이 무용지물이 되다시피 한 세계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았다면 특히 그러하다. 특출한 재능과 연줄과 빽이 없다면 대부분이 미생으로 살아가야 하는 세계인 것이다.

어찌 어찌해서 더 좋은 직장이라고 꼽히는 기업에 정규직으로 들어갔다 해도 10년 남짓 다니면 끝인 세계이다. 그나마 그런 기업들마저도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세계이다. 지금의 청년들은 이 세계를 가리켜 ‘헬조선’ 혹은 ‘망한민국’이라 부른다.

저개발국가와 독재국가라는 이름의 세계와 비교해 보면 어떠한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목표를 갖고 가슴 한쪽에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그런 세계와 마찬가지의 세계라 생각하는가? 아니다. 전혀 다른 세계이다. 그 어떤 목표도, 그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세계이고, 그래서 ‘헬’조선이고 ‘망한’민국이라고 칭해지는 세계인 것이다.

지금의 청년들은 헬조선과 망한민국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지금의 어른들은 ‘청년 일자리 창출’로 그리할 수 있다고 답한다. 하지만 진위가 의심스러운 답이다. 왜냐고? 자신들이 겪어보지 못한 세계를 빠져나갈 길을 어찌 알 수 있단 말인가. 당사자인 청년들과 직접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며 지혜를 구하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설사 알 수 있다손 쳐도 청년일자리 창출이 해답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지금의 청년들을 ‘경제동물’로 가정한 채, 헬조선과 망한민국의 부조리함을 그저 ‘저소득과 내수침체’의 관점에서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정과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청년들은 헬조선과 망한민국을 대체할 새로운 세계의 ‘전위’가 아니라, 기껏해야 헬조선과 망한민국의 노동자 혹은 소비자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혹은 소비자의 자리에 머물러서는 헬조선과 망한민국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새로운 세계로의 나아감? 어불성설이다. 벗어남과 새로움은 자유와 용기와 열정을 필요로 한다. 돈과 상품의 사슬에 묶여 있는 노동자와 소비자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덕목이다. 권력의 자리이다. 자유와 용기와 열정을 낳는 자리는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권한을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 지금의 청년들이 헬조선과 망한민국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권력의 자리를 내줘야 한다.

헬조선과 망한민국의 처참함을 겪지도 알지도 못하는, 그러나 곧 그 세계에 가닿을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역할이다. 청년들에게 권력의 자리를 마련해줘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산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