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자녀법’이 던진 물음

2016.09.02 21:33 입력 2016.09.02 21:34 수정
국제부 ㅣ 이인숙 기자

지난달 31일 독일 법무부가 의회에 ‘뻐꾸기 자녀법’을 제출했다. ‘뻐꾸기 자녀(kuckuckskind)’는 여자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남편의 아이로 알게 해 함께 키운 자녀를 말한다. 다른 새의 둥지에 자기 알을 맡기는 뻐꾸기에 비유해 이런 별칭이 붙었지만 사실 자녀는 이 상황에 아무 잘못이 없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독일 가정의 자녀 중 4~10%가 이런 ‘뻐꾸기 자녀’로 추산된다고 한다.

[기자칼럼]‘뻐꾸기 자녀법’이 던진 물음

‘뻐꾸기 자녀법’은 이 아이들을 키운 ‘억울한’ 아버지를 위한 법이다. 아버지는 키운 자녀가 친자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면 법적 후견인으로 최대 2년 안에 친부에게 그간의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다. 이 양육비를 청구하기 위해 부인에게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힐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부인은 ‘과거의 남자’를 밝힐 수 없는 이유가 있을 때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거부할 수 있다. 하이코 마스 법무장관은 “이 법은 ‘뻐꾸기 자녀’의 아버지가 생물학적 아버지에게 재정적 지원을 요구하는 근거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뻐꾸기 자녀법’은 지난해 2월 독일 헌법재판소가 “부인이 성적 사생활을 밝히지 않을 권리는 헌법으로 보호되는 기본권인 만큼 이를 제한하려면 별도의 입법이 필요하다”고 판결한 데 따른 것이다.

사랑과 정성으로 키운 아이가 하루아침에 내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의 충격은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이들에게 무엇으로라도 보상받도록 해야 공정하다는 인식이 법에 깔려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법은 여러 가지 간단치 않은 질문을 던진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부인에게 ‘과거의 남자’를 밝히라고 고문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며 이 법이 폐해가 크고 실효성도 없다고 비판했다. 부인이 잘 기억을 못하거나 거짓말을 한다 해도 그것을 누가 검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 가족법 변호사는 슈피겔에 “우리는 주로 자기도 모르게 아이를 맡은 아버지만 보지만 친부는 아이를 박탈당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친부를 알아야 할 권리가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을 건드릴 권리에 우선하느냐는 물음은 여전히 남는다. 법원에 사생활을 말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지만 그 절차는 이미 ‘토설’을 요구받은 뒤에 일어날 일이다.

‘뻐꾸기 자녀법’은 근본적으로 가족이란 공동체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부인에게 기만당했다는 신의의 문제를 발라내면 결국 남는 건 ‘핏줄’이다. 가족은 아버지의 ‘핏줄’로만 유지되고 정당화되는 공동체인가.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성공한 건축가 료타가 ‘아버지’가 되기까지의 시행착오를 통해 혈연과 가족과 시간에 대해 묻고 있다. 료타는 어느 날 6년 동안 키운 아들 케이타가 병원에서 뒤바뀐 남의 아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료타는 친자인 류세이가 시골 전파상의 아들로 자란 걸 보고 케이타는 물론 류세이까지 돈으로 거두려 한다. 그러다 키울 때부터 욕심에 차지 않던 케이타가 자신보다 친부와 더 가깝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료타는 결국 케이타를 내치고 혈육을 택한다. 그러나 료타는 자신의 ‘핏줄’ 류세이와 가까워지지 못하고 류세이는 엄격한 료타에게 반항해 원래 집으로 돌아간다. 료타는 아버지와 자식이 혈연으로 그저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두 아들과 화해하고 관계를 복원해 나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느 날 늘 바쁜 아버지에게 “다음에 또 놀러오세요”라고 인사하는 딸을 보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오늘부터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면 관계도 원점으로 돌아갈까. 료타는 혈연이라는 이유만으로 류세이와 가까워지지 못했고 혈연이 아니라는 이유로 케이타와 멀어지지도 못했다. 양육비를 다 돌려받고 나면 ‘뻐꾸기 아버지’의 상처받은 명예는 회복될까. 쥐트도이체차이퉁은 칼럼에서 “아이를 위해 했던 모든 일이 쓸데없는 투자가 되고 돈으로 대체될 수 있는 손해가 되는 거라면 그건 재앙”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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