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뉴욕정담

2018.09.30 20:40
성우제 | 재캐나다 작가

조카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지난 추석 즈음 뉴욕 둘째 누나 집에서 우리 형제들이 모였다. 뉴욕에서 모두가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예식이 끝나고 우리는 누나 집 거실에서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예전과 달리 한국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즈음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이 잠깐 언급되었으나 그것은 내가 꺼낸 다른 화제에 바로 밀렸다.

[시선]BTS 뉴욕정담

“BTS(방탄소년단)가 유엔에서 연설하러 뉴욕에 온대요. SNS 보니까 그날 맨해튼에 차 갖고 나가지 말라던데요. 걔들이 가는 곳곳에 아미가 진을 칠 거라서 길이 더 막힌다고.” 아미가 BTS 팬클럽이라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아미가 뭐야?”라고 묻는 사람도 없었다. 결혼식장이며 식당을 오가는 자동차 안에서 BTS의 북미 인기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하던 중에 아미를 이미 설명했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는 토론토 옆 도시 해밀턴에서 세 차례 공연하며 암표가 수천달러에 거래된다. 다소 침체된 도시 해밀턴에서는 BTS 공연으로 “도시 경제가 반짝 살아난다”며 즐거워한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놀라워했었다.

미국에 산 지 28년 된 둘째 자형은 BTS 소식에 밝았다. “요즘 BTS 노래가 이곳 라디오에 자주 나오는데, 왜 그런지 알아? ‘강남스타일’이 한창 인기 있을 때도 그렇지 않았거든.” 자형은 ROTC 장교 출신이어서 그런지 ‘아미’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아미가 진짜 군대처럼 편제되어 있대. 미국 소도시마다 소대가 만들어져 있는 셈이지. 그 소대원들이 자기 지역 라디오 방송국을 맡아서, BTS 음악을 틀어달라고 계속 공략한다는 거야. 그 때문에 요즘 라디오에서 BTS 노래를 자주 들을 수 있는 거고.” 하긴 토론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BTS 노래가 라디오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것에 대한 궁금증은 그렇게 풀렸다. 싸이만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북미 어느 도시건 간에 BTS 공연장 앞에서 팬들이 하루 이틀 노숙을 하며 공연을 기다린다는 이야기가 이어지자 60년대 학번 큰 자형이 말했다. “예전 비틀스가 미국에 처음 들어올 때하고 똑같네.”

BTS 이야기는 뜻밖에도 대학생인 우리 아이들이나 30대 조카들에게는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아미의 주축 세력은 ‘강남스타일’이 크게 넓힌 북미 케이팝 영토에 새로 진입한 어린 팬들이어서, 기존 케이팝 팬들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고 했다. 2010~2011년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서 열린 ‘SM타운 라이브 월드투어’로 북미에 본격 상륙한 케이팝은 주로 ‘SM’ ‘YG’ ‘JYP’ 3대 기획사 계보로 이어졌다. 팬들도 그 계보를 충실히 따라갔다. 미국과 캐나다에 사는 조카나 우리 아이들은 바로 그 팬층에 속해 있다. 그 전통 팬들이 보기에, BTS의 주력 팬들은 자기들과는 다른 ‘신세대’ 혹은 ‘신인류’이다. 그들은 아미가 “조금 극성맞다”고 평한다.

조카 한 명이 집안 어른들한테 남자 친구를 인사시키겠다며 백인 청년을 누나 집에 오게 했다. 그에게 내 형이 질문을 했다. “두 유 노 방탄소년단?” 진짜 궁금해서 그랬는지, 질문거리가 없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몇 년 전 미국 고위 관리와의 기자회견장에서 난데없이 “두 유 노 싸이?”라고 했다는 한국 특파원을 패러디한 것인지, 본인 외에는 그 질문의 의도를 알지 못한다. 내 형의 질문은 그 자리에 모인 젊은 세대에게 빈축을 샀다. “그런 질문을 왜 해요?” 그런 질문인데도 인사하러 온 청년은 성실하게 답했다. “압니다.” 그러고는 묻지도 않았는데 한마디 더 했다.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모처럼 모인 자리에서 최대 이슈는 BTS였다. 마침 북미 투어 중인 데다 유엔 연설이 예정되어 있던 뉴욕이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북미에서의 BTS 인기는 한국에서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우리 가족이 뉴욕에서 만나 나눈 대화 내용만 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국위 선양’이라는 측면으로 보자면 이들을 능가하는 한국인은 단군 이래 없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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