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새로움

2018.11.01 20:35 입력 2018.11.01 20:36 수정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한 장면.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한 장면.

영화계는 늘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다. 영화계뿐만은 아닐 것이다. 문학도, TV 예능도 심지어 정치계도 새로운 것을 찾는다. 새로운 시도의 출현에 대해 우리는 기꺼이 반길 준비도 되어 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세상엔 새로운 출현이라는 게 얼마나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몇 편의 영화들만 해도 그렇다.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오래된 새로움

미국에서 흥행을 한 뒤 아시아권에 뒤늦게 개봉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Crazy rich Asians)>을 보자. 영화의 할리우드 흥행에 아시아가 흥분했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아시아계라는 점에서 말이다. 수선스럽다고만 하기도 어려운 게 주·조연 모두 아시아계 배우로 캐스팅되어 미국 주류 영화로 개봉한 작품이 1995년 <조이 럭 클럽> 이후 무려 23년 만이다. 그동안 아시아계 배우란 미국 영화에서 감초 혹은 인종적 편견을 강화하는 역할 정도에 그쳤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남자 친구의 고향인 싱가포르에 가게 된 연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평범한 중국인인 줄 알았던 남자 친구는 싱가포르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미치도록 부자인 집안의 아들이었고 그런 집안임을 티라도 내듯이 엄격한 가풍과 유교적 질서를 지키고 살아간다. 겉은 중국인이지만 완전히 미국식 사고를 가지고 살아가는 29세 여성 레이첼은 이래저래 싱가포르에서는 부적격 신부로 외면당한다. 특히 장래 시어머니감이 심각하다.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 변호사였던 그녀는 ‘영’가문의 안주인이 되기 위해 자신의 경력을 단숨에 던지고 집안일에 매진했다고 말하니 말이다.

대략의 줄거리를 놓고 보자면,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줄거리는 우리네 안방에서 몇십 년째 방영 중인 가족드라마의 꼴과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의 흥행과 달리 한국에서는 이런 영화가 왜 그렇게 흥행했지라며 주저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서 멀지 않다. 이런 이야기, 이런 주인공은 우리에겐 물리도록 익숙한 진부한 것이니 말이다.

영화적으로 따져보자면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할리우드의 스크루볼 코미디의 원형을 복원하고 있다. 상대적 격차가 큰 두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지만 사회경제적 갈등은 두 사람의 정서적 교감과 인간적 이해력으로 해결된다. 처음엔 둘 사이를 방해자였던 사람이 마지막에 가서 적극적 조력자로 바뀌는 것도 스크루볼 코미디의 전형을 따라간다. 말하자면 미국, 할리우드의 관객들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을 통해 1934년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에서 보았던 단순하고도 명쾌했던 로맨틱 코미디의 비전을 다시 보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백인 미국인에서 동양인 미국인으로 바뀌었을 뿐, 줄거리는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주목해야 할 것은 달라진 게 없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세월이 지나도 그다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2018년 넷플릭스 최고의 오리지널 영화로도 불리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에서도 발견된다. 짝사랑했던 남자들에게 썼던 비밀 편지가 어느 날 갑자기 당사자들에게 발송된다. 이 발송된 편지로 계약 연애가 시작되고, 그렇게 연인인 척하다 보더니 진짜 감정이 생기고 연인이 된다. 오해, 계약, 갈등, 사랑의 재발견으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는 정말이지 비슷한 이야기를 찾자면 도서관 하나도 모자랄 정도로 흔하다.

하지만 이 두 이야기는 모두 오히려 익숙하기 때문에 더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도 바꿔 말할 수 있다. 올해 네 번째 리메이크작이 선보인 <스타 이즈 본> 역시 마찬가지이다. 재능을 지녔으나 아직 세상이 발견하지 못했던 원석이 사랑을 알고 스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반세기 넘어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그려진다. 세상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뜯어보면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고 고만고만하다. 고민의 양상도 그렇고 행복의 순간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사는 넓고 다양하다지만 바닥까지 들여다보면 그렇게 다를 것도 없다. 우리가 장르라고 부른 이야기가 틀이 정해져 있고, 공식이 뻔한데도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말하자면, 인류는 어떤 서사적 유전자, DNA를 공유하고 있다. 셰익스피어가 16세기에 썼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여전히 사랑 이야기의 고전으로 사랑받고, 재창조된다. 극복하지 못하는 장애물 앞에서 목숨을 잃는 두 연인은 죽음으로 봉인된 영원한 사랑의 신화로 변주된다. 죽음이 지켜낸 사랑의 불멸성은 500년이 지나도 여전히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45세에 세상을 떠난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를 담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여전히 청중을 움직이고, 아바의 음악이 <맘마미아>를 통해 재창조될 수 있는 것도 이 유전자 덕분이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세월을 건너 공유할 수 있는 어떤 감정의 근원이 우리에게 있는 셈이다.

오래되었다고 나쁜 것은 아니다. 새롭다고 늘 옳은 것도 아니다. 그 익숙함 가운데서 약간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새로움일 테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오래된 것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결실이기도 하다. 오래된 것을 공부하지 않다보면, 아주 오래된 것을 새것이라 내놓는 해프닝도 생긴다. 인류가 공유한 서사적 유전자를 공부하는 것, 그 지도 아래 놓인 인간의 깊은 속내를 탐구하는 길, 그게 바로 오래된 것을 공부하는 보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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